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래시(도서) (문단 편집) === [[명예남성]]들: 위장된 페미니스트 === > "이들은 개인적인 자유와 젠더 정치에 대한 공적인 입장을 분리시킴으로써, '''[[여왕벌|공식적으로는 페미니즘의 영향력을 개탄하면서도 사적으로는 페미니즘을 이용할 수 있었다.]]''' 이들이 실제로 '모든 걸 가질 수' 있었던 건, 다른 모든 여성들이 자신들과 같은 기회를 누리지 못하게 저지하는 일에 열성적이었기 때문이다. > > ...이들보다 더 진정한 의미에서 독립적인 주류의 직장 여성과 싱글 여성들에게는 그들의 기분을 띄워 줄 응원단이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비꼬듯이 흉내 내고, 자신들의 선택에 동정과 조소를 날리고, 자신들의 페미니즘적 '실수' 를 질책하는 대중문화로부터 매일같이 굴욕당했다." > ----- > - 본서, p.397 (서술 순서는 나무위키에서 바꿈) 위에서 소개한 것처럼 이 시기에 백래시를 가장 강경하게 설파하는 사람들은 [[근본주의]] [[개신교]]인들로 구성된 [[뉴라이트]]였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의 홍보 전략으로서, '''[[여성]]이면서 동시에 [[안티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인물들을 언론에 대거 내세웠다.''' 그리고 이런 인물들은 실제로 수많은 미국 여성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어째서였을까? 저자 팔루디는 이들에 대해서, (위에서 인용한 것처럼) 그들이 모든 걸 다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이 여성들은 '''이미 자신의 삶 속에서 [[페미니스트]]로서의 자기실현의 정신을 체화하고 살아갔기 때문에''' 여성들이 그런 그들의 삶을 동경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입으로는 페미니즘 타도를 외쳤지만, 실상 이들의 삶의 방식은 페미니즘의 실천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서 '''[[필리스 슐래플리]]'''를 먼저 꼽아볼 수 있다. 이 인물은 이미 수십 년 전에 미국에서 "페미니즘은 [[전염병]]이다!" 를 강조했던 근본주의 개신교계 여성으로, 오늘날 [[컨서버피디아]]를 만든 앤드루 슐래플리가 바로 이 인물의 아들이기도 하다. 슐래플리는 자신의 저서 《The Power of the Positive Women》 에서 [[마거릿 대처]]를 포함하여 여러 '''슈퍼우먼형 여성 인사들을 거론하며 상당한 호감을 표했는데,''' 이는 어찌보면 오히려 페미니즘적인 행보이기도 했다. 원래 뉴라이트는 "슈퍼우먼들의 신화는 끝났다" 는 백래시의 메시지를 설파하는 진영이었기 때문. 따라서 문제의 책 역시 뉴라이트에 의해서 "배신", "변절", "사상전향", "배교"(…) 같은 소리를 들었어야 할 것 같지만... [[진영논리|그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뉴라이트에서 거칠고 강한 여성상을 보여주는 여성 안티페미니스트의 다른 예로는 '''코노트 마슈너'''(Connaught Marshner)가 있다. 이 인물은 페미니즘 진영에 대해서 "여자들이 사근사근한 맛이 없고 [[마초]] 같아졌다" 면서 비난했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정작 본인부터가 그런 마초 같은 성취지향적 인물'''이었다는 것. 이 사람은 그야말로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정도로 철두철미한 [[능력주의]] 가치관을 가졌으며, 직장에서 굉장히 냉혹하게 일처리를 하는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이 사람도 물론 정계에서 여성으로서 활동하면서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차별을 받았지만, 자기 자신이 차별받고 있다고 쿨하게 인정하면서도 "어 나 그거 아는데, 내가 내 실력으로 얼마든지 돌파해 보일 거야, 내가 다 짓밟고 올라간다"(…) 식으로 공공연히 반응했다고... 차별의 경험이 있긴 하지만 그 차별을 대놓고 긍정하며, "난 해당사항 없는데, 여자들은 원래 안 돼" 라고 오히려 맞장구치는 인물이었다. 물론 페미니스트들이 이런 성격이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뉴라이트 내부에서 여자가 돼 가지고 조신하지 못하다는 식의 지적 정도는 나왔어야 할 것 같은데... 역시 [[진영논리|그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자신의 삶과 온몸으로 뉴라이트의 메시지를 거부해 보이는(…) 뉴라이트 여성들은 더 있다. 이번에는 '''엘리자베스 케플러'''(Elizabeth Kepler)의 사례를 살펴보자. 이 인물은 국가의 [[어린이집]] 지원 제도를 반대하는 [[로비]]에 앞장섰던 사람이었는데, 여성들은 다시 부엌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던 자신의 지론은 유독 자기 자신에게만큼은 적용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케플러는 자신이 정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를 '''"[[권력]]에 대한 흥분감"''' 때문이라고 말했으며, 전통적 여성상의 대의에는 동감한다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만큼은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밝혔다. 심지어 케플러는 자신이 로비를 벌이는 것 자체에조차 진심이 아닌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팔루디의 인터뷰에 따르면, 케플러는 자신이 [[20대]] 후반임에도 싱글 여성이자 정치인이라는 현재의 상태에 아무 불만 없이 만족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어린이집에 자녀를 위탁하는 것이 그리 싫은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는 것. 그러나 자신의 솔직한 심정이 어떻든 간에, 케플러는 [[진영논리|늘 뉴라이트 세력의 입법적 압력에 있어 최전선에서 뛸 수 있었다.]] 사실, 이쯤되면 뉴라이트 진영이 대체 제대로 [[피아식별]]을 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게 보일 수 있다. 이들의 피아구분 기준은, 어떤 사람의 사고방식이나 입장이 페미니즘적인가 아닌가의 여부도 아니고, 그 사람이 자신의 삶으로 페미니즘을 실천하는가의 여부도 아니며, 심지어 그 사람이 여성으로서 직업을 갖고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가조차도 아니었다. 전형적인 [[여왕벌]]형 여성들이 자신들의 조직의 심장부에서 천하를 호령하는데도 조직 내부의 남성들은 어떤 반발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이들은 젠더 [[정체성 정치]]의 관점에서는 조금 맥빠지는(?) 기준을 갖고 있었다. 뉴라이트 진영은 '''어떤 사람이 [[근본주의]] [[개신교]]를 긍정하는가 아닌가(…)를 가지고 그가 아군인가 적군인가를 따졌다.''' 당시 근본주의 개신교 여성들의 선망의 아이콘이었던 '''비벌리 라헤이'''(Beverly LaHaye)를 살펴보자. 이 사람은 위에서 설교 시간에 자기 폭력 전과를 자랑했다고 소개됐었던 그 인물, 팀 라헤이의 아내이기도 하다. 라헤이는 사실 페미니스트들이 상당 부분 동감할 수 있는 인생의 궤적을 거쳐 왔다. 자신의 저서이자 [[개신교]] 배경의 [[자기계발서]]인 《The Spirit-Controlled Woman》 에서 묘사되는 회고를 보면, 라헤이 역시 일찍이 베티 프리댄(B.Fridan)이 《[[여성의 신비]]》 에서 제기한 바로 그 "말할 수 없는 문제" 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들에게 직업을 갖고 주체적으로 살라고 '대놓고' 말하는 것은 남성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몰랐다. 라헤이는 상당히 교묘하게 말을 바꾸었다. "여성들이여, [[페미니즘]]을 배워서 자신감과 능력을 갖추라" 가 아니라, "여성들이여, '''[[성령]] 하나님의 이끄심을 받아''' 자신감과 능력을 갖추라" 라고 선전했던 것. 저자 팔루디는 이것이 개신교 교리를 껍데기로 뒤집어 씌워서 위장한 자기실현 욕망의 표상이라고 하였다. 심지어 라헤이는 《The Act of Marriage》 에서 직장 내 [[성희롱]]의 배격, [[기승위|여성주도적 섹스]], [[클리토리스]] [[오르가즘]], [[피임]] 등을 (개신교적 용어로) 솔직하게 다루었으며 '''이 모든 것에 전부 찬성했다!''' 본질은 더할 나위 없이 페미니즘적인 메시지인데도, 그 위에 근본주의 개신교인들이 좋아할 만한 자기계발 용어들을 덧붙이자 그 시대의 [[안티페미니즘]]의 아이콘이 된 것이다. --[[사격중지! 아군이다!]]-- 그 외에도 뉴라이트 조직 사무실들을 돌아보면 이들의 평소 메시지에 비추어볼 때 가관인 가족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다고 한다. 남편이 [[빨래]]를 하고 아내가 자동차 오일을 교체하는 집안, 아내가 뉴라이트 정치 활동을 하느라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남편이 진공청소기를 돌리는 집안, 이런 비슷한 케이스가 수두룩했다고. 이들 여성들은 '''입으로는 안티페미니즘을 표방하면서도 속으로는 누구보다도 페미니스트로서 살아갔다.''' 페미니스트들이 아무 맥락 없이 이들을 목격한다면 더없이 젠더 평등한 집단이라고 찬사를 보낼 수 있을 정도. 그리고 이들의 독립성이 어디까지나 "페미니즘이라는 [[사탄]]과 맞서 싸우는 거룩한 [[영적전쟁]]" 을 위한 것이라면, 뉴라이트 남성들은 이들에게 기꺼이 박수를 보낼 수 있었다. 미국 사회에서 젠더 전쟁의 이면에 깔려 있는 '''[[종교]]적 동기'''가 얼마나 문화적으로 뿌리 깊게 박혀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쯤에서 의문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들은 [[뉴라이트]]의 사회적 저변의 확대와 지지를 위해서, 전통적 여성상이라는 더 큰 대의를 위해서 부득이 자신들의 모성과 가정 내 역할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팔루디의 취재에 따르면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런 여성들은 심지어 '''뉴라이트 운동 현장과 조직 내부에서조차 자기 남편들을 공공연히 무시했다.''' 처음에 뉴라이트 남성들은 자신들의 메시지를 확산시키기 위해 여성의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래도 자기 아내들이라면 자신들에게 고분고분하게 따르려니 하고는 [[낙하산|요직에다 자기 아내들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 결과 부엌 일밖에 모르던 '''이 현모양처 '사모님' 들은 [[권력]]에 각성했다(…).''' 처음에는 [[내향적|남들 앞에 나서기도 부끄러워하던]] 천상여자 스타일의 새침한 새댁이, 나중에는 권력욕에 들떠서 남편에게 복종하기는커녕 남편을 짓밟고 올라서서 강자의 [[유열]]을 만끽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거, 앞서 말한 그 비벌리 라헤이 얘기다(…). 이 양반은 결국 "Concerned Women for America" 의 예산의결권과 법률대응권, 해외 진출 등을 총괄하더니 마침내 [[1987년]]에는 종신 회장직에 올랐다! 뉴라이트 조직 이곳저곳에서, 남편이 지시한 사항을 남편 보는 앞에서 아내가 전화 한 통으로 취소시키고, [[기수열외|대놓고 남편의 말은 듣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가 하면]], 하급자들이 남편의 권위보다 아내의 권위를 더 높게 여기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 비슷한 경험을 회고한 또 다른 우익 운동가 여성 로즈메리 톰슨(R.Thomson)은, 자신이 정치적 영향력을 갖기 전에는 자신이 이런 활동을 대범하게 할 수 있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여성으로서 [[안티페미니즘]]적인 관점을 드러내는 사람들은 거의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세간의 관심을 모을 수 있었기에 그 파급력이 컸다. 그래서 뉴라이트 남성 인사들은 이들의 지배적이고 권위적인 횡포에도 차마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끙끙 앓았던 것일 수도 있다. '''실비아 휴렛'''(S.A.Hewlett)은 《A Lesser Life: The Myth of Women's Liberation》 의 저자이자 스스로를 네오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는 여성으로, 최근의 페미니즘이 역효과를 초래한다고 비판하여 언론들의 카메라 마사지를 받았다. "최근에는 여성들이 페미니즘에 비판적이다" 라는 주장을 '''어떠한 근거도 없이''' 내세워서 인기를 얻은 이 인물은, 자신의 책이 출간되자마자 '''"한 페미니스트의 양심고백"''' 이라는 언론의 프레임과 함께 단숨에 권위자의 위치에 올랐으며, 미국 내 토크쇼 110개를 모두 순회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안티페미니스트로 유명세를 얻은 다른 여성인 '''카밀 파야'''(C.Paglia) 역시 거론해볼 수 있다. 이 인물은 《Sexual Personae》 에서 적나라한 비난조로 페미니즘을 공격함으로써 유명세를 얻었는데, 그 이전까지 거의 인지도가 없었던 이 인물은 단숨에 주요 일간지 표지를 장식하며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러나 그 동기는 (본인도 인정하듯이) 학계의 페미니스트 동료들에 대한 '''앙심이자 [[복수]]'''라고 하였다. 그들과의 경쟁에서 밀려나고 종신 교수직도 얻지 못했으며, 출판사들로부터 반복적으로 무시를 당했기에 복수를 하겠다는 얘기(…). 물론 언론은 이런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리 없었고, 대중은 (아마도 [[크리스티나 호프 소머즈]] 이전까지) 페미니즘 비판론자 하면 으레 카밀 파야부터 떠올렸다. 그러나 이처럼 사회적으로 잘 나가던 우익 여성들도 일단 뉴라이트 진영의 궁극적 목표인 [[로널드 레이건]]의 집권에 성공한 뒤에는 '''곧바로 [[토사구팽]]당하고 말았다.''' 뉴라이트 여성들은 레이건 집권 후 백악관에 진출할 것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여성들은 정계 및 법조계에서 밀려났으며, 재선 후에는 그 비율이 더욱 급격하게 감소했다. 여성 관련 부처들이나 기관들은 [[예산감축크리|예산이 삭감되거나, 지원금이 끊어지거나]], 조용히 해체되거나, 여성 임용이 감소하거나, 실권을 빼앗겼다. 백악관에 진출한 얼마 안 되는 여성들, 예컨대 최초의 여성 유엔대사가 되었던 진 커크패트릭(Jean Kirkpatrick)은 백악관의 가혹한 [[성차별]]을 견디다 못해 [[사표]]를 쓰고 나갔으며, 페이스 위틀지(Faith Whittlesey)는 문자 그대로 짐이 든 상자와 함께 백악관 밖으로 내쫓겼다고(…). 예외적으로, 여성에 대한 직접적 공격이 이루어지는 '''반여성적 법안들의 홍보에 있어서는 여성 임용이 유지될 수 있었다.''' 예컨대, [[낙태]]에 관련하여 '통고 규정'[* 10대 여성이 임신한 뒤 [[산부인과]] 클리닉에 몰래 찾아가서 낙태 상담을 요청할 경우 병원측에서 의무적으로 그 여성의 부모에게 이 사실을 통지하도록 하는 법적 규정. 사실상 암묵적으로 등짝스매싱(…)을 유도하려는 목적에서 입안되었다.]을 홍보할 때에는 여성들이 나서서 그 필요성을 해명해야 했다. 또한, [[가정폭력]] 문제에 공권력이 개입하여 가해자를 격리하고 피해자를 재활시키는 프로그램이 --대관절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건전한 가정 질서를 무너뜨린다]](…)는 이유로 중단될 때에도, 일선에서 시민들에게 이를 알리며 쩔쩔매는 일은 전부 여성들이 도맡아 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