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보어인 (문단 편집) === 영국과의 충돌 === 케이프 식민지를 차지한 영국은 보어인의 그레이트 트렉을 막지 않고 방치해 사실상 보어인의 나라들의 독립을 인정한 상태였다. 그러나 19세기 중반에 이르자 케이프 식민지로는 만족하지 못한 영국이 점점 보어인이 살던 내륙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결국 나탈 공화국은 버티지 못하고 케이프 식민지에 합병되었고 보어인이 세운 두 공화국은 영국의 이런 진출 야욕에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국은 이 두나라를 합병하지 않고 1852년의 샌드 강 협정, 1854년의 블룸폰테인 협정으로 보어인들의 독립을 인정했다. 그러던 중 남아프리카 내륙에서 [[금]]과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자[* 19세기 말 남아프리카 킴벌리 지역의 다이아몬드 생산량은 그 당시 전 세계 다이아몬드 생산량의 '''약 95%'''를 차지했다. 현재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 생산 기업인 [[세실 로즈]]의 [[드비어스]]가 생긴 것도 이 때.] 영국은 남아프리카 내륙에 진출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당연히 보어인들의 나라와 충돌하게 된다. 이 때 콰줄루의 [[줄루 왕국]]과 보어인의 트란스발 공화국 사이에 충돌이 벌어지고 이를 빌미로 1877년 영국은 트란스발 공화국을 병합한다. 보어인은 당연히 반발했지만 줄루 왕국의 위협이 지속되는 이상 그냥 참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1879년 줄루 왕국이 영국령인 나탈을 공격하자 [[줄루 전쟁]]이 발발, 영국은 줄루 왕국을 멸망시키고 나탈에 합병시킨다. 줄루 전쟁이 끝나고 줄루 왕국의 위협이 사라지자 보어인들의 불만이 다시 터져 나오기 시작하는데 영국이 트란스발 일대에 군대 배치를 늘리자 결국 1880년 트란스발 공화국은 반란을 일으킨다(1차 [[보어 전쟁]]). 넓은 국토와 낮은 인구밀도를 기반으로 보어인들은 유격전으로 영국군을 괴롭히고 된통 당한 영국은 1881년 트란스발 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한다. 하지만 1886년 트란스발의 비트바테르스란트 지역에서 거대한 금광이 발견되자 케이프 식민지의 영국인들이 트란스발로 이주하면서 그 수가 점점 불어나 트란스발 내에서 보어인과 영국인 간의 갈등이 커지게 된다. 이 때 당시 케이프 식민지의 총리 [[세실 로즈]]가 트란스발 내 영국인들의 대표 리앤더 제임슨을 획책해 1896년 쿠데타를 일으키게 만들면서(제임슨 습격사건) 빡친 트란스발은 영국인들에 대한 차별 대우 법안을 통과시킨다. 영국은 트란스발 내 영국인들을 평등하게 대우하라고 요구하나 트란스발은 이를 거부하고 모든 영국인에게 자국에서 나가라고 통보하여 사실상 선전포고를 했다. 그리하여 1899년 트란스발이 케이프 식민지를 공격하면서 영국과 무력충돌이 벌어지고 영국의 강압적인 행태에 불만을 품은 오렌지 자유국이 트란스발 측에 가담하면서 영국과 보어인 사이에 또다시 전쟁이 발발한다(2차 보어 전쟁). 당시 세계 최강이라 자부하던 영국군이 1, 2차 보어 전쟁기간 동안 상당히 고전하였는데, 보어인들은 창과 활로 무장하고 닥돌하는 비서구권 원주민이 아니라 당시 기준으로 첨단 화약 무기에 익숙한 백인이었고 더불어 [[수렵]]에도 매우 익숙했던 사람들이었다. 특히 넒은 남아프리카 땅에서 개척민으로 살다보니 말을 잘 타는 사람들이 많아 최후의 [[용기병]]이라 부를 법한 기마 척후/교란전에 능숙했다. 아직 참호전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라 마우저 소총으로 은폐와 엄폐를 적절히 활용해 유격전을 펼치는 보어인들의 전략에 영국군은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위장이라는 개념도 없었던 시기라 [[레드 코트|가시성이 높은 영국군의 군복]]은 좋은 타겟이었다[* 심지어 나무 뒤에 숨은 영국군의 팔과 다리도 정확하게 쏘아 맞출 만큼, 보어인들은 뛰어난 저격 실력을 가졌다.]. 특히 수십명씩 조를 이루어 이동하는 보어군의 소부대를 뜻하는 [[코만도(영국)|코만도]]가 나중에 정예부대를 상징하는 단어가 될 정도였다. 게다가 보어인들도 당시 독일에서 수입해온 크루프의 야포나 [[맥심 기관총]]으로 무장할 정도로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영국군도 전략과 전술을 다듬어 이들에 대항하게 된다. 근대 영국군 특유의 붉은색 군복은 보어 전쟁을 기점으로 눈에 잘 띄지 않는 [[위장]] 색상으로 바뀌었고 대포처럼 운반거에 거치해 운용하던 기관총도 콤팩트한 삼각대 운용 방식으로 전환하게 된다. 또한 게릴라에 대한 지원을 끊기 위해 보어인 마을을 완전히 박살내고 민간인들을 지정한 수용소에 강제 수용시키는등 초토화 작전으로 보어인 게릴라에 대항한다. 결국 초토화 작전에 버티지 못한 보어인들이 협상을 요청해 1902년 4월 평화 협상이 시작되었고 5월 31일, 베레니깅 조약을 통해 2차 보어전쟁은 영국의 승리로 끝났다. 이 조약으로 보어인들의 두 나라, 트란스발 공화국과 오렌지 자유국은 케이프 식민지에 합병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