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이비복스/활동 (문단 편집) === [[/2002년|2002년]]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베이비복스/활동/2002년)] 2002년 베이비복스는 재도약을 위해 음악 색깔과 전체적인 스타일에 변화를 주기 시작한다. 그동안 베이비복스의 음악을 진두지휘하며 인기 가수 자리에 오르기까지 큰 공헌을 했던 [[김형석]]과 결별하고 그와 절친했던 작곡가 김창환의 곡으로 가요계에 컴백한다. 해외 일정 등으로 신곡 취입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정규앨범 대신, 신곡 두 곡이 들어간 [[Baby V.O.X Special Album]]을 내놓으며 지난 5년간의 활동을 중간정리한다. || [[파일:external/41.media.tumblr.com/tumblr_o38zweboCD1sq377wo1_540.jpg|width=100%]] || || '''5.5집 활동 당시의 베이비복스 (2002)''' || || [youtube(igTkXvLj1yM)] || || '''베이비복스에게 제 2의 전성기를 안겨다준 「[[우연(베이비복스)|우연]]」''' || 스페셜 앨범의 타이틀 곡 <우연>은 1996년 발표된 [[콜라(가수)|콜라]][* [[강원래]]의 아내 [[김송]]이 소속되어있던 3인조 혼성그룹이었다.]의 노래 <[[우울한 우연]]>가 원곡이지만 당시에는 그다지 사랑받지 못했었다. 사실 콜라 이후에도 김창환이 프로듀싱한 일본 걸그룹 'Color'도 이 노래를 리메이크했었지만 반응은 콜라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김창환은 이 노래를 하우스 버전으로 재편곡해 선사했으며[* 당시 김창환은 본인 회사가 아닌 가수에게 곡을 주지 않고 있었는데 베이비복스 측이 예전 노래라도 달라고 부탁해서 '우연'을 리믹스해서 줬다고 밝혔다. 이 노래가 히트하자 다음 앨범에는 프로듀싱을 맡았다.] 노래 도입부에 '발라 발라 꼬미꼬라 발라 발라 보니따(이후 생략)'라고 외계어 비슷한 가사를 새롭게 추가해 노래의 매력을 한층 높였다.[* 사실 이 부분은 Color의 리메이크 곡에도 나왔다.]이 부분은 외계어가 아니라 [[스페인어]]로 "예쁜 아가씨 나와 같이 춤을 춰요" 대략 이런 내용. 당시 10대들은 이 가사를 줄줄이 외우며 놀기도 했다. --다 외우면 천재 소리를 듣기도-- 앨범 발표 시기가 하필이면 월드컵을 앞두고 있던 시기여서 기성 가수들은 대부분 이 시기 컴백을 피했고 베이비복스도 애당초 1달 반 정도로 활동기간을 짧게 잡았었지만 오히려 <우연>은 신나는 노래와 월드컵 열풍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점차 인기를 누리기 시작한다. <우연>은 발매되자마자 가요차트 상위권에 진입했고 으로 큰 사랑을 받던 [[보아]], [[임창정]]등과 함께 1위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그러던 중 앨범 발매전부터 무리한 일정으로 발목 상태가 안좋았던 윤은혜가 춤을 출 수 없는 상태까지 악화되면서 수록곡 'Go' 뮤직비디오 촬영을 취소하고 한동안 안정을 취한 뒤 무대에 복귀해 춤은 못춰도 무대에 오르는 의욕을 보인다. 그러면서 1달 반으로 예정된 활동 기간이 자연스레 연장된다. 또한 이 때에는 3, 4집 시절 베이비복스를 괴롭히던 안티들이 해외 활동으로 인한 공백기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기 때문에 큰 사건 없이 활동을 이어나간다. <우연>이 방송 차트 1위에 오르기 직전, 한 인터뷰에서 멤버들이 꼭 정상에 올라 트로피를 윤은혜에게 주고 싶다고 했는데 몇주 뒤 2년만에 <인기가요>에서 1위에 오르면서 김이지가 울먹이며 '''"막내가 많이 아픈데도 열심히 해줘서 고맙고 이 트로피 막내한테 돌릴게요"'''라며 소감을 전했다. <우연>은 제 주인을 찾지 못하고 떠돌다가 마침내 베이비복스에게 돌아가면서 빛을 본 것이다. 이 노래로 2년만에 [[SBS 인기가요]]에서 2주간 1위를 수상했고[* 사실 1위 후보 두번째 주에, 음반 판매량이 베이비복스보다 3분의 1 수준이었던 [[컨츄리꼬꼬]]에게 밀려 1위 수상에 논란이 있었다. 그 다음주부터 2주간 1위를 수상했고 3주째에 드디어 왕중왕에 도전한다고 팬들이 흥분되있던 상태였는데 갑자기 막방을 선언했다.] 당시 순위제를 운영하지 않았던 KBS [[뮤직뱅크]]에서는 활동 기간 내내 리퀘스트 HOT 5에 올랐으며 당시 월드컵 중계로 인해 불가피하게 결방했던 MBC 음악캠프에서도 활동 종료 후인 7월에 1위 후보에 오르는 인기를 과시했다. 또한 월드컵 시기동안엔 음악 방송에서는 [[클론(가수)]]과 함께 공연했다.[* 강원래가 녹음하여 참여했으나 활동은 불가능했기에, 구준엽이 혼자 활동할 시기에 컴백무대부터 상반기 결산 방송까지 함께 무대에 섰다.] || [youtube(OQQV_07YLFY)] || || '''콘서트 영상으로 재편집 된 「Go」의 뮤직 비디오''' || 스페셜 앨범은 한국음반산업협회 기준으로 24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는데 '''이는 베이비복스 역대 음반 판매량 중 최고치였다.''' 후속곡 활동은 없었지만 수록곡 'Go'도 사랑을 받았다. 2002년 한해 동안 가장 많이 다운로드된 벨소리 차트에서 당시 걸그룹으로는 유일하게 10위권안에 랭크되는 대중적인 성과를 달성하기도 했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31&aid=0000015532|관련 링크]]. 2002년 M.net '가요 베스트 24'에서 선정한 상반기 인기 가요 결산에서도 당시 같이 활동했던 [[핑클]], [[S.E.S.]]보다도 높은 순위를 기록한다.[[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2062761381|관련 링크]] 그동안 항상 3인자에만 머물렀던 베이비복스가 이 시기만큼은 걸그룹 중 가장 큰 인기를 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니 여자가수 통틀어서도 높은 인기를 누렸다. 2년만에 정상에 오른 베이비복스는 개인 인지도도 다시금 상승하여 [[간미연]]은 한중합작 영화 <와와>[* 해당 영화는 제작자가 간미연과 [[이종수(영화배우)|이종수]], [[정보석]] 같은 인기 연예인을 섭외해 이들을 앞세워 수십억대의 투자금을 모은 뒤 잠적하는 황당한 대형 사기극이었다. 이 때문에 베이비복스 측과 출연자들은 큰 피해를 입어야만 했다.]에 캐스팅 되었고 심은진은 각종 예능 버라이어티쇼에 출연하면서 많은 여성팬들을 확보했다. 이희진과 윤은혜 역시 시트콤이나 VJ를 통해 개인 활동을 이어갔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8월 15일, 김이지가 재학중이던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첫 국내 단독 콘서트를 개최하는데 총 2회 공연으로 8500여명을 동원하면서 관중동원력이 부족하다고 평가받는 걸그룹 콘서트임에도 불구하고 '''전석 매진을 기록하는 성황을 이루었다.''' 같은 해 베이비복스는 [[대만]]과 대한민국 가수로는 처음으로 [[태국]] 시장에 진출하는데, 태국에서는 예상치 못한 좋은 반응를 얻는다. 한편 중국에서는 베이비복스 가요제[* 이 가요제에서 뽑힌 인재가 [[SM엔터테인먼트]] 소속가수 [[장리인]]이었다. 장리인은 가요제에서 입상한 뒤 DR뮤직과 계약을 맺고 트레이닝을 받았지만, 그의 부모가 계약을 일시적으로 풀어줄 것을 요구했고 그 틈을 타서 자신의 신분을 위장한 뒤 SM엔터테인먼트로 이적한 다음 2007년 데뷔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소속사 DR뮤직은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었다. --원조둘기?--]가 열려 무려 1만명이 넘는 지원자가 가요제에 참여하기 위해서 몰려들었고 해외에서의 입지는 갈수록 커져갔다. 당시 중국에서 받는 회당 개런티가 6천만원 선. 중국에서 톱스타 반열에 오른 [[안재욱]]을 이어 한국가수로서는 2위였다. [[http://cafe.daum.net/chinesestarworld/1klm/456|관련 링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