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보츠와나 (문단 편집) == 독립하기까지의 역사 == 보츠와나 지역에 처음으로 거주한 민족은 [[부시맨]]으로 알려진 [[코이산족]]이었으며, 17세기에 지금의 남아공 지역에서 [[반투족]]의 일파인 [[츠와나족]]이 이주해 오며 여러 부족 국가가 생겼다. 보츠와나 지역은 내륙의 사막 지역이었으나, 19세기 중후반 [[보어인]]들이 금을 찾아 보츠와나 일대로 침입해 들어오게 되면서 충돌이 일어났다. 1880년대 초반이 되자 [[독일 제국]]도 가세해 옆나라 부족인 나미족을 학살하기 시작하자 이에 공포를 느낀 츠와나족 추장들의 요청으로 보츠와나 지역은 1885년 보어인과 옆동네 [[나미비아]]에서 세력을 넓히던 독일 제국을 견제하려 했던 [[영국]]이 베추아날란드라는 이름으로 보호령으로 만든다. 처음에는 영국은 보츠와나 지역 자체에는 독일 제국 견제 목적 이외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말 그대로 보호령인 상태가 유지되었으나, [[세실 로즈]]가 남아프리카 회사를 설립하고 남아프리카 전역을 식민지로 만들려고 하자 또 다시 공포를 느낀다. 이에 츠와나족의 세 추장은 1895년 영국으로 건너가 보츠와나를 식민지로 만드는 것이 아닌 보호령을 유지하는 협정을 맺어, 보츠와나는 식민지가 되지는 않았고 로즈가 계획한 케이프 식민지와 [[로디지아]]를 잇는 철도만 보츠와나에 부설되는 것으로 소동은 정리되었다. 한편 영국은 보츠와나를 유연하게 통치하고자 철도 외에는 아무것도 개발하지 않았고, 보츠와나인은 남아공의 광산에 광부로 보내는 것에 그치는 등 무자비한 탄압은 최대한 자제하였기에 나미비아처럼 대규모 학살은 일어나지 않았다. 1910년 [[남아프리카 연방]] 설립 이후 [[남서아프리카]]가 남아프리카에 편입되자, 남아프리카 정부는 '''내친김에 보츠와나 역시 남아프리카의 일부로 편입하려 하였다.''' 다만 남아프리카는 보츠와나의 처우와 관련해서 영국 정부와의 협상을 지속하였지만 [[남아프리카 국민당]] 집권 이후 양국의 사이가 틀어지면서 결국 물 건너가 버리면서 이후에도 무려 반세기동안이나 영국의 보호령으로 계속 남아있게 된다. 한편 남아프리카 연방은 비록 베추아날란드의 편입은 무산되었지만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대신 옆에 있는 [[독일령 남서아프리카]]를 점령해서 남아프리카 연방의 보호령으로 편입했다. 1966년 보츠와나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고, [[세레체 카마]]가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츠와나족의 망과토 부족 추장의 후계자였으나, 영국 유학 시절 사귀게 된 영국 여성 루스 윌리엄스과 결혼했다 [[아파르트헤이트]]가 시행되던 시절 남아프리카 연방의 항의로 인해 보츠와나에서 추방당했다.[* 사실 일부 백인들의 반발도 있었지만, 흑인들의 반발이 훨씬 컸다. 백인(이자 평민인) 여성을 왕비로 인정할 수 없었던 것. 그리고 이와 관련된 스토리를 다룬 영화가 2016년 제작되어 국내엔 2018년 개봉한 영화 '오직 사랑뿐(원제 A United Kingdom)'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면서 1956년 카마는 보츠와나에 일반인 자격으로 귀국이 허락된다. 귀국 직후 카마는 '보츠와나 민주당'을 창당하고 독립운동을 이끌었으며, 1966년 보츠와나는 독립을 이루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