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벡사시옹 (문단 편집) == 초연 == 첫 공연은 에릭 사티 사망 수십 년 후인 [[1963년]] [[9월 9일]]에 [[미국]] [[뉴욕]]의 포켓 시어터라는 극장에서 행해졌는데, 곡을 처음 발견한 존 케이지를 비롯해 그의 동료 4명이 돌아가며 연주했다. [[교대근무|교대로 연주]]를 한 이유는 당연히 이 긴 음악을 도저히 혼자 연주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연주자도 사람인데~~ ~~근육 긴장 푸는 건 당연하고, 몇 시간마다 화장실에 가야지~~ 연주자들 중에는 피아니스트가 아니거나, 아예 음악인이 아닌 이들까지 있었다.[* 뉴욕 타임스의 평론가인 하워드 클라인도 연주자로 참가했다.] 이렇게 벡사시옹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으니, 서양음악 사상 전대미문의 연주기록이다. 공연은 그날 밤 6시에 시작했으며 주최자인 케이지는 이 곡의 연주가 얼마나 걸리는지 전혀 공지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사티의 유작이라고 해서 수많은 청중들과 피아니스트, 기타 음악 전문가들이 객석을 메웠지만, 똑같은 부분이 하염없이 반복되는 것에 질려 하나 둘 공연장을 뜨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인내심을 발휘해 객석에 남아 있던 청중들도 이내 음악을 [[BGM]] 삼아 서로 잡담을 나눴고 심지어 [[음료]]를 마시거나 [[과자]]를 먹는 이들도 있었다. 어찌됐든 공연은 그와 상관없이 계속 진행되었고 청중들의 고충에 못지않게 연주자들의 고충도 대단했는데, 아무리 피아노 연주에 통달한 이라도 [[삼전음]](tritone)과 감화음(diminished chord)으로 가득한 괴이한 곡을 계속 반복한다는 것은 [[고문]]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나마 악보에는 [[콩나물]] 대가리 빼면 아무 연주 상의 지시도 없는 탓에, 연주자들은 자기 순서가 될 때마다 곡을 빠르게 치거나 느리게 치거나, 약하게 혹은 세게 치거나, 모든 음을 똑똑 끊어 스타카토로 치거나, 반대로 페달을 왕창 밟아 울림을 마구 섞기도 하는 등 저마다 자신의 해석(?)을 이입시켰다. 사티가 써놓은 대로 정확히 840번째 반복이 끝났을 때는 다음날 오후 12시 40분 무렵이었다. [[밤샘]] 진행된 이 공연을 견딘 청중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모두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있거나 [[해탈]] 혹은 [[멘탈붕괴|멘붕]]한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