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주 (문단 편집) === [[당나라]] === 서기 806년 경 이조(李肇, 813년 경 추정)가 쓴 당국사보(唐國史補)에 "'''술은 곧 검남의 사오춘이다'''(酒卽有劍南之燒春)"[* 당나라 때 춘(春)은 보통 술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서기 834년 옹도(雍陶, 789~873)의 싯구에도 "'''내 이제 성도에 이르러서 소주의 열기때문에 이몸으로 장안에 갈 생각을 할 수 없노라'''(自到成都燒酒熱,不思身更入長安)"라는 문구가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소주(燒酒)라는 것이 이미 널리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석(田錫, 940~1003)이 쓴 곡본초(曲本草)에도 "'''섬라국([[태국]])의 술은 두 번 끓여낸 소주로, 진귀하고 기이한 향기가 들어있는데 단지 하나하나마다 정향 십수근의 증기를 쬐어 칠을 하듯이 해 준 다음 술을 넣어 봉해둔다. 그런 다음 땅에 묻어 태운냄새를 없앤 후 꺼내서 먹는다'''(暹羅酒以燒酒复燒二次,入珍貴異香,其壇每個以檀香十數斤的烟熏令如漆,然後入酒,腊封,埋土中二三年絶去燒氣,取出用之)" 라는 기록도 있다. 현대와 같은 백주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증류주 자체는 서기 800년 경 이전이미 중국에서 출현을 했으며, 중국 본토[* 정확히는 사천성 근처.]에서 자생적으로 개발된 것 뿐만 아니라 이 이전부터 무역을 통해 서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술과 양조기술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1회로만 증류를 마친 것이 아니라 수차례 재증류를 거쳐 알콜도수를 높이는 방안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