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이비복스 (문단 편집) == 인기 및 평가 == '''1세대 [[걸그룹]] 중에서 [[S.E.S.]]와 [[핑클]]하고 유일하게 대적 가능한 팬덤과 히트곡을 보유하고 있었다.'''[* 단, [[EQUALIZEHER|1집]]과 [[Ride West|7집]] 활동곡들은 제외.] 물론 당대 투탑이었던 [[S.E.S.]]와 [[핑클]]보단 팬덤 규모에서 밀렸지만, 히트곡만 따지면 결코 무시할 수가 없는게 <[[야야야]]>, <[[Change(베이비복스)|Change]]>, , <[[Killer(베이비복스)|Killer]]>, , , <배신>,, <인형>, <[[우연(베이비복스)|우연]]>, , <나 어떡해>, <바램> 등이 있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초·중·고 여학생들의 [[야영]], [[수련회]] 및 [[수학여행]] [[장기자랑]] 시간에는 베이비복스의 노래는 매우 흥했다.[* 사실 베이비복스 곡들이 안무도 잘 구성되어 있고, 춤 대형도 가장 보기 좋다는 5인조 그룹이라서 유독 여학생들 장기자랑 시간에 인기가 많았었다. 심지어 [[간미연]]이 안티로 고생했던 시기에도 장기자랑 때는 서로 [[간미연]] 파트를 하겠다고 싸움판을 벌이는 것이 일상이었다고 한다.] 베이비복스와 같은 시기에 활동한 [[샤크라]]나 [[디바(가수)|디바]] 등과 비교해도 격차가 현격했다. 팬덤이나 대중성, 음반 판매량 역시 [[S.E.S.]]와 [[핑클]] 다음으로 3순위였다. '''이처럼, 베이비복스는 사실상 라이벌이 없는 걸그룹계의 독보적인 3인자의 위치였다.''' 물론 그 이후로 몇 팀이 한꺼번에 1위를 다투는 [[춘추전국시대]] 같은 혼돈양상은 있었지만, 베이비복스처럼 독보적인 3인자 이미지의 걸그룹은 드물다. [[https://mlbpark.donga.com/mlbpark/b.php?p=151&b=bullpen2&id=6794858|#]] '''하지만 2002년에 베이비복스가 [[S.E.S.]]와 [[핑클]]을 제치고 정상을 누렸던 적도 있었고, [[S.E.S]]와 [[핑클]]은 서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거의 대등한 양대산맥으로 인기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실질적으로는 베이비복스가 2인자나 다름없었다.''' DR뮤직의 거지같은 역량과 규모를 감안하면, '''기적 같은 성과를''' 거둔 셈이다.[* 어찌보면 DR뮤직은 중소기업 기적의 첫 시작으로 볼 수도 있다. 1990년대 후반, [[SM엔터테인먼트]]와 [[DSP미디어]], [[YG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등 메이저급 기획사들이 생겨나고 1세대 아이돌 판이 생겨나면서부터 베이비복스 같은 경우처럼 영세한 작은 기획사에서 대중적으로 성공한 그룹을 만들어낸 경우가 거의 처음이다. 비슷한 경우로는 [[NRG(아이돌)|NRG]]가 있었지만 이들도 DR뮤직만큼 작은 규모는 아니었다.] 1999년부터는 [[중국]] 시장에 진출했는데, 현지에서 크게 성공해 '''[[한류]] 걸그룹'''으로 불리게 된다. [[중화권]] 인기를 발판으로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도 사랑받았었는데, [[태국]]에 진출한 1호 가수 역시 베이비복스였다. 이 외에 [[일본]], [[베트남]], [[대만]], [[홍콩]] 등에 진출해서 [[한류]]의 불모지였던 2000년에 유일하게 [[아시아]]전역에서 콘서트를 하고 공연을 하는 가수가 되었다. 특히 2003년 외국인 가수로는 최초로 [[중국]]의 인민 라디오 방송인 '음악지성 중국유행가요배행방'에서 현지 가수들과 겨루어 [[중국어]]로 부른 신곡 'I'm Still Loving You'로 전체 차트 1위에 등극했고, 같은 해 [[몽골]] 대통령에게 초청받아 국빈 대접을 받으며 공연한 바 있다. 2014년 [[KBS]] 2TV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에서 걸그룹 [[달샤벳]]의 [[달수빈|수빈]]이 밝힌 일화로, [[동남아]]나 [[중국]] 쪽에 공연을 하러 가면 '''"베이비복스를 아느냐?"'''라고 질문 받는다고 말했고, 아직까지도 꽤 해외 팬들에게 기억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베이비복스의 기획사에서 배출된 [[라니아(아이돌)|라니아]]나 [[베이비복스 리브]](2기) 역시 [[아시아]] 지역에선 베이비복스의 활동 덕택에 나름 수월하게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또 베이비복스하면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안티 세력'''이었다. 인기도 물론 많았지만, 1999년 당시 10대들의 우상으로 불리던 [[H.O.T.]]의 [[문희준]]과 [[간미연]]의 열애설로 곤욕을 치루며 안티팬도 팬 수만큼이나 많게 되는 현상을 보였다. 당시 안티들이 했던 행동들은 아직까지도 길이길이 레전드로 남아있는데, 대표적으로 1999년 간미연 살해협박 사건이 있다. [[http://theqoo.net/square/54440666|당시 안티들의 기행 모음.]] [[대한민국]] 연예계 역사상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이 정도로 욕을 먹었던 연예인도 사실상 [[간미연]]이 유일무이할 듯.[* 물론, 조금 거슬러 올라가보면 '바람아 멈추어다오'를 불렀던 [[이지연(1970)|이지연]]이 있다.] [[H.O.T.]]가 은퇴한 2000년대 초반부터는 직접적인 오프 공격 세력은 많이 잦아들었지만, 이들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은 여전했다. 단지 스캔들뿐만 아니라 소속사에서 과도하게 푸쉬했던 섹시 컨셉과 실력 논란으로 많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다만 이 두 점 모두 요즘 시점에서 보자면 크게 문제 될 부분이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1990년대 후반 [[립싱크]]를 자주 하긴 했지만 라이브 무대에서는 AR 없는 쌩라이브를 선보였고, 라이브 체제로 바뀐 2002년 '우연' 시절엔 안정적인 라이브를 선보였고 여러 사이트에서 다시금 재조명을 받기도 했다. 게다가 이 시절 베이비복스의 섹시컨셉은 솔직히 요즘 기준으로는 귀엽게 느껴지는 편이다. 동시대 활동했던 [[핑클]]이나 [[S.E.S.]]를 보자면 , 두 그룹은 가창력 담당 [[바다(가수)|각각]] [[옥주현|1명]]과 그 외 비주얼 담당이 따로 구성되어 있었다. 베이비복스의 경우 메인보컬 2명([[이희진]], [[간미연]]), 서브보컬 2명([[심은진]], [[윤은혜]]), 랩 1명([[김이지]])으로 안정적으로 구성된 포지션으로 현 시대 걸그룹의 시초이며 전 멤버가 비주얼 멤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특히 20-30대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그룹이었다.[* 베이비복스의 리즈 시절인 3~5집 앨범 프로듀서를 [[김형석]]이 맡았으며, 이 때문에 [[김형석]]과 친분이 있는 [[김조한]]과 힙합 그룹 [[X-Teen]] 등이 앨범 작업에 참여했다. 이 때문에 보컬은 물론 랩 퀄리티도 좋았다.] [[김이지]] 경우 요즘 여자 아이돌 그룹 [[래퍼]] 포지션의 시초였다. [[S.E.S.]]나 [[핑클]]도 이벤트성으로 아주 잠깐 랩은 했었지만, [[랩(음악)|랩]]을 실제로 배우고 담당하던 [[김이지]]의 [[랩(음악)|랩]]과는 비교 선상에 놓기는 어렵다. [[중국]]이나 [[태국]] 등 해외에 진출해서 대박친 것도 현 아이돌의 해외 진출의 밑거름이 되었다. [[http://bbvforever.pe.kr/xe/311|베이비복스가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서 가지는 의의]]. [[S.E.S.]]와 [[핑클]]이 국내에서의 폭발적인 인기로 걸그룹 시장을 확장시키고 풍요롭게 했다면, 베이비복스는 걸그룹 시장의 새로운 길의 성공적인 경우로 불려온다. 베이비복스가 가요계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올라섰던 해는 [[2003년]]이었다. [[S.E.S.]]와 [[핑클]]이 모두 퇴장한 뒤 걸그룹 중에서는 상대할 적수가 없었던 지라, 이 해에 가장 인기 많았던 걸그룹이자 아이돌 그룹이 되었고 1세대 아이돌의 마지막 [[르네상스]]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베이비복스가 2004년 7집 활동 중 불미스럽게 활동을 끝낸 이후, 2007년 [[원더걸스]]와 [[소녀시대]]가 등장할 때까지 4년동안 걸그룹 시장은 그야말로 전멸의 위기를 겪었다. 베이비복스가 다른 걸그룹과 달리 컨셉적으로 달랐던 것은 더 파워풀하고 시원시원한 안무다. 걸그룹에서 최초로 센 컨셉을 내세웠던 탓인지, [[디바]]와 같이 가끔 쎈 캐릭터로 분류는 되지만 앨범 컨셉상에서 [[걸크러쉬]]는 베이비복스가 유일하다. 베이비복스는 데뷔 때부터 유독 독자노선을 선호했다. 1집에서 여성 인권과 관련한 갱스터힙합을 시작으로 주로 [[걸크러시]]를 바탕으로 다양한 느낌을 추구해 왔다. 유일한 청순, 귀여운 컨셉은 2집 야야야, Change가 유일한데 살랑살랑 춤출 거 같은 곡에서도 조차 락킹, 각기, 전갈춤 등 남자 아이돌이 할만한 댄스 브레이크를 선보여 같은 시기 동기들과의 차별성을 두어 인기를 얻었다.[* [[간미연]]과 [[이희진]]은 '우연' 할때가 안무 중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그리고 2집의 차별성의 성공은 소속사의 프로모션 방향 유턴의 큰 동기부여가 된다. 결국 3집에서 베이비복스만의 아이덴티티라고 볼 수 있는 진정한 [[걸크러쉬]] 컨셉과 칼군무가 Get Up이라는 타이틀곡으로 확립되었다. 4세대 K-POP 걸그룹 모습을 보면 베이비복스와 가장 많이 닮아있다는 점이 베이비복스가 다시 재평가 받는 이유 중 하나이다. 아기자기한 율동 수준의 안무를 어필했던 2,3세대 걸그룹과는 달리 곡마다 정확한 방향성과 컨셉을 잡아서 활동했던 게 베이비복스의 가장 큰 무기라고 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