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래시(도서) (문단 편집) === 백래시가 이윤추구를 이기다? === [[경제학]]과 [[경영학]]을 접한 적이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간은 이익에 반응한다" 는 말은 매우 익숙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변용하여 "기업은 돈이 된다면 [[원숭이]]라도 기꺼이 고용할 것",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결국 경제논리를 따를 수밖에 없다", "기업이 자꾸 불법행위나 부도덕한 행위를 하는 것을 막으려면, 그것이 더는 이익이 되지 못하게 하면 된다", "결국 장기적으로 보아, 소비자의 수요와 선호를 의식하는 공급자만이 시장에서 살아남는다" 는 진술들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이를 젠더 문제에 질박하게나마 대입할 경우, 흥미롭고도 매우 논쟁적인 추론이 얻어진다. 즉, '''[[성차별]]과 같은 백래시가 이윤추구의 목표와 직접적으로 상충한다면, 시장에서는 장기적으로 성차별이 소멸될까?''' 백래시에 관여함으로써 기업은 자신의 이익을 감소시키는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고, 이런 기업들은 다른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장의 다수가 성차별을 한다 해도, 그렇지 않은 기업이 경쟁력을 지닌다면, 결과적으로 너도나도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성차별을 그만둘지도 모른다. 예컨대 방송국들은 여성들이 공감하기 힘든 요조숙녀형 주인공을 가지고 드라마를 만들면 시청률이 떨어진다는 여성단체들의 지적에 대응하여 시장조사를 실시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소비자들이 (여성단체들의 주장처럼) 정말로 주체적 여성상에 더 잘 공감하고 매료된다는 것을 확인했다면, 이를 근거로 좀 더 능동적인 커리어우먼 캐릭터들을 많이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그 방송국의 더 많은 이윤을 보장할 것이다. 의류 제조사들은 여성들이 진정으로 원하고 구매할 의향이 있는 옷들을 중점적으로 생산함으로써 이윤을 극대화할 것이며, 여성들이 그다지 원하지 않는 옷은 생산량을 줄이거나 아예 생산을 그만둘 수 있다. 만일 매출이 감소한다면, 공급자는 다방면의 시장조사와 분석을 통해서 소비자들의 선호와 취향이 어떻게 변화해 가고 있는지 예민하게 탐지하려 할 것이다. ...이상의 추론이 교과서 속에서 굴러가는 경제 속에서의 경제적 주체들의 의사결정 방식이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성재기]] 씨 역시 이와 비슷한 요지의 발언을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1980년대]] 미국 경제에서는 이런 경향이 나타나지 않았고, 말하자면 오히려 정반대로 흘러갔다.''' 이번 단락에서 주목할 점은, 백래시는 때로는 사람들을 경제적으로 '비합리적' 이게 만들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겠다. 정말로 재화의 공급자가 재화의 소비자들이 그다지 원하지 않는 상품만 대량으로 생산하고, 소비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는 [[아몰랑|애써 귀를 막으려 하는 것]]이 가능할까? 팔루디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그때는 정말로 그랬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그 산업의 불황과 소비자들의 불만으로 되돌아왔다.''' 일단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적어도 방송국들의 경우에는 그나마 소비자들의 여론을 들으려는 척이라도 하기는 했다고 하니, 본서의 묘사를 바탕으로 추론해 보면, 산업 분야마다 그 정도에는 약간씩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팔루디가 충분히 많은 사전조사를 했다고 신뢰하는 한, 어느 분야에서도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완벽하게 시장 논리에 입각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지는 못했던 것 같다. 가장 극단적으로 완고하게 '소비자들과 척을 지기로 작정한'(?) 산업 분야를 하나 꼽자면 아마 '''패션업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직관적으로 생각하더라도, [[패션]] [[디자이너]]들은 물론 소비자들의 수요도 생각해야 하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미학과 예술성 역시 중시하며, 소비자들에게 끌려가기보다는 소비자들의 트렌드를 '선도' 하는 것 역시 중요한 자질로 간주한다. 그렇기 때문에, ([[남초|주로 남성들이었던]]) '''패션 디자이너들은 여성들이 대체로 추구하는 패션과는 사뭇 다른 옷차림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사실, 당장 이미 [[1947년]]에 전례가 있었다. 전쟁 중 바지와 헐렁한 옷, 굽 없는 신발의 편안함과 실용성에 매혹된 여성들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 옷차림을 포기하지 않았고, 패션업계 역시 "여성을 여성답게 하는" 자신들의 디자인 철학을 타협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훗날 '''"패션 전쟁"''' 이라고까지 불리게 된 이때의 갈등 속에서, 《타임》 은 이로 인해 패션업계 주문량이 60%까지 감소했다고 보도했었으며, 여성들은 "무릎 조금 아래 클럽"(Little Below the Knee Club)에 가입해서 패션업계에 압력을 가했었다. 참고로 이때 패션업계를 선도하던 디자이너가 저 유명한 [[크리스티앙 디오르]](C.Dior)였다! 2년간의 전쟁은 결국 디오르가 승리하는 쪽으로 끝났었고, 여성들은 조금 덜 야단스러운(?) 드레스 대신에 더더욱 허리를 으스러뜨릴 듯한 [[코르셋]]이라는 타협안을 얻었었다. 그런데 80년대에 또 다시 비슷한 구도가 재현된 것. 사실 80년대의 소위 '트렌드' 는 페미니즘 열풍이 불던 70년대와는 정반대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70년대에는 도리어 직업여성들을 대상으로 하여 "성공하고 싶다면, 고급스러운 양복을 입어라" 라는 파워 드레싱(power dressing)의 메시지가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는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실용적이고 직업적인 용도의 옷을 찾게 만들면서, 점점 드레스 매출량이 줄어들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패션업계에 이는 골칫덩이가 되었는데, 정장은 유행을 잘 타지 않는 반면 드레스는 매번 새로운 유행이 닥치면 새로 사야 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드레스 시장의 규모가 더 컸기 때문이었다. 이 점에서는, 80년대에 드레스 시장을 중점적으로 판촉하기로 한 것은 분명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그러나 이때 드레스 디자인을 선도하던 디자이너들은 '''여성들이 어떤 디자인의 드레스를 원하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당시 잘 나가던 패션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라크루아'''(C.Lacroix)는 미국 최상류층 여성들을 타깃으로 하여, '인형 옷차림', '어린 처녀', '여성의 순결함' 으로 표상되는 '''"고결한 여성성"''' 컨셉에 강박적으로 매달렸다. [[https://www.google.com/search?tbm=isch&source=hp&biw=1366&bih=632&ei=AHrUW9WrC4Sj8QXpqK_ICA&q=%22Christian+Lacroix%22+dresses&oq=%22Christian+Lacroix%22+dresses&gs_l=img.3..0i19k1.449.9942.0.10150.34.31.3.0.0.0.540.4358.0j21j3j5-1.25.0....0...1ac.1.64.img..6.27.4256.0..0j0i30k1j0i30i19k1j0i8i30i19k1.0.BFNcAHYS9pQ#imgrc=_|#크리스티앙 라크루아의 드레스 보기]] 그 결과 이 업계에서는 여성스러운 주름 장식과 우아한 페티코트를 활용해 '어린 소녀처럼', '인형처럼' 차려입는 것이 갑작스레 주목 받았다. 남성들로 구성된 패션 담당 기자들은 "라크루아는 40년 후 다시 태어난 디오르다!" 라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문제는, 정작 여성 소비자들은 라크루아의 집착에 가까운 코르셋과 버슬(bustle), 장미꽃 모자, 온갖 요란한 장식이 달린 풍성한 순백색의 드레스에는 '''흥미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최상류층 여성들이 사교 모임이나 심야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간간이 막대한 대금을 지불하며 구입해 주자, 라크루아는 용기를 얻어 더 넓은 기성복 시장을 노리기로 했다. '''물론 라크루아의 정신 사나운 [[장미]]와 [[나비]] 드레스는 일반인 여성들에게는 우스꽝스럽게 보일 뿐이었다.''' 저자 팔루디는 이런 옷차림이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관건으로, '''"여성들이 이 옷을 입고 출근할 수 있는가? 적어도, 중요한 자리에는 입고 갈 수 있는가?"''' 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성들은 적어도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예컨대 캐슬린 퓨리(K.Fury)라는 칼럼니스트는 "직장 남성 동료들부터 먼저 유아복(rompers)을 입고 출근한다면 우리도 생각해 보겠다" 면서 '파티 인형' 이 다 되어 버린 여성용 의류의 현실을 비꼬기도 했다. 그러나 남성 도매상들은 엄청난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팔루디가 인터뷰한 도매상 로런스 윌스만(L.Wilsman)은 "(우리는 여성들이 이런 옷을 좋아할 줄 알았지만) ...그들이 정말로 원하는 건 좀 더 진지한 사람으로 비칠 수 있는 옷인 것 같다" 고 당혹스러워했다. 하지만 디자이너들은 소비자들의 냉담한 반응에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답답해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여성들에게 정말 제대로 옷 입는 법을 좀 훈계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트렌드(?)의 또 다른 주도자였던 디자이너 아놀드 스카시(A.Scaasi)는 자신의 디자인 철학이 "페미니즘에 대한 전쟁" 이라고 공공연히 말했으며, 업계에서는 페미니즘 때문에 여성들의 패션 센스가 곤두박질쳤다고 불만스러워했다. 즉 "옷은 이렇게 입는 거라고 아무리 가르쳐도 여자들은 도통 들어먹지를 않는다" 는 것이다. 디자이너 밥 맥키(B.Mackie)는 페미니즘이 여성들로 하여금 여성의 옷을 입을 '권리' 를 빼앗았다고 주장하며, 여성성의 아름다움을 고갈시켰다고 생각했다. 이 시기의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패션쇼에서 늘 모델들에게 꽉 끼는 코르셋, 가슴골을 내놓는 상의, 투명한 원단, 짧은 미니스커트를 강요했고, 자신들의 권위를 극대화하기 위해 여성들에게 '사랑스런 어린 딸' 처럼 아장아장 걸으라고 요구했다.[* 저자에 따르면 심지어 80년대 패션쇼에서 자주 활용되던 소품 중에는 모델이 안고 걸어야 할 [[테디베어]] 인형도 있었다고 한다.] 이들이 기준으로 삼은 모델의 신체는 전체 미국 여성의 4분의 1도 채 만족시키지 못하는 비율이어서, [[피에르 가르뎅]](P.Cardin)의 옷 중 일부는 너무 몸에 꽉 조여서 모델이 팔을 아예 움직일 수 없었으며, 로메오 질리(R.Gigli)의 옷들 중에는 심지어 모델을 구속복처럼 밧줄로 묶어놓은 것도 있었다고. --[[귀갑묶기|이런 거]] 아니다-- 종합적으로, 당시 남성 디자이너들의 공통된 인식은 '''"여자들은 우리 생각대로 옷을 입어야 매력적이지, 여자들이 자꾸 남자처럼 옷을 입으면 여성성을 잃을 거다"''' 라는 것이었다. 대담하게도 소비자들의 수요와 선호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길을 선택한 라크루아에게, 시장은 얼마 못 가서 확실한 매출 실적으로 보답(?)했다. 라크루아의 드레스들은 패션잡지들의 열화와 같은 찬사를 받으며 출시된 지 '''불과 한 달 만에''' 미국 전역의 [[백화점]]들에서 할인 행사에 들어가야 했으며, 한 시즌이 지난 뒤에는 '''백화점에서 가장 안 팔리는 재고'''로 분류되었다. 그 결과 [[1989년]]에 라크루아 디자인하우스 측에서 발표한 적자는 '''무려 930만 달러에 이르렀다.''' 팔루디가 보기에, 당시 시장 자체가 전반적으로 불경기여서는 아닌 것 같았다. [[1987년]] 데이터를 바탕으로 볼 때, 성수기와 비성수기를 막론하고 여성복 판매량 수치만이 비정상적인 하락세를 보였으며, 같은 기간에 남성복 판매량은 도리어 2.1% 증가세였고 주택, 자동차, 외식, 의료서비스 등의 지출 역시 함께 증가하던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시장의 침체가 일종의 "추가타" 는 될 수 있었다. 동년 10월에 있었던 "블랙 먼데이" 는 침체된 패션시장에 가해진 최후의 일격과도 같았다고.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판매하기를 그만두고 도리어 공급자들이 원하는 것을 판매하려는 이상한 경향은 미용 산업에서도 나타났다. [[향수]] 시장에서 70년대에 여성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브랜드 "찰리"(Charlie)는 당당한 싱글 직업여성 이미지를 내세워서 굉장한 브랜드 충성도를 확보했었다. 헌데 일반적인 기업논리와는 조금 다른 의사결정이 나타났다. '''80년대에 이 브랜드가 갑작스럽게 [[광고]]를 중단한 것이다.''' 그 근거는 판매고 하락이나 시장 동향의 변화가 아닌, 제조사 내부의 고위 임원들끼리 "페미니즘의 시대는 지나갔다" 고 [[뇌피셜|주관적으로 추측한 것 외에는 없었다]](…). 향수 시장의 동향 역시 '숙녀다운 숙녀', '천상여자', '귀여운 아가씨', '창백하고 가녀린 숙녀', '연약하고 미성숙한 소녀' 쪽으로 흘러갔다. "레브론"(Revlon)이나 "니베아"(Nivea) 등 오늘날에도 이름만 대면 다 알 법한 회사들이 그 주축이었다. 하지만 이 시장의 주요 고객들은 그런 '품위 있고 우아한' 상류층 사교계 여성이 아니라 10~20대 [[서민|중~저소득층]] 여성들이었던 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여기서도 그 결과는 처절했다. [[1982년]]에 레브론 사는 '''이윤의 40% 폭락'''이라는 기록적인 사태를 맞이했으며, [[1988년]] 4분기에 "에이본"(Avon) 사는 57% 이윤 하락으로 인하여 '''전체 직원의 3분의 1을 한꺼번에 해고했다.''' 앞서 소개하기로는 방송 업계에서는 그나마 백래시가 덜하다고 하긴 했지만,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면 오히려 그만큼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70년대에 한창 인기를 끌던 여성해방, 낙태, 의식고양 등의 이슈들은 에스터 샤피로(E.Shapiro)와 같은 제작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방송국 고위 간부들의 격렬한 저항에 의해 (시청률과는 무관하게) 폐지 수순을 밟아야 했다. 80년대에 그나마 페미니즘의 의식을 잘 반영했다고 평가되는 '''〈The Women's Room〉''' 역시 된서리를 피하지는 못했다. 당초 [[미니시리즈]]로 기획된 이 드라마는 "어차피 그런 논쟁적인 건 여성 시청자들을 불쾌하게 만들 게 뻔하다, 시청률이 한 자리 수로 나오면 누가 책임지겠나" 와 같은 압력 속에서 단편 특집으로 축소 방영되는 데 그쳤다. 하지만 단 한 편 방송된 그 드라마는 '''그 주 사상 최대 시청률인 45%를 기록했다.''' 나중에 [[에미상]]까지 받은 건 덤. 반면 여성들이 죄다 집 안에 머무르는 전통적 가족관을 드러낸 〈Thirtysomething〉 의 경우, 남성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매우 좋았지만[* 이 작품은 인기가 낮은 것은 아니었다. 특히 [[조지 부시]]도 이 작품을 언급한 바 있으며, 심리치료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제고했다는 호평도 많고, 에미상 등도 많이 수상했다.] 여성 시청자들은 심드렁했다. 이들은 꾸준히 "주인공을 집 밖으로 내보내라" 고 요구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시청자가 아닌 제작자들이 집을 지키는 주인공에 대해 만족스러워했다.''' 그 결과 시청률에 유의미한 타격이 가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고주들은 애타기는커녕 "고급 시청자들에게는 시청률이 높다" 고 고집을 부리면서 애써 태연한 척했다. '시청자들의 니즈' 가 아닌, '제작자들의 니즈' 가 반영된 것이다. 더욱 극단적인 방송가의 사례는 아마 '''〈Cagney & Lacey〉''' 일 것이다. 이는 두 명의 강인한 여성이 등장하는 TV 영화로, 작중 몇 번 "젠장" 이라는 대사가 나온다는 이유로 CBS 임원들에게 '저속한 표현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고 불쾌해하는 반응을 얻어야 했다. 어쨌거나 이 TV 영화가 막상 방영되자 여성 시청자들은 주인공들의 강인함을 동경했고,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냈으며, 시청률은 '''42%를 기록했다.''' 이에 고무된 제작진은 이 기세를 몰아 TV시리즈로 확대 방영을 추진했는데... '''윗선에서 갑자기 잘라 버렸다.''' 처음에는 거두절미하고 "시청률이 낮다" 고만 둘러대던 임원들은, 제작진의 간곡한 호소에 마침내 "방영 포스터가 고상하지 못하게 저게 뭐냐? 그리고 주인공으로 나오는 여자들도 거칠어서 보기 싫다"(…)는 꽤나 솔직한 대답을 듣게 되었다고. 하지만 '시청자들의 니즈' 라는 것이 대단하기는 했으므로, 임원들은 타협안을 찾기로 했다. 이 작품의 강인한 여성에 대해 '저속한 여성', '문란한 여성', '하류층 여성' 으로 인식하던 임원들은 이 설정부터 뜯어고칠 것을 요구했다. 마침내, 두 주인공이 연약하고 의존적이며 조용하고 순결하다는 설정을 덧붙임으로써 '존경할 만한 상류층 여성' 으로 만들어내는 조건을 걸고 방영이 허가되었다. 당시 CBS 부사장 아놀드 베커(A.Becker)는 낙태와 같은 이 드라마의 몇몇 이슈들이 "직장 여성들과 페미니스트들에게 위협을 느낄 선량한 전업주부 여성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방영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팔루디의 취재에 따르면 당장 베커의 아내부터가 이 영화의 광팬이었고(…)[* 실제로 팔루디는 본서에서 "유명한 남성 아무개가 이러이러한 작품을 싫어하는데, 알고보니 그 사람 아내는 그 작품의 광팬이더라" 하는 사례들을 꾸준히 들고 있다.] 정작 위협을 느끼던 사람들은 '''전부 방송 업계의 남성 간부들이었다.''' 이후로도 이 작품은 [[1983년]]에 이 심기 불편한 임원들 때문에 한 차례 폐지되었다가, 시청자들의 재방영 요구가 빗발치자 다시 방영했고, [[에미상]]과 [[골든글로브상]]을 숱하게 수상한 뒤, [[1987년]]에 또 갑작스레 폐지되었다. 물론 앞서 설명한 것처럼, 누군가가 정말로 소비자들의 수요를 정확하게 캐치해서 이들의 효용을 위해 상품을 만들어 판다면, 이 합리적인 공급자는 다른 경쟁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본서에 따르면, '''그런 사례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80년대 미국의 사회 분위기에서 이 우위는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지 못했으며, 늘 편향된 의사결정으로 인하여 부정되고 거부되며 묵살되기 일쑤였다. 모두가 "그런 니즈는 없다" 고 부정하니, 결국 경제학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의사결정임에도 전체 시장에서는 '''한때 반짝 하고 사라져 버린 인기상품'''으로 끝나 버리게 된 것.[* 물론 인간은 [[최후통첩]](ultimatum) 게임에서도 보듯이 얼마든지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자주 저지르곤 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속옷]] 시장의 브랜드 '''"Jockey for Her"''' 였다. 이쯤에서 한 가지 또 다른 통념을 되짚어 보기로 하자. 혹시 "여성들이 입는 [[팬티]]는 죄다 하늘거리는 레이스와 예쁜 리본에 프릴이 달린 연분홍빛 시스루 팬티" 라고 믿고 있다거나(…), 적어도 여성들이 그런 팬티를 다른 밋밋하고 장식 없는 팬티보다는 더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정말 그랬다면, 아마도 이번 단락을 관심을 갖고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적어도 80년대 미국 여성들은 거의 전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틈새를 절묘하게 파고들어서 떼돈을 번 케이스가 바로 이 "조키" 브랜드였다. 심지어 여성들 사이에 "조키 입는다" 라고 하면 뭔 말인지 다들 알아들었을 정도. 여성용 속옷 시장에서도 핵심적 주제는 '''투명한 레이스와 고급 [[란제리]], 섹시한 [[가터벨트]], [[뷔스티에]], 거들 등'''이었으며, 이런 퇴행적 변화는 '립스틱 페미니즘' 과 같은 일각으로부터 도리어 페미니즘의 성공으로 포장되기도 했다. "Limited" 사의 사장 하워드 그로스(H.Gross)는 "Victoria Secret" 을 인수한 뒤, "중역 여성들은 [[가버렷|업무 회의 중에 자신이 남몰래 가터벨트와 뷔스티에를 착용하고 있다는 것으로부터 쾌감을 느낀다]]" 고 주장했으나, 확인 결과 이 주장은 남성 인원들끼리 진행하는 [[브레인스토밍]] 과정에서 나온 [[포르노]]급의 상상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의외로 단순했다.''' 실제로 여성들이 자주 찾는 속옷은 편안하게 몸에 맞고, 빨래를 해도 줄어들지 않고, 포근하면서 따뜻한, '''평범하지만 속옷으로서의 기본에 충실한 것'''이었기 때문. 물론 레이스 팬티도 꽤 많이 팔려나가기는 했다... 매대를 찾는 주요 고객들이 아내에게 속옷을 선물하려는 남편들이라는 것만 뺀다면(…). 이런 와중에 속옷 시장에서도 연간 팬티 구매량은 '''전년 대비 31% 하락'''했으며, 2년 가량의 시간에 걸친 여러 회사들의 손해를 합산하면 '''수백만 달러'''에 달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적어도 "Jokey International" 사는 이윤추구에 있어 경제학적으로 더 합리적인 선택을 할 기회가 있었다. 하워드 쿨리(H.Cooley) 신임 사장이 여성들을 위한 실용적 속옷을 만들자고 제안했는데,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남성 고위 간부들과 광고 대행사들이 발칵 뒤집어졌다. 이 남성들은 입을 모아서 '''"세상에 레이스 없는 팬티를 좋아할 여자가 어디 있느냐"''' 고 따졌던 것. 그러나 잃을 것이 없었던 이 신임 사장은 일단 부딪쳐 보기로 하고, 마침내 조키 브랜드를 만들었다. 내친김에 광고모델도 죄다 [[할머니]]나 여성 [[항공종사자]] 등으로 섭외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이 신생 브랜드는 '''이후 5년만에 시장점유율이 40%까지 증가'''했으며 당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속옷 브랜드가 되었던 것. 하지만 주위의 다른 속옷 회사들은 조키의 성공을 보고도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이 시절에 다른 회사들이 열중하고 있던 신상품은 다름아닌 [[T팬티]]였다(…). 유명한 디자이너 오마르 샤리프(O.Sharif)는 "란제리를 보면 그녀가 그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 고 했는데, 이는 이 당시 속옷 시장이 여성 소비자들의 니즈보다는 남성 생산자들의 니즈에 더 치중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