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트남인 (문단 편집) == 특징 == [[하노이시|하노이]]를 포함한 북부 지역 베트남인은 외형상 [[광둥성]], [[광시좡족자치구]], [[하이난성]] 등지의 중국 대륙 최남부 지역 거주민과 비슷한 편이다.[* 참고로 [[태국]]의 타이족과 [[라오스]]의 라오족, [[미얀마]]의 버마족 역시 애초에 [[중국 대륙]] 최남부에서 살다가 남하한 집단들이다. 타이족만 해도 태족이라고 중국 대륙 최남부에 같은 계열 소수민족이 있다.] 그래서 [[동남아시아인]]은 모두 다 피부색이 어두울 것이라는 선입견과는 다르게 [[동아시아인]]처럼 생긴 사람도 제법 볼 수 있다. 다만 남부 지역은 원래 인종이 다른 [[참파]]의 근거지였기 때문에 그들과 혼혈되어 피부색도 어둡고 생김새도 다르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 북부와 남부가 어느 정도 동화되었기 때문에 여타 동남아인에 비하면 동아시아인과 피부색이 비슷한 편이다. 베트남의 주류 민족인 비엣족은 현 [[중국 대륙]] 최남부에서 왔다고 추정하고 있다. 또한 [[중국]]의 지배를 천년 동안 받았기 때문에 [[중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화교]] 국가인 [[싱가포르]]와 더불어 유이하게 [[한자문화권]]에 들어가는 국가다. 그래서 보통 [[동아시아]]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이런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고려하여 특수한 사례로서 동아시아 문화권으로 분류할 때도 있다. 베트남을 제외한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문화적으로 [[인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지라 베트남과 이질감이 아주 크다.[* [[태국]]에도 동아시아 문화가 어느 정도 영향이 있다고 하지만, 근현대 태국으로 이주한 화교와 일본 문화의 영향 정도고 기본적으로는 [[인도/문화|인도 문화]]의 영향이 가장 컸다. 사실상 동남아시아에선 베트남을 제외하고는 동아시아의 문화는 희미한 편이다.그나마 싱가포르도 동아시아 문화의 영향이 있지만 여기는 [[국제도시]] 격 국가여서 [[말레이인]],[[인도인]],[[영국인]],[[아랍인]] 등 아주 많은 국가 출신 사람들이 많아 짬뽕되어 있다. ]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베트남은 [[캄보디아|크메르]]족, 참족 등 인접 동남아시아 민족들과 역사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고, 옛부터 동아시아에 더 강한 친근감을 보였다. 현대의 베트남인 중에는 자신들이 [[동아시아]]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꽤 많다고 한다. 그 이유로는 지리적인 부분만 제외한다면, 당장 역사적으로 베트남 정치 체제와 사회를 지배해온 이념과 종교는, 고대에는 [[힌두교]]권에 속했다가 [[상좌부 불교]]가 지배적으로 자리잡은 [[태국]],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나 힌두교에서 [[이슬람]]으로 갈아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같은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시종일관 통치 이데올로기로서는 [[유교]], 문자는 [[한자]]나 한자에 기반한 [[쯔놈]]을 사용했으며, 통치 체제나 관료제 또한 중국에서 따왔다. 중국과 유구히 대립해왔던 베트남은 동아시아 국가들처럼 자신들의 문명이 주변의 다른 국가보다 뛰어나다는 사상이 기본으로 되어있는 국가라는 게 주위 캄보디아, 태국, 미얀마 등 타 [[인도차이나]]와 다른 특이점이라 볼 수 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60px-Nam_Tien.png]] 베트남 민족의 확장사. 베트남어로는 이 확장을 남띠엔(Nam tiến, 南進(남진)이라고 한다. 비엣족은 세계 초강대국 중국의 정복전쟁 및 영향권 하에 있어서 확장이 불가능한 북쪽 대신[* 아예 없진 않았고 11세기에 [[북송]]을 공격한 [[송월희녕전쟁]]의 사례가 있다.] 남쪽으로 이주하면서 점차 [[남중국해]] 해안을 따라 [[참파]]와 [[캄보디아]]의 영토를 뜯어가며 확장했다. 현재는 이들 지역에 비엣족이 다수 유입되었지만 아직 여러 소수민족이 많이 남아 있다. 그래서 중남부 베트남인은 참족과 크메르인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혼혈화가 진행되었음에도 북부와는 외모, 문화 등에 있어 상당히 이질적이다. 요약하자면 중세 이후 베트남이란 [[국가]] 형성 과정은 '''정치적으로는 중국에서의 철저한 [[독립]]을 추구하되, 문화적, 이데올로기적으로는 동아시아 [[문명]]으로의 내재화'''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국가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베트남은 [[한국]], [[일본]]보다 더 철저한 [[중화사상]]을 내세워 국내용 칭호나 문서에서는 아예 대놓고 베트남 조정을 중국 왕조와 대비되는 '''[[남조]]'''라 칭했고, [[참파]], [[크메르]] 같은 [[힌두교]]-[[불교]]권에 가까운 인근 나라들을 정벌하며 [[유교]]를 비롯한 동아시아 문화 전파를 명분으로 삼았다. 레 왕조 때 지배층이 친명 스탠스로 유교를 받아들였으나 남부 사람들은 오히려 반중 정서를 유지하여 간극이 생겼고, 이후 찐씨의 북부, 응우옌씨의 남부 지배체제가 정착되면서 백성들의 생활패턴에도 영향을 미쳐 북부는 농경사회 속에서 유교적 생활습관을 유지한 반면, 남부 사람들은 영토 확장을 하면서 이기적이고 도전적인 습성을 유지하며 유교에 일절 가치를 두지 않았다. 그래도 민족 동질성만큼은 통일돼 있다. 동아시아의 문화인 [[과거 제도]]와 종묘사직에 지내는 제사 또한 일찍부터 수용하여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정복한 참파나 크메르쪽에 대충 끼워 맞춘 동아시아식 작위를 내리며 외왕내제식 통치를 했다. 베트남은 자신들의 문화가 다른 문화보다 뛰어나다는 사상을 가지고 다른 민족을 몰아내며 남진을 계속 했다. 현대 베트남은 [[ASEAN]] 회원국으로 중화질서가 무너진 현대에는 타 [[인도차이나]] 국가들과의 협력을 중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도문화권인 타 인도차이나와 구별되는 일종의 아이덴티티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