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보슈냐크인 (문단 편집) == 규모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거주하는 보슈냐크인은 177만여 명으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인구의 절반 정도에 해당한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보슈냐크인, 크로아티아인, 세르비아인들의 비중이 거의 비슷한 편이다. 원래 보슈냐크인들이 인구의 48%를 차지할 정도로 많았고, 2010년대 이후로는 50%를 넘었다. [[https://en.wikipedia.org/wiki/Demographics_of_Bosnia_and_Herzegovina#Ethnic_groups|영어판 위키백과의 관련 문서]].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D98FEF3-B460-4BC8-AC91-7845C2D0B374.jpg|width=100%]]}}} || || [[몬테네그로]] 로자예(Rožaje)의 쿠치 [[모스크|성원]](Kučanska džamija)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인접국가에도 보슈냐크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에 걸친 산자크(sandžak)[* 어원은 오스만 제국의 행정구역인 '산자크(sancak)'로 이 일대에 설치된 산자크인 예니파자르 산자크(Yeni Pazar sancağı)에서 유래했다.] 지역은 원래 보슈냐크인들이 많이 모여 살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세르비아계가 주도한 인종 청소로 많은 인구가 난민이 되어 흩어지긴 하였지만, 이 지역을 중심으로 세르비아 내 13만여 명, 몬테네그로 내 5만여 명, [[코소보]] 내 3만여 명의 보슈냐크인 인구가 남아았다. 이웃 국가이자 유럽연합 회원국인 [[크로아티아]] 내에 3만여 명, [[슬로베니아]]에도 2만여 명, [[북마케도니아]]에 1만 7천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보슈냐크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국가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본토가 아닌 [[튀르키예]]이다. 보슈냐크인의 튀르키예 이주는 오스만 제국 시절 내내 활발히 이루어졌기 때문에 보슈냐크계 [[튀르키예인]]의 규모는 개략적인 추정만 가능할 뿐이다. 보통은 최대 200만 명까지 추산하기도 한다. 또한 적지 않은 규모의 보슈냐크인들이 [[미국]]에도 거주하고 있다. 보슈냐크인의 미국 이민은 비교적 이른 시기인 [[18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오늘날에 이들은 보슈냐크인보다는 [[보스니아계 미국인]]으로 불리며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와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대규모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통계마다 수치는 다르지만, 최소 12만여 명 이상의 보슈냐크인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자발적 이민 이외에도 [[보스니아 전쟁]] 당시 많은 보슈냐크인들이 난민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전쟁의 여파로 [[유럽연합]] 회원국들에 40만여 명의 보슈냐크인이 살고 있다. [[독일]]에 16만여 명, [[오스트리아]]에 13만여 명, [[스웨덴]]에 9만여 명, [[스위스]]에 5만여 명, [[덴마크]]에 2만여 명, [[노르웨이]]에 1만 6천여 명의 보슈냐크인이 난민으로 정착했다. 유럽권 이외에도 [[호주]]에 1만 8천여 명의 보슈냐크인들이 난민으로 정착하여 살고 있다. 다만 이와 같은 식으로 90년대 초 [[보스니아 전쟁]] 당시의 보슈냐크인 난민을 많이 수용했던 국가들은 2010년대 [[유럽 난민 사태|발생한 아랍인 난민]]들이 보슈냐크인과 비슷할 것이라는 오판을 했다가 홍역을 치렀다. 보슈냐크인 무슬림들은 [[라틴 문자]]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적어도 문맹은 없었으며, 기독교인 이웃들과 어울려 살던 경험도 있었다. 또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회주의 공화국|사회주의 체제]]의 경험으로 여성 인권도 선진적이었고 교육률도 높았으며 무엇보다 세속주의적 성향이 강했다.[* 사회주의는 아니지만 세속화를 장기적으로 한 튀르키예, 보스니아처럼 사회주의 체제에 속했던 중앙아시아 국가들도 무슬림 비율이 높지만 세속주의가 강하고 교육률이 높은 편이다.] 반면 [[아랍인]] 난민들 중에는 필수 교육의 부재로 인해 [[문맹]]이나 보수적인 [[이슬람주의]] 성향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게 왜 아랍권 출신 난민들이 아랍권 밖의 문명권에서 적응하기에 문제가 되냐면 [[샤리아]] 참고.] 그리고 아랍권 난민들의 출신국가들은 인명경시와 인권경시가 매우 심각하기 때문에 난민들의 심리에 인권경시 같은 문제점들이 기본으로 깔려있어서 범죄에서도 훨씬 거리낌이 없었다.[* 아랍인 난민들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이슬람 근본주의]], [[이슬람 극단주의]] 항목도 참고.] 본래 세속적이었던 알바니아인이나 보슈냐크인 무슬림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난민 정책이 아랍인 난민들에게 잘 맞으면 그게 더 이상한 상황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