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드로 (문단 편집) === 무덤에 대한 기타 사항 === 잘 알려지지 않은 방식으로 원래 베드로가 매장되어 있던 곳을 볼 수 있는 투어도 존재한다. 바티칸 발굴 사무소로 신청서를 작성하면 투어를 할 수 있는데 현재도 발굴 중인 바티칸 네크로폴리스를 관람할 수 있다. 어디까지나 발굴 현장이기 때문에 사진 촬영도 금지되어 있고 대단히 습한 환경이다. 그러나 투어가 끝날 때는 교황들의 지하 무덤 쪽으로 나 있는 문으로 나와 성 베드로 대성당 내부로 바로 들어가기 때문에 보안 검색대의 긴 줄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투어를 보다 보면 베드로의 무덤은 작은 틈새로만 보이는데 이에 대한 가이드의 설명으로 발굴 시 위쪽에서 팠기 때문에 옆쪽에서 추가적으로 구멍을 내면 붕괴 위험이 있어 발굴을 중지했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사실 이는 지하 네크로폴리스 발굴의 흑역사와 관련이 있다. 처음 비오 12세가 임명한 발굴 총책임자였던 루트비히 카스 신부는 고고학에는 문외한이었고 고고학 박사학위를 딴 지 2년 된 안토니오 페루아 신부가 발굴을 지휘했다. 그러나 페루아 신부는 무작정 발굴에 착수해 베드로의 무덤이 있으리라 추정한 곳까지 파내려갔으나 베드로의 무덤은 없었다. 그리고 페루아 신부는 결국 베드로의 유해를 찾을 수 없음을 선언하고 판 내용물들을 폐기하기로 했다. 카스 신부는 페루아 신부가 판 흙더미에 유물이 있을 수 있음을 직감하고 보관해두었다. 마르게리타 과르두치 같은 고고학자들은 추가 연구를 통해 버린 흙더미에서 가이우스의 벽과 베드로의 유해를 찾았고, 바오로 6세는 이것이 베드로의 유해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페루아 신부는 꾸준히 이것이 동물 뼈일 가능성이 있음을 주장해 공식적 인가는 받지 못했다. 이 유해가 진실된 사도 베드로의 유해로 선포된 것은 이후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의 제대 밑 무덤의 유골이 1세기경의 유골임이 밝혀져 사도 바오로의 유해의 진실성이 입증된 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서이다. 현재까지도 파 버린 무덤을 원상 복구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