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년전쟁 (문단 편집) === [[백년전쟁/제4기 (1432-1453)#s-3|보르도에서 시작해 보르도에서 끝나다]] (1449~1453) === [[파일:Bataille_de_Castillon_1453.jpg |width=550]] >하지만 마침내 잉글랜드인들과 가스코뉴인들은 협상을 요청했고, 프랑스 국왕이 그들의 주권자이자 군주임을 인정하며, 앞으로 프랑스 왕실에 결코 반역하지 않을 것이며, 그의 진실하고 순종적인 신민들로 남으리라는 맹세를 했다. 이 협정은 1453년에 맺어졌다. >---- >장 샤르티에, 샤를 7세의 정복 아라곤 출신 용병 [[프랑수아 드 쉬리엔]]이 이끄는 잉글랜드군이 브르타뉴 국경의 푸제르를 기습 점령한다. 서퍽 공작의 목표는 브르타뉴 공국을 중립 세력으로 되돌리는 것이었으나 프랑스 왕 샤를 7세는 이에 강력히 반발한다. 프랑스군이 반격해 여러 전략적 요충지를 점령한다. 회담에서 잉글랜드는 푸제르 점령을 쉬리엔의 단독 행동이라 주장하지만 먹히지 않는다. 주민들의 봉기를 두려워한 잉글랜드군이 주요 도시들로 흩어진 사이 프랑스군은 여러 전략적 위치를 점령하며 승기를 잡는다. 베르뇌유가 완전히 점령되면서 노르망디의 잉글랜드 주둔지가 동서로 단절된다. 샤를 7세가 이끄는 프랑스군이 루앙을 포위한다. 루앙 주민들의 봉기로 잉글랜드군은 결국 항복하고 노르망디에서 철수한다. 서퍽 공작이 의회에서 탄핵을 받고 국외로 추방된다. 니콜라스호의 선원들이 서퍽 공작을 해상에서 납치한다. 서퍽 공작은 모의 재판 끝에 반역죄로 사형 판결을 받고 참수형을 당한다. 계속되는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잉글랜드는 바이외 등 주요 거점들을 상실한다. 켄트에서 잭 케이드의 반정부 봉기가 일어나 런던을 포위하고 요구 사항을 제시한다. 잭 케이드와 반란군은 런던에 입성하지만 최종적으로 런던 시민들과 왕실 군대에 의해 진압된다. 노르망디에서는 잉글랜드의 마지막 거점들이 연달아 항복하여 잉글랜드는 노르망디의 영토를 전부 잃는다. 카스티용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이 패배하고 탈보트와 그의 아들이 전사한다. 보르도가 함락되면서 가스코뉴 전체가 프랑스의 수중에 들어간다. 이로써 잉글랜드는 116년에 걸친 전쟁에서 프랑스에 패배하며 칼레를 제외한 모든 대륙 영토를 상실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