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복소수 (문단 편집) == 역사 == 복소수를 수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수학자들에게도 상당한 거부감이 있었다.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허근을 가지는 이차방정식은 수도 없이 있었지만, 중세까지는 자연스레 해가 없다고 하고 넘어가 버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때는 심지어 음수해도 없다고 부르던 시절이었다.) 16세기쯤 페로, 타르탈리아, 카르다노 등 수학자들의 [[방정식]] 풀기 배틀이 시작되면서 복소수는 본격적인 '수'로서 등장하게 된다. 이는 [[삼차방정식]]을 풀기 위해서는 아무리 주어진 삼차방정식의 근이 모두 실근일지라도, 그 근을 계산하는 과정에서는 복소수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방정식을 기계적으로 풀면서 복소수를 갖다 쓰면서도 속으로는 거부감이 들었다. 사실 누구라도 두 번 곱해서 음수가 되고, 네 번 곱해서 1이 되는 1이 아닌 '무언가'를 처음 보면 당황하는 건 당연할 것이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거쳐 [[지롤라모 카르다노|카르다노]]는 <위대한 술법(Ars Magna)>[* 타르탈리아의 3차방정식의 해법을 베껴서 발표한 바로 그 책이다.]에서 복소수를 수로 취급하는 모습을 보인다. 카르다노는 10을 두 부분으로 나누되 곱이 40이 되게 할 수 있는 문제(요즘으로 따지면 [math(a+b=10,ab=40)]의 이차방정식)[* 참고로 위 식은 [math((a-b)^2=-60)]이 나오기 때문에 실근을 갖지 않으며 [math(a=5-\sqrt{-15}, b=5+\sqrt{-15})](혹은 [math(a,b)]가 바뀌어도 무방하다.)이고, 위 [math(a,b)]를 근으로 갖는 방정식은 [math(x^2-10x+40)]이다.]를 다루면서 '이런 허깨비를 다루는 것은 궤변(sophistic)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풀어나갈 것이다.' 하면서 복소근 2개를 계산하고는 '그다지 큰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다. 산술이란 이처럼 오묘하게 풀어나가야 한다. 산술의 목표는 성현이 말하듯 정밀하며 반드시 유용하지만은 않다.' 고 말한다. [[음수(수학)|음수]]까지 배척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이 시기 기준으로는 카르다노는 상당한 대인배 축에 속했다. 물론 자신의 삼차방정식 해법이 복소수를 사용하니 어느 정도는 당연한 태도였을 것이다. 봄벨리 역시 비슷한 곤경에 처했다. 그는 현대적 표기와 비슷하게 복소수의 네 가지 계산을 규정했지만 여전히 수학자들은 복소수를 쓸데없는 수, 기괴한 수로 취급했다. 데카르트 역시 복소수근을 허구의 수라고 부르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심지어 뉴턴마저 허근의 의미를 인정하지 않았다. 복소수의 출현에 대한 이 같은 강한 배척은 라이프니츠의 다음 글에 잘 나타나 있다. >성령께서 분석을 하는 과정에 범속을 초월한 계시를 보여 주셨다. 그것은 바로 저 이상세계의 전조다. 존재와 존재하지 않음 사이에 나타난 양쪽 모두에 걸쳐 있는 무언가, 우리는 이를 허구의 -1제곱근이라 부른다.[* 번역출처: 수학의 역사, 지즈강 지음/ 권수철 옮김/ 출판사 더 숲. 원문은 Acta Eruditorum 중 다음으로 추정. 'C'est pourquoi ils ont invente cet expedient elegant et admirable, ce mircale de l'Analyse, prodige du monde des idees, objet presque amphibie entre l'Etre et le Non-etre, que nous appelons racine imaginaire.' (Leibniz, Gottfried Wilhelm. La naissance du calcul différentiel: 26 articles des" Acta Eruditorum". Vrin, 1989.)] 물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이게 유용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연스레 갖다 쓰게 되었다. [[레온하르트 오일러|오일러]]의 교과서 Elements of Algebra에는 대놓고 시작부터 복소수가 튀어나온다! 복소지수, 복소삼각함수 등을 만들고 드 무아브르 공식을 [[오일러 공식]]으로 일반화하는 많은 업적을 남긴 것도 오일러이긴 하다. 기호 [math(i)]를 고안한 사람도 오일러였다. 다만 이는 사람들이 하도 [math(\sqrt{-1} \cdot \sqrt{-1} = \sqrt{(-1)\cdot(-1)})] 같은 실수를 해대서 [math(\sqrt{-1})] 대신 별도의 기호를 만들어줬다는 설도 있다. 특히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증명의 출발점[* [[피에르 드 페르마]]가 n=4인 경우를 증명해 놓았는데, 오일러가 복소수를 이용해서 n=3의 경우를 증명했다.]이라는 의의가 크다. 그리고 많은 수학자들이 인정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등식인 [[오일러 등식]]에서는 복소수의 범위 내의 수 체계인 [[무리수]] [math(e)], π, [[허수]] [math(i)], [[자연수]] 1, [[정수]]인 0(혹은 [[음수(수학)|음수]]인 -1로 치환도 가능)을 모두 사용한다. 대략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가우스]] 시대에 [[대수학의 기본정리]]가 증명된 전후로 현대에 쓰이는 복소수의 기틀이 잡혔다고 평가받는다. 물론 그 가우스 조차도 20살의 어린 시절(1797년)에는 대수학의 기본정리의 틀린 증명을 발표하면서 허수의 진정한 의미가 있는지 의심하기는 했지만, 나이 들어서는 받아들였다. 이의 뒤를 이어 [[오귀스탱루이 코시|코시]] 등등이 [[복소해석학]]의 기틀을 잡고 [[리만]] 곡면 같은 게 나오면서 복소수는 방정식을 넘어선 온갖 분야에 응용되기 시작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