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년전쟁 (문단 편집) === [[백년전쟁/제2기 (1360-1389)#s-2|카스티야 내전]] (1366~1369) === [[파일:Battle_of_Montiel 1369.jpg |width=600]] >이제 여러분이 듣게 될 것처럼, 여기서부터는 연민, 사랑, 그리고 정의가 함께 어울리는 고귀하고 인상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 >챈더스 해럴드, '흑태자의 삶' 아라곤의 페드로 4세는 바르셀로나 왕궁에서 프랑스군 지휘관들을 환영한다. 프랑스군이 사라고사를 향해 진군하자 카스티야의 페드로 1세는 병력을 집중시킨다. 프랑스군은 나바라를 통해 우회하여 카스티야군의 방어선을 무력화한다. 프랑스군은 부르고스를 점령하며 트라스타마라의 엔리케를 카스티야 왕으로 선포한다. 페드로 1세는 톨레도로 후퇴한 뒤 포르투갈로 망명한다. 흑태자는 페드로 1세와 동맹을 맺고 카스티야를 침공한다. 나바라의 카를로스 2세는 엔리케를 배신하고 피레네 산맥의 통로를 연다. 나헤라 전투에서 흑태자의 군대가 대승을 거둔다. 그러나 페드로 1세와 흑태자의 분쟁으로 동맹은 파기되며 페드로 1세의 권위는 실추된다. 엔리케는 카스티야로 돌아와 지지를 얻는다. 해산된 카스티야 원정군은 다시 대군세를 형성하여 프랑스 영토에 침입하지만 부르고뉴 도시들은 청야전술로 대응해 이를 격퇴한다. 흑태자는 건강 악화와 재정적 압박으로 가스코뉴에 화로세를 도입한다. 이로 인해 가스코뉴 귀족들과의 갈등이 심화된다. 샤를 5세는 아르마냑 백작의 항소를 받아들이고 가스코뉴의 귀족들과 비밀 협정을 맺는다. 흑태자는 파리 고등법원의 소환 명령을 거부한다. 베르트랑 뒤 게클랭이 지원군을 이끌고 카스티야에 도착한다. 트라스타마라의 엔리케가 몬티엘 전투에서 승리하고 페드로 1세를 살해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