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이비복스/활동 (문단 편집) === [[/1999년|1999년]]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베이비복스/활동/1999년)] DR뮤직은 이가이의 탈퇴 후 새 멤버를 뽑기 위해 1999년 4월 공개 오디션을 개최한다. 이 오디션에서 최종적으로 중학교 3학년에 재학중이었던 [[윤은혜]]가 선발되어 새 멤버로 합류한다. 당시 윤은혜는 오디션때 노래를 실수하고 부끄러운 나머지 벽을 만지며 주저 앉았는데 이를 목격한 DR뮤직 대표가 윤은혜가 벽을 아주 뻥 찼다고 착각해 탈락수순이었던 윤은혜를 '''"쟤는 깡이 있나보다."'''고 생각하여 덜컥 캐스팅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소녀장사의 조짐이-- 또한 상기했듯 [[이가이]]의 나이 문제로 곤욕을 겪었기 때문에 가급적 어린 멤버를 뽑으려고 했었던 듯 하다. 유난히 1~2집에서 멤버 교체를 겪으며 불안정한 명맥을 유지해야 했던 베이비복스는 윤은혜의 영입을 끝으로 완전한 멤버 라인업을 구성한다.[* 이 시기는 또한 간미연과 이희진의 역할이 바뀌면서 파트와 역할도 고정되었는데 3집 전에는 이희진의 파트가 제일 많아서 이희진이 메인보컬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간미연의 실력과 파트가 이 이후로 크게 늘어 간미연이 메인보컬이 되고 이희진이 리드보컬이 된다. 이 시기 이후 역할은 다른 멤버들도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베이비복스가 2집 <야야야>로 10대층의 상당한 인기를 누렸지만 이는 S.E.S.와 핑클을 철저히 벤치마킹한 결과였고 계속 아류 그룹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독자적인 길을 구축할 것인지 고심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다소 급작스럽게 끝나버린 2집이었지만 그래도 이제 회사를 어느정도 안정권에 접어들게 할 만한 성적은 거두었기에 DR뮤직과 베이비복스에게는 다시금 새로운 도전을 할 여유가 주어졌고, 결국 베이비복스는 '''"자신들만의 길"'''을 선언하며 대대적인 컨셉 보정에 들어간다. 베이비복스는 당시 평균 신장이 '''168cm'''로 다른 걸그룹들과는 달리 서구적인 늘씬한 몸매를 자랑했었는데 이 점을 이용해 '''걸그룹 최초의 섹시 컨셉을 시도'''하게 된다.[* 물론 그동안의 여성그룹 중에서 최초로 섹시 컨셉을 차용한 건 아니다. 다만 이전에 섹시 컨셉을 표방했던 여성 그룹 '수'나 '희자매' 등은 20대들로 구성된 '''"숙녀 그룹"'''이었지 10대 멤버들이 주를 이루는 '''"걸그룹"'''과는 엄연히 다르게 봐야 하는 부분이다.] 새롭게 재정비된 베이비복스는 전작 <야야야>의 작곡가였던 김형석과 그의 수제자 [[박진영]]의 작업하에 탄생된 R&B 펑키 댄스곡 을 들고 가요계에 야심차게 컴백한다. || [[파일:external/41.media.tumblr.com/tumblr_o38ywzYnBM1sq377wo1_540.jpg|width=100%]] || ||<:> ''' 베이비복스 3집 멤버 (1999)''' || || [youtube(TdqrJXUInMU)] || || '''3집 타이틀 곡 「[[Get Up]]」''' 베이비복스 하면 지금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명실상부한 대표곡. 뮤직비디오는 '한국 가요계 역사상 가장 섹시한 뮤직비디오 중 하나'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 1999년 7월, 베이비복스는 3집 앨범 [[Come Come Come Baby]] 타이틀 곡 으로 2집때 앙증맞은 소녀의 모습에서 섹시한 안무와 농염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성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첫방송이 나가고 지상파 방송국에서는 카메라를 째려보는 눈빛과 김이지의 노출에 대해 경고를 내린 에피소드도 있었다. 당시 미성년자가 있는 그룹이었기 때문에 일부 비판 여론도 있었지만 15만장 이상의 앨범 선주문을 받아 이전의 앨범보다 더 좋은 반응을 얻었고 활동을 거듭할수록 은 그 해 여름을 뜨겁게 달군 인기가요로 부상하며 [[8월 3일]], 데뷔 2년만이자 3집 발표 한달만에 [[KBS]] [[뮤직뱅크]]에서 MVP를 수상하는 영예를 안는다. '''훗날 멤버들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곡으로 이 을 꼽는다.''' || [youtube(NkDkQmcdEtE)] || || '''1999년 8월 3일 KBS 뮤직뱅크 MVP''' || 당시 걸그룹들은 전부 다 요정같은 이미지로 어필했지만 베이비복스는 에서 파워풀한 댄스와 섹시한 의상들로 걸그룹 계의 새로운 블루오션을 개척한다. 베이비복스가 걸그룹 흐름에 미친 영향력이 바로 이 3집에서 비롯된 것. 요정 컨셉에서 섹시 컨셉으로 갈아타는 노선은 2010년대 걸그룹들의 가장 대표적인 모습이다. '''이 노선을 가장 먼저 성공시킨 게 바로 베이비복스였다.''' 활동을 성공리에 마친 뒤 후속곡 <[[Killer(베이비복스)|Killer]]>[* 1998년 발매한 김현성 2집 앨범에도 들어갔다. 김형석이 곡을 김현성과 베이비복스에게 동시에 준 셈.]로 활동을 이어가는데 <[[Killer(베이비복스)|Killer]]>에서는 때보다 더 강한 이미지를 어필했고 타이틀 곡 못지 않은(혹은 그 이상의) 화제성을 몰고왔다. 당시에는 생소했던 보이쉬한 컨셉으로 등장한 심은진은 여성팬들의 환호를 얻으며 팀의 마스코트로 떠오른다. 90년대 중반 보이쉬 컨셉을 밀었던 [[채리나]]가 있긴 했지만 심은진은 섹시함과 보이쉬함을 동시에 소화하며 남성팬들에게까지 호응을 얻은 새로운 캐릭터였다. <[[Killer(베이비복스)|Killer]]>는 베이비복스의 인기 상승에 큰 역할을 하며 음악방송에서도 선전을 한다. <[[Killer(베이비복스)|Killer]]>는 음악방송에서 1위 후보는 많이 했으나 당시 상대 가수들이 막강하다보니 [[KBS]] [[뮤직뱅크]]에서는 2달가까이 1위후보를 하고도 1위를 못하였고 [[SBS]] [[인기가요]]에서는 3번의 1위 도전끝에 첫 1위를 하며 연이은 성공을 거둔다. 한 앨범에서 1위곡이 2개 나온 걸그룹은 S.E.S. 핑클과 베이비복스 밖에 없었는데 이는 2세대 걸그룹이 등장하고 나서인 2000년대 후반까지 유효한 결과로, 당시의 성공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11월에는 발라드 곡 로 한달 간 짧게 활동했는데 가요차트 10위권에 안착하며 의외의 인기를 얻었다. 베이비복스 활동 기간 내 유일한 발라드 싱글. 3집 활동 시기에 가장 잊을 수 없는 사건은 <[[Killer(베이비복스)|Killer]]> 활동 중반에 간미연과 [[H.O.T.]]의 [[문희준]]이 열애설로 인해 간미연이 살해 협박을 당하는 일이었다. 간미연에게 수능 잘 보라며 보낸듯한 팬레터로 위장해 '''눈을 도려낸 사진들과 혈서를 비롯, 녹슨 커터칼을 넣어 손을 다치게 했고 간미연이 실종되어 사체로 발견된다는 엽기적인 자작 기사까지 만들어 신변을 위협하기에 이른다.''' 이 사건은 방송 3사 메인 뉴스에도 보도될 만큼 사회적인 이슈로 퍼지며 중장년층에게도 이들의 존재가 각인될 정도의 큰 파장이었다. 스캔들의 여파로 한동안 베이비복스는 해당 그룹 팬들에게 수 차례 테러를 당한다. 그러나 오히려 '''H.O.T. 팬들은 살해협박 사건이 베이비복스측의 자작극이라는 터무니 없는 루머를 재생산'''해 간미연을 그야말로 [[관종]] 취급한다.[* 당시 H.O.T. 팬덤 규모가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아직도 간미연이 자작극했다고 아는 사람이 은근히 많다.] 이때부터 간미연은 수많은 안티들을 몰고 다니는 그야말로 보살로서의 삶을 시작하는데... 상술한 사건들이 있었음에도 3집 시기는 이들의 전성기로, 이 앨범이 히트함에 따라 후속 앨범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베이비복스만의 컨셉을 정의시켜준 기념비적인 앨범이었다. 연말에는 처음으로 방송 3사에서 본상 수상의 영광을 얻었고 그 당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이름났던 MBC 10대 가수에도 선정되며 당당히 대형 가수 자리에 오른다. || [youtube(weSdwAzuIZw)] || || '''베이비복스의 또다른 대표곡, [[Killer(베이비복스)|Killer]]''' || 베이비복스는 3집 활동 종료 시점부터 조금씩 해외에 접근하기 시작하는데 한일합작 영화 <건드레스>의 주제가 을 녹음하며 일본 시장에 문을 두드린다. 또 중국과 음반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면서 현지에 앨범을 먼저 발표하고 12월부터 중국 TV에 본격적으로 출연하면서 현지 활동을 시작하는데 베이비복스가 처음 [[중국 중앙 텔레비전|CCTV]](중국중앙방송)에 소개될 당시 '''"중국 TV에서 이렇게 키가 크고 늘씬한 여자 그룹이 파워풀한 춤을 추며 노래하는 걸 처음 봤다"'''며 다들 굉장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멤버들은 이 시기 슬럼프가 왔었다고 알려지는데 부쩍 늘어난 관심에 안티 테러까지 정신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추측된다. 심은진은 당시 팬들에게도 고백할 정도의 극심한 슬럼프로 고생 했었으며 이희진도 당시 재계약 시점을 앞두고 있었는데 가장 주저했었다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