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네치아 (문단 편집) == 역사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베네치아 공화국)] [Youtube(51_sBf6NCFM)] 본래 '베네치아'라는 이름은 이탈리아 동북부에 거주하던 베네티족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베네티족의 준마는 뛰어나기로 유명해서 [[그리스]] 본토나 식민도시에서도 말을 구하기 위해 베네티족에게 찾아왔다는 기록이 있으나, 기원전 3세기경부터 로마에게 동화되어 서서히 흡수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기록은 거의 없다. 이들이 거주하던 지역이 [[고대 로마|로마 시대]]에는 '베네티아 에트 히스트리아'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베네티인들이 살던 베네티아 땅과, 동쪽에 붙어있는 히스트리아(현 이스트리아 반도)를 합친 행정구역이었다.], 현재에도 이 지역에는 [[베네토]]와 [[프리울리베네치아줄리아]]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과거 베네티아 에트 히스트리아에 속했던 지역이다. 그런데 [[서로마 제국]]이 몰락하던 시점에는 '베네티아'가 [[게르만족]]의 지배를 받지 않는 해안가를 일컫는 말이 되었으며, 그 때문에 도시 베네치아에 베네치아라는 이름이 붙었다. 어쨌든 고대부터 베네티아 해안가의 석호지대에는 [[어부]]들이 살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로마인들은 이들을 "[[석호]] 거주민(incolae lacunae)"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본디 습지대였기 때문에 당시에는 미개발지에 가까웠으며, 우리가 아는 오늘날의 베네치아는 5세기경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5세기 [[고트족]]과 [[훈족]] 등 여러 이민족들의 약탈을 피해서 파두아, 아퀼레이아, 콘코르디아, 트레비소, 알티노 등지에서 온 [[고대 로마]] 출신 [[난민]]들이 이 석호의 섬들(토르첼로''Torcello'', 이에솔로''Iesolo'', 말라모코''Malamocco'')로 모였다. 초기 정착민들의 흔적은 이들의 정착과 함께 건설된 산 쟈코모''San Giacomo'' 성당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원래 이 섬에 영구히 정착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섬 전체가 습지대였기 때문에 주거 환경이 열악했고, 지대가 물러서 제대로된 건물을 지을 수 없었다. 그래서 고트족이 떠날 때까지 몇 년만 머물 곳으로 여겼다. 그러나 고트족은 서로마를 멸망시키고 아예 이탈리아에 정착해서 돌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제 로마의 피난민들은 어쩔 수 없이 기한없이 머물만한 영구 정착지를 늪지대 위에 건설해야 했다. 그들이 떠올린 방법은 물컹한 토층 아래 단단한 층까지 닿는 기다란 말뚝을 수직으로 섬 전체에 빼곡히 박는 것이었다. 이들은 이 어마어마한 육체노동을 통해 말뚝을 박고 그 위에 석판을 깔아 비로소 건물을 지어올릴 지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6세기 [[동로마 제국]]이 이탈리아 일대를 수복했을 때는 [[라벤나 총독부]]를 두어 통치했는데, 베네치아와 [[라벤나]]는 바닷길로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베네치아는 자치적으로 운영되며 독자적으로 성장해나갔다. 이 때 [[랑고바르드족]]을 피해 온 난민들이 오랜 기간동안 더 유입되었다. 최초의 중앙상임통치위원회''tribuni maiores''는 568년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 말라모코와 토르첼로 등 새로운 항구들이 여럿 건설되었고, 말라모코는 점차 이 지역 중심지가 되어갔다. [[파일:Alboin's_Italy-it.svg.png|width=500]] 동로마 제국(주황)과 랑고바르드족(회색), 575년 [[이탈리아 반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Italien_zur_Langobardenzeit.jpg]] 동로마 제국(분홍)과 랑고바르드족(주황)이 나와있는 더 자세한 지도 [[파일:The_Venetia_c_600_AD.jpg]] 600년 동로마 제국령(분홍) 베네치아 본래 최초의 [[베네치아 도제]]인 파올로 루치오 아나페스토(697-717)와 라벤나 총독 [[파울로스(라벤나 총독)|파울로스]]는 동일인물이었고,[* 697년부터 도제를 선출했다는 책들도 있다. 80년대 한 사학자가 베네치아 공화국 최초의 도제가 사실은 라벤나 총독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이에 선출의 형식은 따랐으되 라벤나 총독을 선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 그의 후임자는 본래 그 휘하 총사령관이었던 마르첼로 테갈리아노였다. 그러나 726년 성상파괴령을 둘러싸고 동서교회간 논쟁이 일어나자 [[그레고리오 2세]]의 촉구에 반응하여 총독의 관할 지역 군인들과 주민들이 반란을 일으켜 총독을 살해했고, 그들 스스로 지도자를 선출하기로 한다. [[파일:The_Venetia_c_720_AD.jpg]] 720년 동로마 제국령(분홍) 베네치아 처음으로 주민들에 의해 선출된 도제는 우르수스(726-737)였다. 그는 [[레온 3세]]의 라벤나 정복을 지지해 군인과 선박을 지원했다. 이에 따라 교황은 베네치아에 각종 특권을 내려주고, 우르수스를 공식적으로 지도자로 인정하면서 "히파투스"(로마 시대의 집정관''Consul''을 뜻하는 그리스어)라는 칭호까지 내리게 된다. [[파일:907px-Aistulf's_Italy-it.svg.png]] 동로마 제국(주황)과 랑고바르드족(회색), 751년 이탈리아 반도 751년경 랑고바르드족은 결국 동로마 제국의 라벤나 총독부를 무너뜨렸지만 베네치아 석호 지역은 남겨두고 있었다. 베네치아 석호 지역은 자치적으로 운영되고는 있었으나, 여전히 공식적으로는 동로마 제국령이었고, 주민들이 지도자로 선출하는 직위도 공식적으로는 동로마 황제가 임명한 총독이었다.(나중에 공식 명칭도 '도제'가 됨) 이때 총독은 말라모코 섬에 주재하고 있었고, 현재 베네치아로 알려진 리알토 지역은 그저 작은 섬에 불과했다. 랑고바르드족이 이탈리아 본토를 휘젓고 다니면서 이 지역으로 유입되는 난민들은 점점 더 늘어났고, 775년경에는 주교직이 신설되기에 이른다.(현재 베네치아 섬 동쪽 끝에 위치한 San Pietro di Castello가 주교좌였다) 한편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대제]]는 동로마 제국과의 세력 싸움의 일환으로 지금껏 그 어떤 민족, 그 어떤 나라도 별 신경 쓰지 않던 이 베네치아 석호 지대를 눈독들이기 시작한다. 그는 아들 [[피핀]]을 시켜 배를 건조해 이 지역을 정복하는일을 전담하도록 한다. 805년 베네치아 내부의 파벌 싸움 및 인접 도시 그라도와의 다툼으로 베네치아는 카롤루스에게 자신들을 보호령으로 삼아 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피핀이 베네치아를 장악하자 동로마 제국은 함대를 파견해 피핀을 몰아내고 베네치아를 수복하였다. 피핀은 이를 다시 수복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807년 임시 휴전조약을 맺었다. 카롤루스에게 사신을 보낸 주모자들은 베네치아에 의해 동로마에 넘겨졌고 추방당했다. 810년 피핀은 코마키오의 선박을 빌려 베네치아를 공격했다. 당시 중심지였던 말로모코는 [[아드리아 해]]에 면하고 있어 방어에 취약했다. 결국 베네치아인들은 말라모코를 버리고 리알토로 옮겨갔다. 프랑크군은 텅 빈 말라모코를 점령해 약탈하고 불태운 다음 베네치아군을 추적했으나 리알토 군도는 계속 저항했고 물길을 잘 아는 베네치아인과 달리 프랑크군은 얕은 석호 지대의 물길에 어두웠기 때문에 일부 선단이 좌초하고 만다. 시간이 끌리며 케팔리니아 총독 파울루스가 지휘하는 동로마 제국 함대가 반격하자 피핀은 철수했지만 역병에 걸려 사망하게 된다. 812년 새로운 적인 불가르 제국을 견제해야 했던 동로마 제국과 아들과 군사를 잃은 카롤루스 사이에 강화조약이 체결되는데, 베네치아 공화국은 동로마 제국의 속국으로 남고, 아드리아 해 일대 교역권을 인정받는 대신 카롤루스는 동로마 제국에게 제위를 인정받고(다만 '로마 황제'가 아닌 그냥 '황제'로만 인정) 동맹을 채결했다. 그리고 도제 아녤로 파르티차코(811-827)는 도제의 주재지를 현재 베네치아 위치인 리알토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이곳에 최초의 두칼레궁과 산마르코성당을 건설한다. [[파일:The_Venetia_c_840_AD.jpg]] 840년 베네치아 이후 꾸준히 난민들이 유입되고 주민 수가 늘어나는 동안 베네치아인들은 이 일대를 조금씩 [[간척]]해 나갔다. 이 간척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새만금]]이나 [[네덜란드]]에서 이루어졌던 간척과는 큰 차이가 있다. 바다를 막아 담수화시킨 후 매립하는 일반적인 간척과 달리, 베네치아인들은 이 바다를 막을 수도 없었고 막아서도 안됐기 때문에[* 애초에 육지의 야만족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이었으니 바다가 필요했다.] 제방 없이 나무를 엮어 파도만 막을 수 있는 정도로 벽을 쌓고 거대한 나무 말뚝을 촘촘히 박아 기초를 만들었다. 이 말뚝 위에 기단을 세우고 그 위에 벽돌을 쌓아 도시를 건설한 것이다. 그리고 점차 도시가 성장하면서 갈수록 간척지도 넓어지고 더 튼튼하게 기초를 쌓게 되었다. 11세기~12세기에는 [[십자군 원정]]에 나섰고, 4차 십자군 원정에서는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동 지중해에 영토를 가지며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후로는 북부 이탈리아의 도시들과 지역 패권을 두고 치열한 전쟁을 하게 된다. 16세기는 서유럽 국가들의 신항로 개척이 본격화되면서 지중해 항로의 중요성이 흔들리기 시작했지만, 베네치아의 군사적·문화적 전성기는 오히려 이 시기였다. [[로마]]가 [[사코 디 로마]]로 인해 쇠락하자 베네치아가 르네상스 건축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또한 [[레판토 해전]]에서 [[오스만 제국]]을 물리치는데 큰 역할을 하며 군사적 힘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후 신대륙 무역으로 인해 동방 무역 독점이 깨지고 오스만 제국과의 계속된 전쟁으로 국력이 서서히 약해진다. 1796년 [[나폴레옹]]은이탈리아 원정 온 후 1797년 베네치아 공화국 멸망시킨 후 베네치아를 관통하는 거대한 Z자(혹은 S자) 형태의 대운하를 보고 경탄하여 극찬을 했지만 베네치아를 [[합스부르크 제국]]에 넘겨주었다가, 1805년 [[오스트리아 제국]][* 1804년 [[프란츠 2세]]가 [[동군연합]]으로 묶여있던 [[합스부르크 제국]]을 [[오스트리아 대공국]] 중심의 [[오스트리아 제국]]으로 개편했다.]이 [[프랑스 제1제국]]에 반환하고 나폴레옹이 세운 [[괴뢰국]]인 [[이탈리아 왕국(나폴레옹)|이탈리아 왕국]]의 영토가 되었다. 그리고 1814년에 [[나폴레옹의 몰락|나폴레옹이 몰락]]하면서 다시 [[오스트리아]] 영토가 되었다. [[오스트리아]]는 베네치아와 옛 [[밀라노 공국]] 영토였던 [[롬바르디아]]를 묶어서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왕국]]'''으로 만들고 [[합스부르크 가문|합스부르크 왕조]] 황제가 국왕으로 즉위하되 총독을 보내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지배하였다. 1848년,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의 실각을 계기로 [[1848년 혁명|혁명]]이 일어나 [[이탈리아인]] 정치가 마닌을 [[대통령]]으로 하는 '베네토 공화국'이 세워졌지만 1년 만에 오스트리아의 공격을 받고 다시 항복하여 도로 [[오스트리아]] 영토가 되었다. [[이탈리아 통일]] 운동이 벌어지면서 롬바르디아는 [[사르데냐 왕국|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의 영토로 합병되었고, 1861년 [[이탈리아 왕국]]이 선언되었지만 베네토 지역과 베네치아는 여전히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다. 신생 이탈리아 왕국은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 벌어지자 [[프로이센 왕국]]과 손잡고 오스트리아를 공격했고, 전쟁의 결과 베네토까지 합병해 [[이탈리아 반도]] 통일을 얼추 완수했다. 2015년 1월 1일을 기해 실시된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베네치아현에서 베네치아 광역시로 개편되었다.[[https://ko.wikipedia.org/wiki/이탈리아의_ 광역시|이탈리아의 광역시]],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11249274|참고)'이번엔 반드시'…물난리 겪은 베네치아서 자치권 획득 주민투표]] 2020년 7월 10일에 베네치아의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해 건설 중인 홍수 예방시스템 '[[모세 프로젝트]]'가 첫 시험 가동을 성공적으로 마쳤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3&oid=001&aid=0011739555|#]] 코로나19 방역조치가 해체돼 관광객들이 많이 오면서 베네치아의 관광업계가 회복하고 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3133809?sid=104|#]]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