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용성 (문단 편집) == 3.1 운동 이후 == 불교 정화 및 대중화에 힘써 서울 시내에 최초로 포교당을 세웠고 신불교운동을 주창하며 서울에 대각사[* 일제의 간섭을 회피할 목적으로 불교 계통의 신흥종교인 대각교를 창시했다고 총독부에 등록하고, 대각사는 대각교의 교당, 본인은 대각교의 교주라 칭했다. 하지만, 일제의 집요한 탄압으로 결국 말년엔 조선불교 조계종 대각사로 고칠 수 밖에 없었다. ]란 절을 운영하기도 하였고 선농일치 등을 주장하며 국내와 만주 등에서 과수원, 농장 등을 경영하며 독립운동의 자금을 지원하였다. 또한 60여 종의 불경어록과 저술을 남겼다. 아들뻘 제자인 동헌스님은 불교정화운동당시 수장 역할을 하며 왕성히 활동하였고 증손주뻘인 법륜스님은 정토회 등의 단체를 만들어 활발히 사회참여 중이다. [[윤봉길]]을 불교에 귀의시킨 뒤 그를 임시정부로 보내 김구 밑에서 일하게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감사인사로 해방 뒤 귀국한 김구가 대각사를 방문했다고 하는데, 백범 김구 평전에는 김구가 대각사를 방문했다는 내용이 없다. 백범 김구 평전이 빠트렸을 수는 있으나, 하필 이것만 빠트렸다고 생각하기도 어렵다. ]는 것이 불교계의 주장인데, 안타깝게도 백용성의 [[제자]]였던 [[도문(승려)|도문]]의 구술 말고는 이를 입증할 만한 명확한 증거가 없다.[[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883752.html|#]] 윤봉길 의거 후에는 직접 중국으로 가 [[장제스]]와 [[마오쩌둥]]에게 독립운동 지원을 요청하는 등 무장투쟁을 준비하였으나 밀정에게 걸려 실패했으며, 실의 속에 1940년 입적하였다. 입적하기 전 동헌 완규에게 유훈 10가지를 남겼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가야불교 초전법륜 성지를 잘 가꾸어라. >2. 고구려 불교 초전법륜 성지를 잘 가꾸어라. >3. 백제 불교 초전법륜 성지를 잘 가꾸어라. >4. 신라 불교 초전법륜 폐허성지를 잘 가꾸어라. >5. 신라고도 성지 남산을 잘 가꾸어라. >6. 신라고도 성지 남산 가운데 고위산 천룡사사지 호국호법도량을 잘 가꾸어라. 그리고 여력을 몰아서 부처님이 탄생하신 서역의 가비라 룸비니원과 부처님이 성도하신 마갈다 보드가야 보리수원과 부처님이 최초에 설법하신 바라나 녹야원과 부처님이 이십여 성상을 주석하셨던 기수급 고독원과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구시나가라 사라쌍수원을 생각하면서 이 불교 오대성지를 잘 가꾸어 부처님 은혜 갚는 마음을 내도록 하여야 할 것이니라. >7. 20여 종의 번역본 불경과 20여 종의 어록을 100만여 권이 넘도록 발간 유포하라. >8. 100만여 명이 넘도록 삼귀의, 오계를 수계, 설법하되 그 수계제자 등으로 하여금 한 아들이나 한 손자나 내지 한 증손자를 잘 낳아서 잘 길러서 잘 가르쳐서 부처님 전에 바쳐 출가봉공케 하여서 불교중흥, 민족중흥, 종교중흥, 인류중흥 터전을 삼도록 하라. >9. 수행은 비묘엄밀하게 하고, 교화는 중생근기를 따라 하나씩 착실히 현실과 근기를 여의지 말라. >10. 온 겨레 전 인류 만 중생과 참선수행, 염불수행, 간경수행, 주력수행, 불사수행인 불교 5대수행으로 지도하되 잘난 이나 못난 이나 선한 이나 악한 이를 가리지 말고 인연따라 출가한 승려를 만들고 재가한 신도를 삼아 성불인연지어 나아가는 분상이니 많은 부작용이 따르겠지만 찬양과 비방을 함께 수용을 하여 성불인연으로 알고 묘법연화경 제이십 상불경보살품의 상경보살님을 본받아 일체 중생과 성불인연을 지어 나가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