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석(시인) (문단 편집) === 란(박경련) === 백석은 통영을 아주 좋아했다. [[경상남도]] [[통영시]]에 가면 백석의 시가 새겨진 시비가 있고, <통영>으로 연작시만 3개가 있을 정도이고, 백석은 통영 바다를 거닐며 <바다>라는 시를 남겼다. 이는 통영에 그가 사랑했던 란(박경련)이라는 여인이 살았기 때문이다. 백석이 박경련을 처음 만난 곳은, 친구 허준의 결혼식 피로연장이었다. 허준은 백석의 또 다른 친구 신현중의 여동생인 신순영과 결혼했는데, 당시 24살이었던 백석은 결혼식장에서 박경련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박경련은 통영 출신으로, 당시 18살이었으며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신여성이었다. 뜨거운 감정을 숨길 수 없었던 백석은 그녀를 만나기 위해 몇 차례 통영을 찾았으나 만나지 못했고, 그녀의 부모에게 인사를 겸한 청혼을 했으나 끝내 결혼 승낙도 받지 못했다. 당시 박경련에 대한 백석의 마음은 주변인 모두가 알 정도였으며, 그 마음은 박경련이 살고 있는 [[통영]]으로 이어져서, 백석은 통영을 소재로 여러 작품을 남긴다. 그러나 백석과 박경련은 이뤄지지 못했으며, 박경련은 1937년 4월 7일 신현중과 결혼한다. 신현중은 백석과 조선일보에 같이 근무하며 가장 가까운 친구 중 하나였고, 다른 여자와 약혼 중이었다가 파혼하고 박경련과 결혼한 것이다. 이에 백석은 많은 충격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아주 너저분한 일이 있었다. 백석이 박경련과 결혼하고 싶어하자, 박씨 집안의 어른들은 신현중에게 백석에 대해 물었다. 그런데 신현중은 따로 약혼녀가 있으면서도 내심 박경련을 좋아하고 있어서, 백석을 배신한다. 신현중은 "백석의 어머니는 [[기생]] 출신이거나 [[첩]]의 자식[* 실제 백석의 모친은 [[단양]]군수의 딸이었고, [[서울]] 출신이라고 한다. 그런데 백석의 부친 백시박과는 나이 차가 13살이나 났다. 당시 이런 기우는 혼사에 대해 '백석의 모친이 기생 혹은 첩의 자식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었다.]입니다."라고 백석의 출신을 헐뜯었고, 박씨 집안 어른들에게 "제가 박경련과 결혼하고 싶습니다"라고 호소하여 끝내 성공하고 만다. 박경련은 신현중의 누나 신순정의 제자였고, 신씨 집안도 [[통영]] 출신이었다. 그래서 박씨 집안과 신씨 집안은 피차에 집안 사정을 다 아는 사이였고, 부모님 대에도 서로 면식이 있었다. 또한 신현중의 아버지는 군청에 근무하여 형편도 꽤 좋았다. 반면 백석은 타향, 특히 이북 출신에 그리 넉넉하지 않은 집안의 장남이었다. 결국 백석과 신현중의 사이에서 저울질하던 박경련의 어머니는 신현중을 택했다. 아무튼 그렇게 결혼한 박경련과 신현중은 부부 금슬이 좋았으나, [[폐결핵]]을 앓고 병약했던 박경련의 건강 문제인지 자식은 낳지 못했다.[* [[양자(가족)|양자]]는 있었다. 옆에 끼고 저녁을 먹을 '어린 것'은 없었던 셈.] 신현중은 언론인으로 재기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교육자가 되어 [[경상남도]]와 [[부산]] 일대를 떠돌다가 1980년에 생을 마쳤다. 그리고 박경련은 한참을 더 살았다. >바닷가에 왔드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당신이 뒷선 것만 같구려 >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은 것만 같구려 > >바닷가는 >개지꽃에 개지 아니 나오고 >고기비눌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야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섧기만 하구려 >---- >바다 - 백석 [[통영]] 바다를 거닐며 연인 란에 대한 사랑을 읊은 시로, 사랑에 빠진 백석의 감정을 읽을 수 있다. >남쪽 바닷가 어떤 낡은 항구의 처녀 하나를 나는 좋아하였습니다. >머리가 까맣고 눈이 크고 코가 높고 목이 패고 키가 호리낭창하였습니다…(중략) >어느 해 유월이 저물게 실비 오는 무더운 밤에 처음으로 그를 안 나는 >여러 아름다운 것에 그를 견주어 보았습니다. 당신께서 좋아하시던 산새에도 >해오라비에도 또 [[진달래]]에도 그리고 [[산호]]에도… >그러나 나는 어리석어서 아름다움이 닮은 것을 골라낼 수 없었습니다. >총명한 내 친구 하나가 그를 비겨서 수선이라고 하였습니다. 그제는 나도 기뻐서 그를 비겨 수선이라고 하였습니다. >---- >수필 편지(1936.2.21 조선일보) - 백석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기 위해 [[통영]]을 찾았던 기억은, 시 『바다』와 『통영』 3편과 『남행시초』 연작으로 남았으며, 수필 <편지>에 잘 나타나고 있다. >(상략) >내가 들은 [[마산]] 객주집의 어린 딸은 난(蘭)이라는 이 같고 > >난이라는 이는 명정골[* 現 [[경상남도]] [[통영시]] 명정동.]에 산다든데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하략) >---- >통영(統營) - 백석 란(박경련)과 헤어진 후 사건의 전말을 들은 백석이 지은 시. 절절하게 실연의 아픔이 느껴진다. 1938년 4월에 쓴 시 『내가 생각하는 것은』에는 사랑하는 여인과 여인과 결혼한 친구에 대해 담겨져 있다. 이 무렵 백석은 신현중에게 이끌려 그의 신혼집에서 란과 인사하게 된다. >그렇건만 나는 하이얀 자리 위에서 마른 팔뚝의 >새파란 핏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 것과 내가 오래 그려 오던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그렇게 살뜰하던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 >---- >내가 생각하는 것은 中 -백석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