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두대간 (문단 편집) == 논란 ==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백두대간과 정간/정맥은 18세기 신경준[申景濬, 1712-1781][* [[영조]]대의 문관, 지리학자. 호는 여암. <강계지>, <동국여지지>, [[산경표]]를 비롯한 다양한 지리서, 지도를 제작했다. 영조의 명으로 편찬된 백과사전인 [[동국문헌비고]]의 지리파트 여지고(輿地考)를 담당했다.]이 썼다고 추정하는 [[산경표]](山經表)를 기본으로 한다.[* 신경준이 쓴 책을 본 다른 사람이 썼다는 주장도 있다.] 여기서 대간 / 정간 / 정맥은 근대적 지리 개념인 산맥과는 개념이 다르다. [[산경표]]의 저자는 [[족보]]를 쓰는 방법에 따라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대간과, 대간에서 갈라진 정간/정맥들을 이루는 산줄기를 정리하였는데, 족보 쓰는 방법을 따랐으므로 산경표를 '산들의 족보'라고 말하기도 한다. 백두대간이란 개념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잊혔으나, 1980년에 아마추어 고지도 연구가 이우형(李祐炯)이 인사동에서 산경표를 찾아내어 다시 빛을 받았다. 이우형은 백두대간을 그 시기의 전국구 트롤러였던 [[산악인]] 커뮤니티에 적극적으로 알렸고, 산악인들도 이에 호응하여 백두대간 줄기를 직접 발로 밟으며 확인하였다. 백두대간이란 개념은 이렇게 다시 빛을 받아 세상에 드러났다. [[구한말]]에 일본인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郎, 1856-1935)가 1900년부터 1902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14개월 동안 한반도를 답사하고 1903년에 태백, 소백, 차령, 노령, 마식령 등 산맥 명칭과 분류를 명명하는데 이 때 추가령(楸哥嶺, [[원산]] 근처 [[고개]]) 부근에 지질을 구조적으로 분할하는 [[추가령 구조곡]]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여, [[태백산맥]]과 낭림산맥을 별도로 분류하였다. 현재 추가령은 북한이 실효지배하므로 현장 지질조사를 할 수는 없지만, 대한지리학회나 지질학회 등 학계에서도 [[철원군]] 근처의 지형을 연구하며 이 용어를 사용한다. 추가령을 북한이 실효지배할 뿐, 추가령 구조곡은 경기도 북부에서 강원도 북부에 이르는 길다란 단층선곡(斷層線谷)을 가리키므로 남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직접 추가령에 가지 않더라도 추가령 구조곡에 포함되는 경기도 북부(파주, 연천) 지방을 조사하여, 추가령 구조곡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미 입증하였다.[* 추가령에서 경기도 북부로 한북정맥(漢北正脈)이 산줄기를 뻗는다. 한북정맥 중 사람들이 알 만한 산이라면 [[북한산]]이 있다.] * 추가령이 대충 어떤 모습인지 확인하려면 [[구글 어스]]에 들어가서 '강원도 세포'라고 검색어를 입력하여 화면을 살펴보라. 경기도와 원산 방향으로 평지가 펼쳐졌고, 강원도 세포군과 고산군 사이에 좁고 긴 [[고개]]가 있는데 여기가 추가령이다. 과거에는 이 선곡이 단층활동 때문에 유독 저지대가 되었다고 보고 추가령 지구대라고 불렀다. 그러나 지질학적으로 연구하자 의견이 달라졌다. 여기에 좁고 길며 낮은 화강암 지대 저지대가 발생한 이유는 침식이라고 확인하여 지금은 '추가령 구조곡'이라고 부른다. * 어떻든 이 부근은 발생원인을 두고 용어 차이가 있을 뿐 주변에 비해 유독 저지대임이 분명하다. 참고로 서울-추가령-원산에 이르는 루트는 한반도의 동서를 잇는 자연루트 중 가장 완만하기 때문에 조선 후기부터 경흥로(慶興路)의 지선 삼방로(三防路)라고 부르며 교통로로 이용하였고, 일제강점기에는 추가령을 통과하는 [[경원선]]이 개통하였다. [[2005년]]에는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한반도 산맥이 하나로 이어진다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1&aid=0000027348|주장을 국토연구원이 다시 제기하기도 했다]]. 대한지리학회 측에서는 이에 대해 [[http://www.kgeography.or.kr/news_main.php?uid=128&category=news&bn=read|강력하게 반발하였다.]] 백두대간에 대한 반박만 요약하면, "산맥"이라는 단어는 눈에 보이는 지형(분수계)을 기준으로 삼지 않으며 지반운동을 파악하려는 도구인데, 국토연구원은 [[민족주의]] 역사관과 대중적 홍보에만 집중한 나머지 산맥에 대한 지질학적 개념을 싸그리 무시하고 발표했다는 것이다. 대한지리학회는 '사기극' 같은 과격한 표현까지 사용하며 공개토론을 제안했지만 성사되지 못했고, 2007년에도 [[http://news.donga.com/3/all/20071207/8520118/1|비슷한 논쟁이 벌어졌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위 논쟁에서 중요한 점은 추가령 구조곡을 산맥이 끊어졌다고 볼 것인가, 이어졌다고 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학술적인, 그리고 국제적인 산맥 개념은 눈에 보이는 연속적인 산(분수계)이 아니므로 산의 연속으로 보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한반도 지질구조는 [[http://www.scienceall.com/contents/contents.sca?todo=contentsraw&bbsid=226&articleid=235629|추가령 구조곡을 경계로 남북간 차이가 있기 때문에]][* 추가령 구조곡을 기준으로 북쪽 지역은 10억 년 이상된 선캄브리아대 변성암류와 고생대 지층이 대개인 반면, 남쪽 지역은 중생대 지층도 넓게 분포한다.] 추가령 구조곡이 단절인가 연속인가 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추가령 구조곡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한반도 남북간 지질학적 구조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추가령이 인근 산에 비해 저지대 고개라고는 하지만 해발 599m로 일반인이라면 연속된 산의 일부라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추가령은 분수령의 역할을 하는 고개가 아니라 개석곡의 경사급변점에 해당된다.[* 이민부, 이광률. 추가령 구조곡의 지역지형 연구. 대한지리학회지 2016;51(4):473-490] 즉 추가령지점에서도 안변 남대천(동해)이 남서쪽으로 즉 상류방향으로 계속 한참을 파고 들어가 [[세포군]]에 위치한 경원선의 [[성산역(강원선)|성산역]]부근 넓은 평지에서 물줄기가 희미해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성산역부근에 휴화산인 680고지가 있고 바로 아래 남쪽에 [[임진강]]의 지류인 평안천(서해)이 흐르는 걸로 봐서 680고지가 물줄기를 동서로 분수역할을 하는 즉 백두대간이 680고지를 통과하는 걸 의미하는데 백두대간이 통과한다고 하기엔 산세가 너무 약하다[* 이민부, 이광률, 김남신. 추가령 열곡의 철원-평강 용암대지 형성에 따른 하계망 혼란과 재편성. 대한지리학회지 2044;39(6):833-844]. 또한 미약한 산세와 주변 넓은 평지 때문에[* 주변 넓은 평지도 해발 600 m는 되기 때문에 680고지는 무척 낮아보인다.] 고미탄천(서해), 평안천(서해), 안변남대천(동해)끼리 하천 유역쟁탈전(특히 홍수때)이 벌어져 상류상실, 유로절단, 소택지화, 호소화, 매몰과 평탄화 등의 현상을 보여 680고지가 완벽히 동해와 서해방향으로 가르는 분수역할을 한다고 보기가 어렵다. 한편, 지리학회는 일반인의 이러한 시각을 존중하여 산맥과 구별되는 '산줄기 지도'를 제안하기도 하였다. 지반운동으로 생긴 산맥에 비해 눈에 보이는 공간적인 연속성에 방점을 찍은 개념이다. 다만 산맥은 학술적 용어이므로 완전히 별개이다. 학술적으로는 [[추가령 구조곡]]에서 백두대간이 끊어진다고 보는 게 당연하나, 이는 분단고착화와 연결된 문제이고, 하필 이 지역이 휴전선이 있는 곳이기도 한 탓에 논리적으로만 보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