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복건사변 (문단 편집) === 공산당과 19로군의 접촉 === 한편 당시 장제스는 공산당의 숨통을 끊어놓기 위한 [[제5차 초공작전]]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천밍수와 결탁한 장광나이, 차이팅카이는 성동격서를 노리고 차이팅카이의 비서 서명홍에게 리지선, 천밍수, 장광나이, 차이팅카이가 연서한 편지를 주어 마오쩌둥과 주더와 접촉하게 했다. 장제스의 차원이 다른 공격에 얻어 터지고 있던 공산당은 즉각 반색, 10월 26일에 천밍수와 '반일반장 기초적 협정'이라는 초보협정을 체결하고 '즉시 쌍방의 군사행동을 정지하고 잠정 경계선을 정한 다음에 가급적 빨리 항일반장의 구체적 작전협정을 결정한다'는 합의를 도출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드러나게 되지만 공산당은 이들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고 이들에게 도움을 준 것도 사실상 없게 된다. 당시 차이팅카이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견해는 다음과 같았다. 우선 보구는 유일하게 차이팅카이에 대해서 새로운 민족통일전선의 결성이라는 목표와 항일 전위군 결성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면서 차이팅카이가 주저하건 안하든 전면적인 군사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상하이 서기국은 차이팅카이는 신용할 수 없는 인물이며 그는 반공주의 3당의 인물이며 그의 복건사변 역시 군국주의자들의 내분에 불과하다고 깠다. 중국 공산당의 입장에서는 이 내전을 이용하면 그만이라는 것이었다. 코민테른 요원들도 이 주장에 찬성했고 마오쩌둥은 "반동적 지배계급의 일부가 다가오는 자신의 몰락을 새로운 시위행동으로서 대중의 눈을 딴데로 돌리려는 시도"라고 비난하면서 19로군과 인민정부를 도울 이유가 없다고 했다. 마오쩌둥은 복건정부가 소극적, 우유부단하다고 비난하고 19로군이 먼저 복건 북부의 장제스 군대를 치기 전까지 지원할 수는 없다고 나왔다.[* 이 부분에서 마오쩌둥과 오토 브라운의 증언이 엇갈리는데 마오쩌둥은 자신은 복건사변을 신속히 지원할 것을 주장했지만 교조화된 당중앙과 오토 브라운이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오토 브라운은 정반대의 진술을 하며 복건을 제때 지원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마오쩌둥의 책임을 거론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