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래시(도서) (문단 편집) === 피학증적 [[성격장애]]: 학문적 백래시? === ||'''※''' 이 단락의 서술은 임상심리학 전공자의 확인 및 보완을 기다리고 있음에 유의. [[DSM]]의 변천과 개정에 대해서 학계의 중론에 해박한 이용자가 관련근거를 첨부하여 보완하기 전까지, 이하의 서술은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바라본 기술임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편의상 위 단락에서는, 학계에서 생산되는 수많은 미가공 통계 데이터들을 대중매체가 어떻게 선택적으로 '낚아채서' 사람들에게 퍼뜨리는지를 묘사하기 위해, 학계 자체의 백래시 여부는 상당히 중립적으로 기술했다. 이쯤에서 생각해 볼 만한 것은, 대중매체가 그렇다면 '''과연 80년대의 [[과학자사회]]는 어떠했는가''' 하는 것이다. 이상적으로는, 과학의 [[자기교정성]]과 [[동료평가]]의 프로세스를 통해서, 학자들은 (개인의 가치관이나 신념과는 무관하게) 경험적으로 현실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설명을 따르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현실은 종종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팔루디가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지식사회학 분야의 페미니스트 이론가인 샌드라 하딩(S.Harding)에 따르면, 과학자사회의 지식축적 프로세스 자체가 남성 편향적으로 작동하기에, [[사회적 약자]]들의 입장(standpoint)까지 담아냄으로써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데 실패하게 될 수 있다. 본서에서 소개되는 분야는 임상심리학(clinical psychology)으로, 저자가 특히 12장에서 걱정스러워하며 소개하는 한 사건이 있다. 위에서 지나가듯 소개했지만 80년대는 여성들이 겪는 사회적 문제를 여성 개인이 자초한 스스로의 잘못으로 설명하려 하는 자기계발서와 심리치료서들이 다수 나타났으며, 이때 여성들도 자기 자신이 심리적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고 여겨, [[자기계발서]]와 테라피의 수요가 폭증했다. 물론 p.506에서 인정하듯이, 삶의 어려움들 중 많은 것들은 개인적인 이유로 인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어떤 어려움들은 사회적인 요인으로 인해 발생하기도 한다는 점이었다. 수많은 [[불쏘시개]] 수준의 자기계발서들과 TV 대중강연자들, [[목회상담]] 전문가로 자처하는 '목사님' 들, [[내면아이]](inner child)를 이끌어내라고 권유하는 자칭 심리전문가들, 부부생활에 대해 강연을 하는 [[방송교수]]가 매일같이 강조했던 것은, '''"여성들이 느끼는 어려움은 결국 본인들과 페미니즘이 자초한 것이며, 이를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여성해방"''' 이라는 이야기였다. 이런 류의 서적들의 예를 들자면, 멜빈 킨더(M.Kinder)와 코넬 코완(C.Cowan)이 지은 80년대의 베스트셀러 《Smart Women/Foolish Choices》 가 우선 꼽힐 수 있고, 그 외에도 수전 프라이스(S.Price)와 스테판 프라이스(S.Price)의 《No More Lonely Night》, 임상심리학자이자 라디오 진행자 토니 그랜트(T.Grant)의 저서 《Being a Woman》, 여성성 회복 운동가 로빈 노우드(R.Norwood)의 베스트셀러 《Women Who Love Too Much》 등이 있다고 한다. 물론 저자 팔루디는 이런 [[대중심리학]]과 실제 학계에서 논의되는 것들을 구분한다. 이런 많은 "조언" 들은 그저 한철장사용으로 소비되고 잊혀졌다. 하지만 저자가 심각하게 바라본 것이 있었는데, [[1987년]]에 임상심리학계에서 '''DSM-III-R 개정을 하는 과정에서 백래시의 요소가 포함되었다'''는 것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이것은 앞서의 자기계발서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문제였다. 당장 의사들이 진단하고 처방하는 과정에서 쓰이는 권위 있는 문헌이 [[DSM]]이었고, 특히 질병의 진단코드가 등록되어 있는 경우에는 보험금 처리나 법적인 증빙까지도 가능할 정도로 '''절대적인 사회적 영향력을 끼치는 문헌'''이 바로 DSM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문헌이 개정되던 과정에서는 페미니스트들이 불만을 제기할 만한 지점이 있었다. 당시 새롭게 추가하려던 진단명 중에 "피학증적 [[성격장애]]", "월경전 증후군", 그리고 "성도착적 [[강간]]장애" 가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었던 것이 바로 '''피학증적 성격장애'''였다.[* 월경전 증후군은 여성들의 평범한 일상생활을 자꾸 병리화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지만 그래도 학계에 가장 무난하게 안착했으며, 현대에도 유의미하게 통용되는 진단명이 되었다. 성도착적 [[강간]]장애는 남성들의 강간을 합리화한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이건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도 영 아니다 싶었는지 부정적인 의견이 많아서 최종적으로는 등재되지 못했다.] 임상심리 분야를 변호하자면, 피학증적 성격장애의 추가는 [[의도는 좋았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었다. 이것은 가정폭력을 당하는 일부 여성들이 그 상황을 개선시키지 못하는 문제에 개입하기 위해 제기되었다. 아무리 공권력이 "당신 남편이 문제라고요!" 라고 말해도, 어떤 아내들은 도리어 "아니에요, 제가 좀 참고 견디면 되죠, 우리 그이를 잡아가지 말아요" 라며 가해자 편을 들어서 사법 당국의 뒷목을 잡게 만드는 경우가 있었다. 연구자들은 이것이 잠깐 그러다 마는 일과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평생에 걸쳐서 만성적으로 나타나는 문제, 즉 [[성격]]의 차원에서 나타나는 문제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여성이 계속해서 생명의 위협에 노출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의료적으로라도 개입해야 한다면 그렇게 개입해야 했다. 문제는, 이런 의도에도 불구하고 임상심리학 분야의 여성 학자들은 찜찜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진단명은 가정폭력 문제의 원인을 가해자의 공격성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 여성의 '[[피학증|학대를 즐기는]]' 성격에서 찾도록 '''논의를 오도할 가능성'''이 있었다. 이는 마치 이 진단을 받은 여성이 남편에게 매를 맞으면서 그것을 내심 즐기고 바란다는 듯한(…) 이상한 이미지를 풍겼다. 문제는 진단명이 등재되는 학술적 의의에만 그치지 않았다. 병원 현장에서 이제 여성들은 자기 삶 속에서 조금만 이타적으로 살기만 했어도 곧바로 "피학증적 성격장애" 라는 딱지가 붙는 '''과잉병리화'''의 가능성도 있었다. 팔루디는 DSM에 새로 추가하려는 진단명의 진단기준치고는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기준이 정해졌다고 비판했다. 이 새로운 진단명의 추가는, 저자에 따르면, '''학계 내적으로도 절차적인 문제가 있었다.''' DSM에 피학증적 패턴을 성격장애의 일원으로서 추가하려 했던 학자들은 정작 정신의학 분과의 여성위원회 위원장 테레사 베르나르데스(T.Bernardez)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 표결을 진행했으며,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그가 DSM 담당자인 로버트 스피처(R.L.Spitzer)에게 항의했으나 지속 묵살되었다. 베르나르데스는 공청회라도 열어 달라고 간청했지만 이는 계속 묵살되었는데, 페미니스트 상담 연구소(Feminist Therapy Institute)에서 [[너 고소|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언하고 나서야 겨우 공청회가 성사될 수 있었다. 물론 이 공청회의 남녀 비율은 극심한 [[남초]]였고 그나마 허용된 여성 학자들의 '숙녀답지 못한' 발언도 자주 끊겼지만, 이런 것들은 학문적으로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을 듯했다. 스피처를 포함해서 피학증적 성격장애의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편향적으로 표집한 소표본은 "매우 신뢰할 만한 데이터" 라고 주장했지만, 그 반대자들이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여 수집한 대규모 [[사회조사]] 데이터는 "우리 논점과는 무관한 데이터" 라며 묵살하기 일쑤였다. 오해를 막기 위해 말하자면, 적어도 이는 팔루디 개인의 [[피해망상]]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러네이 가핑클(R.Garfinkel) 등의 학회 직원들이 공청회 현장에서 목격한 바를 회고한 내용에 따르면, 당시 DSM의 개정 과정은 마치 '''"점심식사 메뉴를 정하는 수준" 으로 조악한 의사결정'''이었다고 한다.[* 이게 우리나라 문화에서 생각하는 그 이미지와도 거의 똑같다는 게 더 대단할 따름이다.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말 그대로 "자네들 뭐 먹겠나? 난 짜장면. 어허 이 사람아, 의견 통일해" 수준이었다고 하니...] 이건 가핑클의 피해망상도 아니었다. DSM 개정에서 뒷말이야 늘 나오는 법이라지만, 이런 뒷이야기가 알려지자 미국심리학회(APA)가 공식적으로 항의했으며, 정신과 의사 수천 명의 탄원서가 빗발쳤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이 진단명은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는 데에는 성공했다.''' 물론 진단명이 다소 바뀌긴 했다. [[피학증]]이라는 단어 선정 자체가 "이걸 어떻게 '즐긴다' 고까지 볼 수 있는가? [[성차별]]적인 비약이다" 라는 지적을 받아서, 결국 그 이름은 '''자멸적 성격장애'''(self-defeating PD)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논쟁적인 위상에 있다는 점이 인정되어, 더 많은 연구를 요청하는 의미에서 [[월경전 증후군]]과 함께 DSM-III-R의 부록에 추가하는 쪽으로 합의를 봤다. 이후 [[1994년]]에 다시 개정되었던 DSM-IV에서는 아예 PD-NOS로 퇴출되었다. 그러나 이 역시 찜찜한 뒷이야기가 있는 데에는 예외가 아니었다(…). 대개 부록에 게재되는 진단명들은 진단코드를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임상 현장에서의 활용을 자제시키는 경향이 있지만, 자멸적 성격장애는 예외적으로 '''301.90 진단코드'''를 부여받았다는 것. 팔루디가 [[인용]]한 한 문헌에 따르면,[* Winkler, B. (1986). Scholar's conflict in Sears sex-bias case sets off war in women's history. Chronicle of higer education, 5, 1-8.] 학계에서 [[오프 더 레코드]](?) 식으로 주고받던 사적인 대화는 더욱 가관이었다고 한다. 당시 [[남성]] 학자로서 피학증적 성격장애 등재에 반대한 사람들은 "여자들에게 굴복할 셈이냐?" 는 조롱을 받았다는 것. 게다가 속칭 "조직의 쓴맛" 은 학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베르나르데스는 여성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연임하지 못하는 이례적인 인사조처를 받았고, 그와 같이 일하던 다른 여성들도 이듬해 전부 인사교체되었으며, '숙녀답지 못하게' 굴어서 남성 학자들의 눈 밖에 난 여성 연구원들도 스피처에게 저마다 크고 작은 응징을 받았다는 것이다. 남은 이야기로, 당시 이 개정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인물인 스피처는, [[성소수자]]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아마 이래저래 눈에 익은 이름일지도 모른다. 그는 임상심리학 분야에서는 DSM의 대부격인 인물인데, 일찍이 "[[동성애]]는 정신병이 아니며, 따라서 DSM에서 삭제해야 한다" 고 꾸준히 압박을 가했던 경력으로 인해 동성애자들에게 감사를 받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 인물은 [[2001년]]에 "간혹가다 자신의 [[성적 지향]]을 변화시키는 사례가 있다" 는 논문을 쓰는 바람에 게이 커뮤니티를 발칵 뒤집어 놓았으며, 이걸로 "변절자"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후, 당시 자신이 인터뷰했던 [[참가자]] 중 하나가 반동성애 진영의 [[탈동성애 운동|전환치료]](conversion therapy)에 참여한 이력이 있음을 숨겼다는 것이 뒤늦게 알려져서, 스피처는 마침내 자신의 논문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게재 철회]] 요청을 했으나, 저널에서는 묵묵부답이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