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이루트 (문단 편집) ==== 내전 이후 ==== 레바논 전체에 크나큰 상처를 남긴 내전은 1990년에야 끝났다. 지금도 종파들끼리 철저히 분리돼서 거주하고 있고 그 사이에는 주민들이 쌓은 장벽들이 있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는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가 있다. 그나마 벨파스트는 평화 협정 후에 개신교도와 가톨릭교도끼리 같은 학교에 다니는 등 교류를 하고 있지만 베이루트는 갈 길이 멀다. 당장 이 도시에서는 같은 기독교도도 사회 주류인 마론파 가톨릭과 비주류인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성공회]] 등은 소외되었으며 이들 소수 기독교 교파들은 되려 무슬림과 사이가 좋을 정도다. 이후 라피크 하리리 대통령의 지도 하에 재건이 추진되었고 레바논은 어쨌든 다시 일어서며 [[2000년]]에는 [[아시안컵]]까지 개최했다. 이스라엘이 대회 전 남부 국경에서 병력을 동원해 위협하기도 했으나 별 탈 없었다. 하라리 대통령은 [[2005년]] 암살당했고 이 때 배후로 [[시리아]]가 지목되자 내전 이후부터 레바논에 쭉 주둔하면서 민중으로부터 침략군이라며 반감을 사던 시리아군도 철수했다. 현재의 베이루트는 중동에서 가장 활기찬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비록 중동의 경제적 중심지 역할은 [[두바이]]나 [[도하]] 등 [[아라비아 반도]]의 신흥국으로 넘어갔지만 레바논의 상대적으로 자유분방한 분위기 때문에 인근 국가에서 부호들을 비롯한 많은 중동인들이 향락을 즐기러 와 중동과 아랍권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도시다. 실제로 대부분의 아랍 국가에서는 보기 어려운 [[비키니]] 차림의 여성을 볼 수 있을 정도이다. 그래서 아랍 부자들, 특히 걸프 연안의 부호들이 부동산이나 요트 등 자산을 이 도시에 잔뜩 갖고 있다. 또한 레바논은 아랍권 가요계를 이끌 정도로 방송,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발전했기 때문에 아랍권 전체에서 인기가 많은 가수들과 연예인들 다수가 베이루트에 거주지나 별장을 두고 있다. 덕분에 내전 이전만큼은 못해도 중동 유수의 휴양 도시로 발돋움했으며 동(東)베이루트를 중심으로 고급 상점들과 고층 빌딩, 레지던스, 아파트, 호텔이 즐비하다. [[2000년대]] 후반부터 건축 붐이 일어 새로 지어진 휘황찬란한 레지던스와 고층 건물들이 내전 때 훼손된 호텔 등과 함께 있는 대조적인 풍경도 있다. [[https://www.dezeen.com/2017/04/04/herzog-de-meuron-beirut-terraces-tower-housing-lebanon-plant-covered/|예시]] [[2010년대]]에는 [[시리아 내전]]과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의 테러 공격으로 인해 치안이 불안정하고 위험해졌다가 IS가 쫓겨나고 테러 조직으로 쪼그라들자 [[2020년대]]에 들어서며 다시 안전해졌다. 한편 레바논이 종파 갈등으로 연립 정부 구성에 실패하면서, 정치적 불안이 심각한데다 몇 달 동안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가 쌓여 위생상 심각한 문제가 되기도 했다. IS가 거의 물러간 후에는 트리폴리에 비하면 개선된 편이다. 누적되었던 쓰레기도 다 치웠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