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복수법 (문단 편집) == 배경 == 이 법이 제정된 배경은 [[고려]]를 탄생시킨 [[태조(고려)|왕건]]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왕건은 지방 호족들의 반발을 막기 위해 그들의 딸과 혼인을 하여 가족관계가 되었다. 하지만 그 부작용으로 왕비가 수십명 단위가 될 정도로 너무 많아졌기 때문에, 거기에 비례하여 왕자들이 너무나도 많이 태어나게 된다. 당연히 뒤에서 치열한 정권다툼이 일어났고, 개경은 왕건이 세상을 떠난 후, 끝이 없어 보이는 왕위쟁탈전이 벌어졌다. 그 뒤 즉위한 [[광종(고려)|광종]]은 왕권에 항상 위협이 되던 호족세력들의 권력과 재산[* 구체적으론 [[노비]]들]을 분산 및 소멸시켰으며, 반발하는 호족들을 [[숙청]]해서 후일 나라가 분열되는 정권다툼의 씨앗들을 정리했다. 호족들은 이러한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음에는 뭉쳤을지 몰라도 나중에 가서는 서로를 모함하고 왕 앞에서 최대한 비위를 맞추는 등, 말 그대로 살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했다. 그리고 이러한 숙청의 회오리 속에서 살아남지 못한 호족 가문은 몰락했고, 그 후손들은 고려라는 나라와 자신들을 모함했던 호족들에게 끝을 알 수 없는 원한을 가졌다. 이러한 사회적 불만이 가득찬 고려사회에 광종은 [[공포정치]]를 통해 그 불만을 억눌렀으나, 광종이 승하하고 경종이 즉위하자 상황이 바뀌었다. 경종 또한 선왕의 공포정치로 자주 목숨의 위협을 느꼈었기 때문에 호족들을 동정했고, 즉위하자마자 광종의 탄압으로 쥐 죽은 듯 살아가던 구세력에게 사면령을 내렸다. 물론 일반 형사 범죄자가 아닌 정치범에 한해서긴 했지만 유배갔던 사람들을 모두 돌아오게 하고 갇혀있던 사람들도 모두 풀어주었다. 또한 흉흉한 나라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효도를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걸로는 성이 안 차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중 한 명인 [[왕선#s-2|왕선]](王詵)과 그 세력은 경종에게 선대에 입은 조상들의 원한을 갚기 위해, '''복수를 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경종은 본인의 추구 이념이 효도이기도 했고, 호족들의 처지를 동정하여 이를 받아들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