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두산(밴드) (문단 편집) === 침체기 === 유현상은 백두산을 그만두고 최윤희와 결혼 후에 [[트로트]] 가수로서 활동하게 된다. '''여자야'''나 '''갈테면 가라지''' 같은 곡은 굉장히 히트해서 먹고 사는데 지장이 별로 없을 정도로 벌이가 되었다고 한다(...).[* 한 번은 한 소속사 사장이 유현상에게 "저기, 유현상 씨. 일단 계약금은 이 정도로 하고 나중에 더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며 계약서를 들이밀었는데, 유현상이 그 '이 정도'에 깜짝 놀라 잠깐 얘기를 멈추고 건물 옥상에 올라가 숨을 고른 후에 얘기를 계속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공백기 중에 사기사건으로 기소된 [[흑역사]]도 존재한다. 이 변절이 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사실 트로트 시절에도 [[유현상]]은 별 차이는 없었다. [[유현상]]의 보컬은 기교가 없는 담백한 타입이었고 트로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탓인지 [[유현상]]은 2000년대 들어서 예능 프로에 나와서도 트로트를 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도균]]은 실력을 갈고 닦기 위해 앨범에 참여하고, 1989년 [[임재범]]과 함께 [[영국]]으로 떠난 뒤 '아시아나(Asiana)'를 결성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고, 1993년 베이시스트 김창식, 새 드러머 최경섭(최소리)과 함께 다시 백두산을 재결성한 뒤 3집 ''''을 발매한다. [[김도균]]이 기타뿐만이 아니라 리드 보컬까지 함께 맡은 이 앨범은 이전 백두산의 앨범들과 달리 하드락 성향을 띤 앨범이었으며, '너를 기다리네', '사랑할거야'[* 이 발라드 넘버들에서 김도균의 흉성을 이용한 보컬이 의외로 상당히 잘 어울린다. 현재 예능에 나오는 김도균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들어보길 추천한다.]와 같은 발라드곡이 인기를 끌었으나, 별다른 활동이 없었다. 이후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면서 불명예스러운 해체를 맞이한다. 2006년 베이시스트 김창식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출신의 드러머 이건태와 '거북선' 출신의 보컬리스트 안승배, 그리고 브루탈 데스메탈 밴드 'DOXOLOGY'의 기타리스트 문한규와 함께 백두산을 재결성하게 되고, ''''를 발매한다. [[김도균]]과 [[유현상]]이 이끌었던 기존의 헤비 메탈/하드락 성향이 강했던 초창기 백두산과 달리 김창식이 주도해 결성된 백두산의 스타일은 스래쉬 느낌이 드는 파워메탈 성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겠으나, 어쩌면 당연하게도 오리지널 백두산 팬들에게 많은 반감을 샀다.[* 결국 그때문에 밴드명도 '파워 백두산'으로 변경되었으며, 오리지널 백두산 팬들은 현재 이 파워 백두산을 '백두산과 연관없는 전혀 다른 밴드'로 인식하고 있다. 현재 원년 멤버들로 백두산이 다시 활동하게 되면서 더더욱 그렇게 되어버린 듯 일종의 흑역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