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석(시인) (문단 편집) === 아내들 === "백석의 첫 번째 혼례는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이루어졌으며, [[이화여자전문학교]] 출신의 첫 부인 장정옥은 남북간 갈등이 고조되자 외아들을 데리고 월남했다"는 기사가 있으나, 정확한 기록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2번째 부인 문경옥(1920∼1979)은 [[평양]]의 유명 [[변호사]]인 문봉의 서녀로, 북한 최초의 여성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이다. 문경옥은 [[김일성]]의 후원을 받아, [[소련]] 레닌그라드(현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유학하여 음악을 공부했다. 그녀의 오빠 문학수는 화가였다. 1940년 9월 백석은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 소속 측량 보조원을 그만두고 백구둔이라는 농촌에 잠시 체류하며 농사를 짓다가, 안둥시청에서 일하고 있던 소설가 [[염상섭]]이 안둥세관에 자리를 얻어주며 안동로 간다. 당시 문학수와 가까이 지내던 백석은, 문학수의 중신으로 1942년 [[평양]]에서 문경옥과 결혼식을 올린 뒤 안둥에서 살림을 시작한다. 처제 문경랑은 형부 백석에 대해, 지인인 작가 김자림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매우 예민해서, 건너방에서 잔다고 할 때 웃음소리가 조금만 나도 신경질을 부린다. 가랑잎에 불이야 시인들은 다 그렇다나. 백석의 2번째 결혼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임신 8개월의 아이가 [[유산(의학)|유산]]되며 고부갈등 등 관계가 악화되며 이혼했다고 한다. 그 후 해방 무렵 만난 3번째 부인 리윤희와는 3남 2녀를 두고 50년 넘게 해로했다. 백석은 1962년부터 1995년 사망할 때까지 리윤희와 [[삼수군]] 농장의 농부로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