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이징시 (문단 편집) == 역사 == [[호모 에렉투스]] 베이징 원인의 흔적이 발견될 만큼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던 지역이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전국 7웅이었던 [[연나라]]의 도읍으로 이후로도 '[[연경]](燕京)'이라 불렸다. 또한 계(薊) 혹은 계성 (薊城)으로 불렸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한나라]] 시절에는 上谷郡과 廣陽郡이다.] 그래서 베이징 대표 맥주의 이름이 옌징맥주(燕京啤酒)이기도 하고, [[장비]]가 만날 [[삼국지연의]] 소설 속에서 외쳐대는 말이 "나는 연인(燕人) 익덕 장비다!"이다. 스스로를 연나라, 즉 연 지방 사람으로 지칭했다는 말. 참고로 삼국지연의에서 유비의 사형으로 유명한 [[공손찬]]의 근거지가 북평, 정확히는 우북평이지만, 이 우북평군은 지금의 탕산시를 중심으로 한 행정구역으로 근세 베이징의 별명인 북평과는 가깝긴 해도 별개의 지역이다. 황제의 오르기 전 [[영락제]]의 작위 '연왕' 역시 고대의 연나라와 연관이 있으며, [[열하일기]]에서 [[박지원]]은 북경 대신 연경이라 지칭했다. 역사적으로도 중국 왕조들의 북방 요충지였으며, [[전연]], [[후연]], [[북연]] 또한 베이징이 소속한 [[허베이성]] 일대를 근거지로 했다.[* 전연, 후연, 북연은 모두 가까운 곳에 거주하던 모용선비가 중심이 되어서 세운 나라들이다.] [[거란]]이 세운 [[요나라]] 때에는 석경당으로부터 연운 16주를 할양받고 당시 유주로 불리던 베이징을 남경 석진부로 삼았다. 요의 수도는 내몽골의 상경 임황부였으며 남경은 5대 수도의 하나로서 경제 중심지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수도]]로서의 역사는 중흥대흥부(중도)라는 이름으로 불린 [[여진족]] 완안부 [[금나라]] 때부터인데 금나라를 시작으로 베이징은 일부 기간을 제외하고 거의 항상 수도의 자리를 유지했다. 해당 지역은 선비족이 정복한 이후 지속적으로 북방민족 정복왕조가 등장하며 중요도가 올라갔고 [[금나라]], [[원나라]]는 아예 이 곳을 도읍으로 정했다. [[오고타이 칸]]이 금을 멸망시킨 후 이 곳의 이름을 '중도'에서 위대한 도읍이라는 뜻의 '대도(大都)'로 개칭했으며 이후 [[중국 대륙]] 전체를 통일한 [[쿠빌라이 칸]]의 정복 국가의 국호를 중국인들이 원(元)으로 부르면서 대도를 수도로 삼고 피정복지를 다스렸다. 때문에 지금도 [[몽골어]]에서 유래한 지명들이 곳곳에 남아 있으며 후에 만주족 또한 베이징을 정복하여 역사적으로 자주 언급되는 중요한 도시로 [[난징시|난징]]과 같이 동아시아사 시험에 잘 나오는 지역이다. 이름답게 중국 기준에서는 북쪽, 특히 북동쪽에 있다. 이전 중국 왕조의 수도였던 [[뤄양시|뤄양]]이나 [[시안시|시안]]에 비하면 정말 눈에 띈다. 이는 [[중국]]의 농경상 변화에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그래서 수도가 점점 동쪽으로 옮겨온 것이다. 서부의 [[사막화]]가 아주 심해졌기 때문에 비교적 비옥한 동부로 온 건데 이쪽도 서부보다 아주 조금 나을 뿐 건조한 건 똑같다.], 이 때문에 [[만주]]나 [[몽골]]계 왕조의 공격을 자주 받은 곳이기도 하다. [[금나라]]와 [[서하]]를 멸망시키고 북중국에 들어선 키아트부 [[몽골족]]의 [[원나라]] 역시 이 근처에 수도를 정하고 '칸발리크' (대도(大都))라고 불렀는데, [[이민족]] 왕조이지만 이로서 [[베이징]]은 처음으로 [[통일]] 왕조의 수도가 되고 대륙의 최중심지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이후 한족들의 반란, 특히 [[홍무제|주원장]]의 [[명나라]]에 밀려 [[북원|원은 점점 후퇴하고]] 도시의 이름은 북평부가 되어 연왕부가 설치된다. 참고로 [[자금성]] 중 우리가 흔히 자금성으로 아는 명대 자금성이 아닌 원대 자금성은 현재 북해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으며, [[티베트 불교]] 식 백탑이 떡하니 서 있어서 금방 알아볼 수 있다.[* 이는 [[몽골]]의 흔적을 지우려고 한 [[주원장]]의 노력이며, 또한 애초부터 유목하던 [[몽골인]]들이 상도와 대도를 번갈아가면서 지냈기 때문에 사실 [[원나라]] 시절의 대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수도라기보다는 전시용 세트장과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다.] 애석하게 한국에서 출발하는 패키지 상품에선 잘 안 간다. 최초로 이곳에 도읍한 [[한족]] 통일 왕조는 [[명나라]]인데, 그전까지는 [[이민족]] 왕조 [[여진족]]의 [[금나라]]와 [[몽골족]]의 [[원나라]]가 수도로 삼았다. [[건문제]]를 [[정난의 변|몰아내고 황제가 된]] [[영락제]]가 연왕 시절 정치적 기반으로 삼았던 곳이기 때문에 명은 수도를 난징에서 이곳으로 옮기고 [[자금성]]도 이때 짓게 된다. 그리고 [[이자성의 난]]으로 명이 멸망한 이후에도 [[만주족]] [[청나라]]가 도읍을 [[선양시]]에서 옮겨와 그대로 수도가 되었고,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난 뒤 [[중화민국]] [[북양정부]]도 여기에 자리잡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