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법흥왕 (문단 편집) == 평가 == 고대 국가로서의 [[신라]]가 체계화되는 [[시발점]]을 만든 왕으로 신라 역사에서 손꼽히는 [[명군]] 및 [[성군]]이다. 부친 [[지증왕]]에 이어서 삼국간의 [[전쟁]]이 소강 상태에 들어섰던 [[6세기]] 초반의 짧은 [[평화]] 기간 동안 강도 높은 내정 개혁과 국력 증대, [[왕권]] 강화, [[탁기탄]]과 [[금관가야]] , [[탁순국]] 등 신라와 인접한 가야 국가들을 병탄하는 등 많은 [[업적]]을 쌓아 [[6세기]] 중후반 신라 [[전성기]]의 토대를 닦았다. 조카인 [[진흥왕]]의 폭발적인 [[영토]] 확장도 이 때 쌓아둔 국력이 배경이 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지증왕]]과 함께 내정 개혁으로 신라의 향후 400년을 결정지은 신라 역사상 중요한 임금 중 한 명이기도 하다. 반면 [[숭유억불]]의 시대 [[조선]] 때는 [[고구려]]의 [[소수림왕]], [[백제]]의 [[침류왕]]과 함께 [[불교]]를 들여와 [[삼한]]을 어지럽힌 불교 삼총사라고 악평을 받았다.[* [[조선왕조실록]] 등에 기록된 [[조선]] 당대의 과거 역사인물 평가는 여러모로 현대와는 다른 점이 많다. 예를 들면 신라의 경우 중대보다 하대 왕들이 대체로 평가가 더 좋다.][* 물론 조선시대 사람들이 불교를 많이 탄압했던 시기라고 생각하고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 삼국시대에 불교를 받아들인 것은 엄연히 왕권 강화가 목적이었고, 백성들의 민심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받아들인 것인데다가 [[종교]]든 학문이든 [[국교]]로 지정한 이상 후대에 갈수록 타락하기 마련이다. 저렇게 불교를 비판한 [[유교]]도 정작 훗날에는 중이 유학자로, 절이 서원으로 바뀐 거나 다름없을 정도로 심하게 타락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