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년전쟁 (문단 편집) === [[백년전쟁/제2기 (1360-1389)#s-5|북부 도시들의 반란]] (1379~1385) === [[파일:Slag bij Westrozebeke 1382.jpg |width=650]] >"나는 7년 전 우리 아버지가 내게 해주셨던 '새끼 고양이가 지배하던 궁궐은 힘든 곳이었다'란 말을 기억한다. 성경도 그 말씀을 증명하고 있다. '아이가 왕인 나라에 슬픔이 있을지니!' 그러니 그의 권위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말자. 한 명의 폭군을 제거한 결과가 가져오는 해악과 슬픔보다는 작은 손실이 더 나으니까. 궁궐의 고양이가 갑작스런 공격을 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없다면 시궁쥐들은 사람들의 옷가지를 씹고 우리 생쥐들은 맥아를 먹을 것이다." >---- >윌리엄 랭글런드, '농부 피어스의 꿈' 플랑드르의 세 대표 도시들이 또다시 백작에게 반기를 든다. 이에 영향을 받아 북부 프랑스의 도시들에서도 가난한 하층민들을 중심으로 조세에 반대하는 봉기가 일어난다. 잉글랜드에서도 인두세 부과를 계기로 와트 타일러의 난이 일어난다. 장 드 비엔 제독이 지휘하는 프랑스군이 스코틀랜드에 상륙해 북부 잉글랜드를 침공한다. 그러나 스코틀랜드는 이미 비참하게 쇠락했으며 프랑스군을 지원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만 밝혀진다. 이 원정을 마지막으로 프랑스는 스코틀랜드를 통해 잉글랜드 본토를 공격한다는 전략을 완전히 포기한다. 부르고뉴의 용담공 필리프 2세가 거의 항복에 가까운 조건으로 헨트 시의 반란군과 타협하면서 플랑드르 백작과 시민들 사이의 내전이 끝난다. 그러나 내전은 플랑드르 직물 산업의 쇠퇴를 가속했고 헨트 시의 부와 권력은 서서히 기울기 시작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