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보어인 (문단 편집) === 남아프리카 연방 수립 이후 === 하지만 보어 전쟁에서 큰 피해를 입은 보어인에 대해 동정적인 여론이 펼쳐지면서 보어인은 케이프 식민지의 주도권를 잡기 시작했고 1910년, 케이프 식민지는 오렌지 자유주, 트란스발, 나탈과 함께 [[자치령]]인 [[남아프리카 연방]]으로 전환, 영국으로부터 자치권을 획득하는데 성공했다. 이런 자치권을 바탕으로 보어인들은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보존했다. 그리고 영국계에 비해 쪽수가 상대적으로 많았던 보어인들이 주축이 된 국민당이 창설되었고 이들이 집권하면서 전체 인구에서 소수였던 백인들의 이익을 위해서 여러 인종차별적인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나마 초기엔 (국민당에 비해서) 덜 인종차별적이었던 영국계 중심의 연합당(초기엔 남아공당)도 집권하는 양당체제여서 인종차별이 극단적인 수준까지는 가지않았지만[* 그래도 상당수 인종차별 법안이 이 시기에 통과되었다. 예를 들면 백인들이 대부분의 토지를 차지할수 있게 한다던가, 광산업에 있어서 백인들이 유색인종이나 흑인들보다 무조건 급여를 많이 받아야 된다던가 등. 다만 이 시기엔 이런 법안을 무시하거나 위반하는 일이 잦았기는 했다.] 1948년 총선에서 국민당이 70석을 얻어 65석을 확보하는데 그친 연합당에게 승리를 거둔 뒤에[* 참고로 득표율은 연합당이 49.2%로 과반에 가까운 득표를 했으나 인구가 적은 농촌선거구에서 국민당이 우세를 보이며 집권할수 있었다.] 유색인종의 투표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법을 통과시켜 일당 우위체제를 구축하는데 성공하고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정책을 펼치며 흑인과 유대인, 인도인 등 유색인종을 철저하게 탄압하였다. 이런 짓거리는 80년대 후반까지도 이어졌다가 90년대 초반이 되어서야 그만두게 된다. 인종차별 정책이 철폐된 현재는 흑인에 비해 쪽수에서부터 밀리기 때문에 남아공 주류 정치권에서 완전히 밀렸으며, 이들이 지지하는 정당도 국민당에서 민주연맹으로 바뀌었다.[* 민주당과 국민당의 합당으로 설립된 정당이기는 하다. 국민당계 당원들이 따로 탈당했다가 선거에서 완전히 밀려서 ANC로 통합되어버린고로 일단 계보상으로는 남아공당의 후신으로 친다. 1934년부터 1976년까지 남아공의 주요정당이었던 연합당도 국민당과 남아공당의 합당으로 결성된 정당이지만 1940년대 이후로는 남아공당원이 주류를 차지했기 때문에 보통 남아프리카당에서 이어진것으로 치는것과 비슷한 맥락.] 사실 도시 지역이야 몰라도 시골지역에선 보수적인 이들이 많다고 하지만, 남아공 전국에서 흑인에게 유권자 인구수에서부터 밀리기 때문에[* 남아공에서 흑인이 다수민족이 아닌 지역은 [[케이프타운]]이 있는 [[웨스턴케이프]] 뿐이다. 그나마 여기도 상대적으로 흑인이 적다 뿐이지 백인보단 컬러드가 많다.] 그나마 세가 되는 민주동맹을 지지하는 것. 물론 극우파[*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이들이 창당한 정당인 보수당이 상당한 세를 얻기도 했다. 그렇지만 1994년에 다인종 선거가 치러지면서 완전히 몰락한다.]의 경우에는 따로 극우정당을 차리기는 하지만 지지하는 사람은 소수다. 간혹가다 [[노던케이프]] 주 남부지역과 웨스턴케이프 주 일부 지역을 합쳐서 보어인 자치구를 만들자는 얘기가 나오고는 있지만 호응하는 사람이 적어서 중앙정부에서 그냥 흘러가는 소리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 주요도시와 근교지역에 살고있는 보어인들의 경우에는 그럭저럭 잘먹고 잘살고 있다. 경제력에서 영국계 백인에게 밀렸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얘기고 그 동안 쌓아놓은게 있기 때문에 일반 흑인에 비하면 평균적으로 잘 살고, 대도시 지역의 치안이 좋지 않다고는 하지만 안전한 신도시[* 물론 흑인이나 컬러드 중산층들도 이사와서 살기는 한다. 흑인들이나 컬러드들도 돈 없는 사람들이 태반이라 빈민촌에서 사는 사람이 많은거지, 돈 좀 만져본 흑인이나 컬러드들은 당연히 안전한 신도시에서 살고 싶어한다.]로 이주할만한 여력이 있는 사람들의 비율이 크게 높은건 사실인지라 그나마 잘먹고 잘사는 축이기는 하다. 흑인 중산층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지만 전체 흑인의 20%도 안되는 수치이니... 그러나 보어인 농민들의 경우에는 그 동안 흑인들이나 컬러드들을 값싸게 부려먹거나 비하하거나 돈 대신 생산하고 남은 포도주를 지급하는 식의 차별을 가해왔기 때문에 흑인과 컬러드 노동자와의 원한관계가 깊은데다가[* 보어계 농민들은 국민당에게 몰표를 줌으로써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공약으로 내걸던 국민당을 집권시켰고 덕택에 [[아파르트헤이트]] 시대를 개막시켜 흑인들과 컬러드들을 강제로 오지로 내쫓게 만든 주역이기도 했다.(...)] 아파르트헤이트 이후에도 흑인과 컬러드 노동자들을 저임금으로 부려먹는 경우가 많기에 빈민층을 대상으로 재산 몰수여론도 왕왕 일어서 상당한 위험에 처해있다는 후문도 있다고. 그러다보니 간혹 이러한 보어인들은 강도 및 여러 중범죄에 휘말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백인 농장주가 살해당하는 사건은 잊을 만하면 뉴스에 오를 정도.] 대다수 남아공 흑인 경찰들도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들에 대해서 대충 수사한다든지하는 문제도 많아서[* 보어인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를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복수로 여기는 여론이 많아서, 범죄 피해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할 길이 없다. 경찰들 입장에서도 자기 조상님들이나, 혹은 본인들이 당했던 차별 때문에 서러웠던 판국에 피해자라면서 보어인들이 도움을 청하는 게 고깝게 보이는데다, 아파르트헤이트 폐지 이후에 남아공의 [[고관대작]]으로 앉은 사람들도 죄다 흑인들이니, 눈치가 보여서 백인들의 일에 대해 [[아오안]] 취급이다.], 사설경호업체를 고용하는 경우도 많고 그러다보니 경제적 어려움과 안전 문제로 남아공을 떠나는 이들도 많다. 이런 이들 중에 남아공 밖으로의 이주가 사실상 불가능한 빈민층도 점차 늘어가고 있는데, 이들을 '화이트 스콰터'(white squatter)라고 부르면서 남아공 사회의 문제로 거론되고 있는 중이다. 남아공이 백인정부에서 흑인정부로 바뀌면서 백인들의 몫이 적어지며 백인빈곤층에 대한 지원이 크게 줄어든것이 원인으로 지목되는데 화이트스콰터로 불릴정도의 빈곤층이라면 정부로부터 소정의 보조금을 받을 자격이 되기는 하나, 남아공 자체가 중진국이기 때문에 캐나다, 영국, 뉴질랜드, 호주 급의 복지 수준은 꿈도 못꾸고[* 이들나라 기준으로 치면 한국돈으로 매달 수십만원에서 백수십만원 이상씩 보조금을 탈 수 있거나 공공주택에 입주할 수 있는 대상자가 된다.] 입에 딱 풀칠할 정도라 빈곤에서 탈출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우리도 처지 안 좋은건 똑같은데 그딴게 뭐 대수냐" 정도의 냉소적인 반응이 많다. 이는 '''남아공 자체가 실업률이 30%대에 달할정도로 매우 높아 한국돈 월 몇만원~십몇만원 하는 소정의 정부보조금으로 겨우 입에 풀칠하며 생계를 잇는 가난한 사람들이 인구의 40% 이상에 달할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또한 취직을 한다고해도 저임금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여전히 백인의 다수가 대다수 흑인들보다 잘사는 상황에서 백인 빈민층들이 늘어난다고 해도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백인 빈민층 비율이 백인내에서 10% 정도이며, 흑인 빈민층이나 컬러드 빈민층이 흑인, 컬러드내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것과 비교하면 그 비율이 크게 낮은 편이기는 하다. 사실 백인 실업률이 8% 내외로 절대 낮다고는 할수 없지만 흑인에 비하면 낮기 때문에 묻히는 면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