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정각시놀이 (문단 편집) == 정말로 "전통"이었는가? == [[http://dhfltm.blogspot.ca/2017/02/blog-post_19.html|백정각시놀음에 대한 허구성을 지적한 포스트 1]]. [[https://satamguatam.tistory.com/190|백정각시놀음에 대한 허구성을 지적한 포스트 2]] 실제 과거 신분제 사회에서 [[백정]]을 인간 이하로 대우하는 풍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중 1명인 [[강상호]]의 증언에 따르면 [[3.1 운동]] 직후, 자기 마을에서 백정이 마을 사람들에게 맞아 죽어 일본인 [[경찰]]에게 신고하였으나 3.1 운동 후 일본 경찰에 대한 분위기도 안 좋은데 괜히 조선의 전통에 관여하였다가 문제가 생길까 두려워한 일본 경찰들이 사건 수사하기를 거부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백정해방운동을 이끈 양반, 강상호를 기억하며.[[http://www.huffingtonpost.kr/hyungmin-kim/story_b_9782642.html|#]]] '''문제는 백정각시놀이라는 행위 자체가 조선시대부터 조직적으로 행해진 "전통"이었다는 것을 입증할만한 학술적 1, 2차 사료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실록 같은 조선시대 사료에도 이런 풍습이 있었음을 암시할 만한 언급은 전혀 없고, 일제강점기 당시의 신문이나 공문서에서도 전혀 찾아볼수 없으며 학술적인 연구나 논문도 전혀 없다. 확인되는 건 '''그나마 있다는 기록도 전부 내용이 엇갈리는 다른 이야기'''라는 점과 '''건국 후 100년 넘게 백정이 저지른 강력 범죄에 고통받은 조선 양민들은 백정과 한 자리에 있는 것조차 싫어해서 마을 행사에 백정들이 참여할 일이 없었다는 것 뿐이다.''' 과거 사료를 부정하는 이들은 일부러 기록을 안남겼다고 하지만, 당장 조선왕조실록만 봐도(곡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백성 누구가 번개맞아 죽었고 눈 4개 달린 고양이가 태어났다는 등 시시콜콜한 일까지 기록돼있다. 위에서 증거라고 내놓은 이규태와 박경리의 증언이란 것도 문제가 있는게, 먼저 [[이규태]]는 해당 항목에도 나오듯이 [[씨받이]] 같은 풍습을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전통이라며 아무런 근거 없이 주장한 적이 있는데다 제일 먼저 투고한 글에서조차 고증을 엉망으로 해놓은 전적이 있다. 거기다 만일 위의 에세이가 진실이라고 한다면, 우선 다음과 같은 일들이 전제되어야 한다. * 백정 여인이 갑오개혁 무렵에 철폐된 차별적 백정 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 백정과 양민 사이의 관계가 극히 나쁜 마당에 백정 여성 여럿[* 정말 운동회 행사라면 경주였을 것이고 그렇다면 백정 여성 1명으로는 성립될 수 있을리가 없다.]이 양민들이 다니는 학교 운동회에 관중[* 백정은 신식 학교 교육에서도 차별을 받아서 자주 분규가 일어났다는 기록이 있다.]으로 온다. * 일제의 헌병 내지 순사가 순찰을 돌고 일본인 선생이 가르치는[* 1920년 이후에야 조선인 교원이 배출되기 시작하기에 일제시기 초기 보통학교의 교원은 일본인 뿐이었고 이후로도 일본인 교원의 숫자는 상당했다. 따라서 일본인도 참석하고 있을 학교 행사라면, 아무리 일제의 경찰이었다고는 해도 저런 폭력적인 행사를 그대로 내버려두었다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일제가 조선을 강압적으로 지배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치안 유지 활동을 아예 내다버린 것은 아니다.] 일제가 세운 학교에서 벌어지는 운동회에서 학부모에 의한 공개적 성추행/성폭행을 전제로 하는 행사가 공식적[* 이규태는 분명히 '학부모 행사'라고 언급하고 있다.]으로 일정 기간 동안 치러졌다. * 조선의 미개함을 잘 보여주는 사례임에도 일제가 악폐습으로 기록하지 않고 묻었다.[* 기본적으로 일제시기의 보통학교 보급은 '3면1교주의'라고 해서 면 3개당 학교 1개를 설치하는 계획이었고 이는 1922년에 완료되었으며, 1940년 무렵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지역사회의 행사로 자리잡아 활발하게 개최되었다. 따라서 만일 백정각시놀이 사건이 운동회에서 실제로 일어났다면 운동회 관련 기록에 반드시 남았을 것인데 일제시기 운동회 관련 기록에서 이에 대한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박경리의 경우, 문학적으로는 몰라도 역사적으로는 공식적인 사료나 논문에 비해 학술적인 가치가 떨어진다. 역사 전공자들이 [[로마인 이야기]]를 [[불쏘시개]] 취급하는 것과 같은 맥락. 그나마 로마인 이야기는 역사적인 인물, 사건을 바탕으로 주관, 추측, [[카더라]]를 잔뜩 버무려 놓은 "역사서의 탈을 쓴 소설"이지만, 토지는 등장인물과 사건부터가 전부 다 허구와 창작인 "'''그냥 [[소설]]'''"이다. 마지막으로, 이규태 에세이와 토지에 붙은 살인 '1910년대'/'일제강점기 신문기사'/'마을 한 바퀴 돌기' 등의 서술은 그 구체적인 언급과는 달리 그 원 출처를 아예 알 수가 없다. 결국 현대의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백정각시놀이가 조선의 전통적인 풍습(?)이었다는 소리는 이규태 혼자만의 주장에서 시작된 것일 뿐, 그 외엔 구체적인 "백정각시놀음"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일제강점기 때 국지적으로 있었던 구타, 폭행 사건이 이규태에 의해 "오래된 전통"인 것 마냥 왜곡 포장된 후, 인터넷에서 대대적으로 부풀려진 소위 [[고려장]]이나 [[씨받이]]와 비슷한 사례일 확률이 매우 높다. 쉽게 말해 21세기인 지금도 [[미투 운동]]에서 드러나듯 여성을 차별하거나 아랫 사람에게 갑질하는 일은 선진국, 후진국 다 가리지 않고 전세계적으로 꽤나 빈번하게 일어나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이걸 그 나라의 오래된 전통 운운하는 건 그야말로 [[어불성설]]인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