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보어인 (문단 편집) === 초기 정착사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35px-Charles_Bell_-_Jan_van_Riebeeck_se_aankoms_aan_die_Kaap.jpg]] 165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얀 반 리베크]]가 데리고 온 네덜란드 농부들로부터 시작해 칼뱅교도들과 프랑스계 [[위그노]]들, 그리고 주류 종교에 탄압받던 여러 개신교 성향의 백인들이 종교활동의 자유를 찾아 지금의 남아공 지역으로 이주한 것이 기원이다. 이들이 백인이라지만 의외로 남아공에서 웬만한 흑인 부족보다 오래 살아온 집단에 속한다. 남아공의 원주민인 여러 흑인 부족들은 [[유목민]]처럼 거주지를 옮겨 다녔던 반면, 보어인들은 아프리카 이민 후 개척지를 잡으면 정주할 농촌과 도시를 건설하고 정착했기 때문에 이들의 짬밥은 의외로 엄청난 것이다. 서부(케이프) 지역만 보자면 남아공에서 가장 큰 흑인 민족 중 하나인 [[줄루족]]이나 [[코사족]]보다도 보어인이 오래 살았다.[* 물론 남아공 동부 지역은 내부에선 여러 부족 간의 전쟁과 이동이 있었지만 유럽인이 도착하기 이전에 이미 반투계 흑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가장 늦은 시기인 18-19세기에 확장해 일대에 민족 대이동을 야기한 줄루 왕국도 완전히 아프리카 북쪽에서 남하한 것이 아닌 현 남아공 최동단 지역에서 출발한 것.] 보어인들의 별명으로는 '''아프리카의 하얀 부족'''이라는 말이 있는데, 짬밥을 생각해보면 과장은 아닌 셈. 초기에는 현재의 웨스트-노던 케이프 지역에 모여살았고 현지 [[흑인]]들과 교류하거나 혹은 충돌하고 노예교역도 하면서 그럭저럭 살았는데 [[나폴레옹 전쟁]] 이후 케이프 지역이 영국에 넘어가고 노예 해방정책을 펴자 농민들이 다수였던 보어인들이 대거 반발했고 영국은 이를 분쇄하는 정책을 폈다. 버틸 수가 없어진 보어인들은 포장마차와 가축들을 이끌고 강수량이 더 많은 곳을 찾아서 대거 북동쪽 내륙으로 이주했다. 당시 보어인들의 거주 지역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인구 밀도가 낮았기 때문에 가축 수도 적지 않았고, 이러한 배경 하에서 이들의 이민은 유목민들의 이동을 연상케 했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현지 흑인들과의 충돌이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우수한 기마술을 보유하고 소총을 보유한 보어인들에 의한 일방적인 원주민 [[학살]]이 일어났다. 이걸 이름하여 '[[https://en.wikipedia.org/wiki/Great_Trek|그레이트 트렉(Great Trek)]]'[* 아프리칸스어로는 흐로트 트렉(Groot Trek).]이라고 한다. 1799년 보어인들은 그레이트피시강을 따라 반투계 농경민들이 사는 지역에 도착했다. 이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뉘어 상대적으로 케이프 식민지에 가까운 [[오렌지 강]] 유역에 정착한 한 부류는 [[오라녜 자유국]]을, 더 북쪽으로 올라가 발 강 너머, 림포포 강 유역에 정착한 부류는 [[트란스발 공화국]]을, 동쪽 해안지대로 우회한 나머지 한 부류는 콰줄루[* 응구니족의 일파인 줄루족이 [[줄루 왕국]]을 세운 곳으로 현재 [[콰줄루나탈]]이란 이름으로 옛 나탈 주의 이름에 붙어있다.] 일대에 정착해 [[https://en.wikipedia.org/wiki/Natalia_Republic|나탈 공화국]]을 세웠다. 물론 이런 공화국들의 수립은 평화롭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른바 캬프르 전쟁[* 아랍인 노예상인들이 반투계 흑인들을 아랍어로 불신자라는 뜻의 카피르(Kaffir)라는 멸칭으로 부른 것에서 기원함.]이 한 세기에 걸쳐 지속된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26px-G.S._Smithard%3B_J.S._Skelton_%281909%29_-_The_Voortrekkers.jpg]] 이 그림은 우마차를 이끌고 가는 정착 초기의 보어인들의 모습이다. 미국과 달리 남아공의 '포장마차'는 말보다는 주로 황소가 끌었기 때문에 옥스왜건(Ox-wagon)혹은 오서바(Ossewa)라 불렸다.[* 물론 [[미국]]도 [[소]]가 끄는 마차가 없었던 건 아니다. [[구피(디즈니 캐릭터)|구피]]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단편 애니인 [[https://www.youtube.com/watch?v=txvmoXnD-P4|Californy'er Bust (1945)]]의 극 초반에 이런 마차가 나온다. 다만, 이런 마차는 농부들이 같은 주 내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을 이동할 때 주로 썼고, 아예 타 주로 이동하는 경우라면 우마차가지고는 택도 없었다. 남아공은 한국에 비하면야 훨씬 넓지만 미국에 비하면 땅 크기도 작은 편이라서, 이런 우마차가 꽤 유용했던 것이다.] 이 Ossewa는 구 남아공 국가이자 현 남아공 국가의 일부인 "[[Die Stem van Suid-Afrika]]"에도 언급된다.[* 영어로는 "The Call of South Africa", '남아프리카의 외침'이란 뜻이다. 가사는 남아공의 자연과 보어인들의 삶 등의 내용이다.] 비록 강력한 중앙정부도 없었고 반투계 농경민에 비해 인구가 훨씬 적었지만, 우수한 기마술과 우마차를 이용한 전술을 유기적으로 활용하여 보어인들의 전투력은 일찍부터 강력했으며, 주위의 흑인 부족들은 당연히 상대가 안 되었고 심지어 당대 최강의 세력을 자랑하여 중부지역의 흑인 부족들을 서부로 몰아내거나 흡수하던 줄루 왕국도 이들에게 밀렸을 정도다. 보어인 500명이 흑인 수만 명을 쓸어버리고 보어인은 단 3명만 부상, 흑인은 3천 명 이상 죽은(...) 피의 강 전투(Battle of Blood River, 1838년)가 대표적으로, 영국군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수십만 ㎢의 영토(현재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내륙지방)에 거주하던 흑인을 모두 지배하에 넣은 상태였다. 보어인들은 이른바 피의 강 전투에서는 500여명의 기병과 우마차만으로 줄루족 전사 1만명을 일방적으로 학살하기도 했다. 줄루족 역시 기병을 도입하고 싶어했으나 전염성이 강한 가축 유행병 때문에 말을 키우고 기병을 육성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보어인들은 줄루족에 대항해 여러차례 승리를 거두며 서서히 영토를 늘려나가, 일부 산악 고지대를 제외한 남아공 내륙 지대를 평정하는데 성공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