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아트리체 (문단 편집) === 베아트리체 첸치 === [[파일:Beatrice Cenci.jpg|width=500]] 베아트리체 첸치(Beatrice Cenci, 1577년 2월 6일~1599년 9월 11일) 이탈리아의 귀족 여성. 빼어난 미인이었다고 한다. 아버지인 프란체스코 첸치[* 매우 비도덕적인 인물로 [[교황]]에게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었다. 베아트리체 말고도 아내와 아들들을 학대했다고 한다. 여러 죄를 지어서 감옥에 갇히는 일도 있었지만 귀족이라는 이유로 풀려나기도 했다.]에게 성폭행을 당하여 이를 신고했으나 소용이 없었고, 오히려 아버지에 의해 지방으로 쫓겨났다. 이에 베아트리체는 계모, 친오빠, 이복 남동생, 하인 두 명(둘 중 하나는 베아트리체의 연인)과 공모하여 프란체스코를 살해했다. 원래는 독살을 시도했으나 죽지 않자, 망치로 쳐서 죽인 다음 실족사로 위장하기 위해 높은 난간에서 시체를 떨어뜨렸다. 결국 아버지를 살해한 사실이 밝혀져서, 관련자 중 범행 당시 너무 어려 사형에 처할 수 없었던 막내 동생만 감옥에 보내지고 나머지 가담자 전원이 사형을 당했다.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면서 로마 시민들이 [[정당방위]]를 주장하며 항의하였으나, 교황 [[클레멘스 8세]]는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아버지를 죽인 것은 [[패륜]]이라는 이유로 사형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 첸치 가족이 모두 죽으면 자신에게 그 재산이 돌아가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지만, 애시당초 사형에 처하지 않아도 가능한 일이었던 데다 상속 순위가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재산과 무관하게 자신의 소신에 따랐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이 일로 로마인들은 베아트리체를 오만한 귀족 계급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삼았으며, 그녀가 죽은 날마다 산탄델로 다리에 잘린 자신의 머리를 든 베아트리체의 유령이 나온다는 괴담도 떠돌았다. 이후 그녀의 모습을 동시대에 살았던 르네상스 대가인 볼로냐인 귀도 레니가 그렸다고 전해졌는데, 그 그림을 여류화가 엘리사베타 시라니[* 시라니 역시 베아트리체와 같이 기구한 운명을 겪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화가가 되고 싶었으나 재능이 없었고, 비범한 재능을 가진 딸의 그림을 팔아 먹으면서 술주정뱅이가 되었지만 그녀의 재능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학대를 일삼았다. 결국 아버지 및 가족 부양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 생전에 본으로 삼았던 귀도 레니와 같이 합장되었다.]가 레니 스타일로 간략화해서[* 시라니의 오리지널 작품이란 설도 있다.] 그린 그림이 우리가 흔히 아는 '베아트리스의 초상'이다. 이후 이 그림은 [[스탕달 신드롬]]으로 유명해졌다. [[http://www.koreapas.com/bbs/view.php?id=gofun&page=64&sn1=&divpage=11&sn=off&ss=on&sc=on&select_arrange=hit&desc=asc&no=70315|간단 요약은 여기를 참조할 것]]. 그림 속 인물이 [[https://youtu.be/OmADVc9oX4I?t=145|뒤를 돌아보는 구도]]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요하네스 베르메르)에 영감을 주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