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복선군 (문단 편집) === 초반 === 1647년([[인조]] 26년) 9월 23일에[* 음력 8월 25일.] 태어났다. 10살에 아버지 [[인평대군]]과 어머니 오씨 부인을 잃었고, 얼마 뒤 즉위한 사촌형 [[현종(조선)|현종]][* 인평대군의 형 [[효종(조선)|효종]]의 아들.]이 [[고아]]가 된 복선군 형제를 궁에 들여서 키웠다.[* 인평대군의 자녀는 총 6남 4녀이다. 그 중 2남, 4남, 3녀, 4녀는 [[요절]]했고 당시 살아있던 자녀는 총 4남 2녀였다. 큰아들 [[복녕군]]과 3남 [[복창군]]은 이미 봉군되었고 혼인했기 때문에, 1녀, 2녀, 5남 복선군, 6남 [[복평군]]이 궁에서 자랐다.] 공식 기록에서 처음 나타나는 건 1662년(현종 3년) 3월 26일[* 양력 5월 13일.] 자 《[[승정원일기]]》 기사이다. 사복시에서 복선군을 포함한 왕족 4명에게 말을 지급하려 면급마별단(面給馬別單)을 작성하여 [[현종(조선)|현종]]에게 올린다는 내용이다.[[http://sjw.history.go.kr/id/SJW-C03030260-01500|#]] 그 뒤로도 칙사를 맞이하는 등 국가행사에 다른 종친들과 함께 참석한 그저 그런 내용들이 있으나 [[http://sjw.history.go.kr/id/SJW-C07070140-01000|#]], 1666년(현종 7년) 12월 20일[* 음력 11월 25일.]에 제향 관련 문제로 인해 [[승정원]]의 건의로 추고받았다는 기사가 개인적인 기록 중에서는 처음이다.[[http://sjw.history.go.kr/id/SJW-C07110250-01300|#]] 1668년(현종 9년)에는 형 [[복창군]], 동생 [[복평군]]과 함께 [[사냥]]으로 백성들에게 민폐를 끼쳐 추고받았다.[[http://sillok.history.go.kr/id/kra_10902022_001|#]] 1670년(현종 11년) 12월 16일[* 음력 11월 5일.]에는 사은사 겸 동지정사로 임명받아 [[청나라]]에 다녀왔다.[[http://sillok.history.go.kr/id/krb_11111005_001|#]] 이때 [[조선]]은 [[경신대기근]]으로 역사상 최악의 참사를 겪고 있어 청나라에 도움을 청하러 간 것이었는데, 복선군을 비롯한 사신단은 이 때 [[강희제]]에게서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너희 나라 백성이 빈궁하여 살아갈 길이 없어서 다 굶어 죽게 되었는데 [[군약신강|이것은 신하가 강한 소치라고 한다.]] 돌아가서 이 말을 국왕에게 전하라. >---- >[[강희제]][[http://sillok.history.go.kr/id/krb_11202020_002|#]] 한마디로 왕이 신하들에게 눌렸으니 나라가 그렇게 된 것 아니냐는 뜻이다. 정황상 [[강희제]] 입장에서는 [[조언]]으로 한 것으로 보이지만, 조선 사신단 입장에서는 충분히 조선을 [[조롱]]하는 의미로 느낄 수 있는 말이었다. 저 말을 듣고 복선군은 이렇게 답하여 조선의 체면을 지켰다. >어찌 신하가 강하여 이렇게 백성이 굶주리게 되었을 리가 있습니까. 근년 이래로 저희 나라에 홍수와 가뭄이 잇달아서 연이어 흉년을 당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국가의 재정이 바닥나고 백성이 도탄에 빠졌으므로 임금과 신하가 밤낮으로 황급해 하고 심지어는 대내에 진공하는 물건까지도 모두 줄여 가면서 죽어가는 백성을 구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사대(事大)의 예를 폐기하지 않고 이번 진헌(進獻)에 힘을 다해 장만하여 겨우 거르는 것을 면하였는데, 어찌 신하가 강하여 백성의 빈궁을 가져오는 일이 있겠습니까. >---- >복선군[[http://sillok.history.go.kr/id/krb_11202020_002|#]] 이렇게 [[강희제]] 앞에서도 할 말은 했던 복선군은 구휼품을 얻어서 1671년(현종 12년) 4월 21일[* 음력 3월 13일.]에 조선으로 돌아왔다. 1673년(현종 14년)에는 청나라 책들에[* 《황명통기(皇明通紀)》, 《십육조광기(十六朝廣紀)》, 《양조종신록(兩朝從信錄)》 등이었다고 한다.] 인조반정 관련 내용이 잘못 적혔다하여 [[현종(조선)|현종]]에게 대응해야한다고 형 [[복창군]], 동생 [[복평군]]과 함께 [[상소]]했다.[[http://sillok.history.go.kr/id/krb_11402011_003|#]]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