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벚나무 (문단 편집) === [[고려]], [[조선]]시대 === 우리나라에 벚나무가 언제부터 있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분명하지 않다. 고문헌과 「[[동국이상국집]]」ㆍ「파한집(破閑集)」처럼 많이 알려진 시가에도 매화ㆍ살구ㆍ복숭아ㆍ자두 등 다양한 화목이 등장하지만 벚나무는 없었다 다만, [[삼국유사]] 제1권 기이(紀異)진한(辰韓)편에 서른다섯 개 금입택(金入宅)중 상앵택(上櫻宅)ㆍ하앵택(下櫻宅)이 나오고,제2권 기이(紀異第二)경덕왕(景德王)충담사(忠談師)표훈대덕조(票訓大德條)에 앵통(櫻筒)이 등장한다. 그러나 ‘앵(櫻)’이라는 명칭은 앵두나무와 벚꽃을 의미하기 때문에 문헌과 기록의 ‘앵’을 벚나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팔만대장경]]의 반절이 벚나무 재질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우리민족이 조선시대까지 벚나무를 심은 이유는 대부분 벚나무의 목재를 활용하는 실용적인 용도때문이었으며 특히 벚나무의 껍질인 화피(樺皮)는 [[활]]을 만드는데 중요한 재료라서 국가적으로도 함부로 유통을 하지 못하게 막았다. 일제강점기 시절 [[벚꽃축제]]가 최초로 개최된 서울 [[우이동]]의 벚나무 숲 역시 활을 만들기 위한 재료 수급용으로 조선시대 중후반에 만들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반면 오늘날처럼 집단적으로 벚꽃을 감상하였다는 풍습, 기록, 서화 등은 남겨져 있지 않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