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보덕국 (문단 편집) ==== 국혼과 답례 ==== >三月 以金銀器及雜綵百段 賜報德王安勝 遂以王妹妻之[一云迊飡金義官之女也] 下敎書曰 人倫之本 夫婦攸先 王化之基 繼嗣爲主 王鵲巢位曠 雞鳴在心 不可久空內輔之儀 永闕起家之業 今良辰吉日 率順舊章 以寡人妹女爲伉儷 王宜共敦心義式奉宗祧 克茂子孫 永豊盤石 豈不盛歟 豈不美歟 > >3월, 금은으로 만든 그릇과 여러 가지 채색 비단 100단을 보덕왕 안승에게 내려주고 임금의 여동생[* 혹은 잡찬 김의관(金義官)의 딸이라고도 한다.]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다음과 같은 교서를 내렸다. > >“인륜의 근본은 부부가 무엇보다 우선이고, 왕의 교화의 기초는 자손을 잇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왕의 까치 둥지에 자리가 비어 있어 닭이 울었음을 일러줄 아내를 얻을 마음이 있을 것이다. 내조할 자리를 오래 비워두어 집안을 일으킬 사업을 영원히 잃어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 좋은 때 길한 날을 맞아 옛 법도를 따라 내 누이의 딸로서 배필을 삼게 하니, 왕은 함께 마음과 뜻을 돈독히 하여 조상의 제사를 받들고 자손을 무성하게 함이 마땅하리라. 길이 반석같이 번창한다면 어찌 성대한 일이 아니며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는가?” > >夏五月 高句麗王使大將軍延武等上表曰 臣安勝言 大阿飡金官長至 奉宣敎旨 幷賜敎書 以外生公女 爲下邑內主 仍以四月十五日至此 喜懼交懷 罔知攸寘 竊以帝女降嬀 王姬適齊 本揚聖德 匪關凡才 臣本庸流 行能無筭 幸逢昌運沐浴聖化 每荷殊澤 欲報無堦 重蒙天寵 降此姻親 遂卽穠華表慶 肅雝成德 吉月令辰 言歸弊館億載難遇 一朝獲申 事非望始 喜出意表 豈惟一二父兄 實受其賜 其自先祖已下 寔寵喜之 臣未蒙敎旨 不敢直朝 無任悅豫之至 謹遣臣大將軍太大兄延武 奉表以聞 > >이에 안승은 상표하여 답례한다. >여름 5월, 고구려왕이 대장군 연무(延武) 등을 보내 표(表)를 올려 말하였다. > >“신(臣) 안승이 아뢰옵니다. 대아찬 김관장(金官長)이 와서 교지를 받들어 선포하고 아울러 교서를 내려, 임금의 조카 따님을 저의 안주인으로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4월 15일에 이곳에 이르렀으니 기쁨과 두려움이 엇갈려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생각건대 요임금이 자기의 딸을 규(嬀, 순임금)에게 시집보내고 주의 왕이 공주를 제(齊)나라에 시집보낸 것은 본래 성스러운 덕이 드러난 일로써, 사위될 자가 평범한 사람이라도 관계치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신은 원래 용렬한 부류로 행실과 재능에 이렇다 할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행히 운이 좋아서 성인의 교화에 젖게 되었고 매번 특별한 은혜를 받았으나, 그 은혜에 보답하려 해도 갚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거듭 대왕의 인척을 보내주시는 총애를 입었습니다. 마침내 만발한 꽃이 경사스러움을 표하고, 정숙하고 화목한 덕이 갖추어졌습니다. > >이제 좋은 달 좋은 때에 누추한 저의 집에 시집온다고 하니, 억년(億年)을 살더라도 만나기 힘든 행운을 하루아침에 얻은 셈입니다. 본래 바라지도 못했던 일이며, 생각하지도 못하던 기쁨입니다. 어찌 한두 사람의 부형(父兄)만이 실로 이러한 은혜를 받았겠습니까? 선조 이하가 모두 다 기뻐할 일인 것입니다. 저는 아직 교지를 받지 못하여 감히 직접 찾아가 뵙지는 못하지만 지극한 기쁨을 어찌할 수 없어 삼가 대장군 태대형 연무를 보내 글을 올려 아뢰옵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