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보슈냐크인 (문단 편집) == 기원 == [[오스만 제국]] 지배 시기 [[보고밀파]]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보스니아 왕국]]의 백성, 보스니아인(Бошњани / Bošnjani)들의 후손이다. 이들은 1463년 [[보스니아 왕국]]이 [[메흐메트 2세]]가 지휘하는 오스만 제국 군대에게 정복당했다. [[몬테네그로]] 등지에서는 산악 지방을 중심으로 장기간 게릴라전이 지속되었던 것과 다르게 1481년에는 보스니아 내 최후의 요새마저 오스만 군에게 함락당하고 보스니아 전역이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후 오스만 제국 내 다른 유럽 영토에서 현지인들의 이슬람 개종이 점진적으로 진행된 것과 다르게, 보스니아인들의 이슬람 개종은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보스니아 왕국의 보고밀파 '보스니아 교회'는 가톨릭과 정교회 양 쪽 모두에서 이단으로 간주되고 있었는데, 오스만 제국에 의해 보스니아 왕국이 정복되고 멸망한 이후에는 보스니아의 보고밀파 신도들이 상당히 어정쩡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서 대거 이슬람으로 개종하게 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로써 유럽 내 잔존해있던 [[마니교]] 계열 [[영지주의]] 기독교 분파가 최종적으로 소멸한다.] 특이하게도 보스니아의 보고밀파들은 무슬림처럼 하루에 다섯 번 예배드리는 습관이 있었다 하며,[* 이는 보고밀파에 영향을 준 [[바오로파]] 신도들이 중세 초 한동안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이슬람 교리와 전례 일부를 흡수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지중해-중동권 종교에는 5번 예배가 드물지 않다. [[조로아스터교]] 역시 하루 5번 예배를 했다.] 이로 인해 이슬람 개종이 더 원활하게 진행된 것이 분명하다. 벌써 17세기 초반에 이르면 보스니아 인구의 3분의 2가 무슬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완전한 무슬림으로는 간주되지 못하고 지즈야를 납부해야 했다. 17세기 중반 보스니아를 방문한 영국인 여행자에 의하면 보스니아인 상당수가 기독교와 이슬람을 합친 특이한 종교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는데, 이들은 [[교회 슬라브어]]로 된 [[복음서]]를 읽고 [[아랍어]]로 된 [[쿠란]]도 암송하는 이중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인으로 분류되어 [[지즈야]]를 납부했으나 정교회 십자가는 우상으로 간주하며 혐오했다고 한다. 이슬람으로 개종한 보스니아인들은 오늘날의 보슈냐크인으로 분화되었다. 이들은 오스만 제국 서방 최전선의 무슬림 공동체를 구성하였으며, 오스만 제국의 중요한 인재 및 병력 공급원이 되었다. 오스만 제국 입장에서 [[발칸 반도]]는 오스만 제국의 세수와 주요 인재풀을 담당하는 제국 영토에서 가장 핵심적인 지역이었으나 정작 이 지역은 무슬림이 아닌 [[정교회]] 신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딜레마가 있었다. 이러한 정교회 신자들을 견제하기 위해 오스만 당국은 같은 무슬림인 [[알바니아인]]들과 보슈냐크인들을 우대하였다. 그러나 17세기 말에 이르면 [[대 튀르크 전쟁]] 이후 유럽 내에서 오스만 제국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하고, 오스만 제국이 헝가리 일대의 영토를 상실하면서 해당 지역의 무슬림 난민 상당수가 헝가리와 가장 가까운 오스만령 보스니아로 피난을 가 그곳에 정착했다. 이 당시 [[오스만 헝가리|오스만령 헝가리]]에서 도망쳐와 보스니아에 정착한 무슬림들의 숫자는 대략 10만여 명에 달했다. 흥미롭게도 보슈냐크인의 유전자 조사 결과 [[헝가리인]]과 가장 가깝다는 결과가 나왔다. 중세 보스니아 왕국 일대는 역사적으로 헝가리와 밀접한 관계였으며, 오스만 제국이 제2차 모하치 전투에서 패배할 때 헝가리 내 많은 무슬림들이 보스니아 영토로 피난와 정착했기 때문인 듯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