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복제인간 (문단 편집) === 반대론 === >''(전략)'' ...과거에 생기론자들은 자신들의 핵심개념인 생명이 찬반양론의 싸움에 휘말리는 것을 막기 위해 종교적 색채를 띤 수사법을 썼다. 그런데 오늘날 생명 개념 둘레에 과거처럼 높은 금지의 울타리를 치는 사람들은 오히려 객관화하는 자들, 신중하다고 자처하지만 사실은 도그마를 세우는 자들, 신앙을 경멸하고 기술을 신봉하는 자들, 이성 중심론자들이다. 그 울타리는 종교가 아니라 과학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생명과학의 전능한 의미부여 능력을 믿는 자들에게만 토론에 참여할 권리를 주는, '''거의 종교적인 의도를 품은 과학관이다'''... ''(후략)'' > >''(전략)'' ...만일 그런 신앙고백이 생명과학 전문서와 학술논문에 어울리는 것들이라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생명과학은 제 안에 새로운 종교의 싹을 품고 있다. 그 새로운 종교는 결연히 현세적인 것처럼 행동하면서 이 세계의 구원 대신에 병과 우연이 없는 충만한 생명을 약속한다. 그 새로운 종교는 권위를 비판하고 개인주의적인 것처럼 행동하면서 생명을 생명개량자들의 목표와 권위 아래 종속시키는 새로운 예속을 촉진한다. 그 새로운 종교는 완전히 계몽된 것처럼 행동하면서 자기의심과 자기비판과 판단유보를 버릴 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어쩌면 지금 북반구의 사회들에는 기존 종교들이 거의 모든 구속력을 잃은 이 시점에, 그 사회들이 자초한 미성숙이라는 유령이 재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ㅡ A.키슬러[* Alexander Kissler, 독일의 저널리스트, 작가], 《복제인간, 망상기계[* 여기서 키슬러는 18세기 계몽주의자였던 [[쥘리앙 오프레 드 라 메트리|드 라 메트리]](De La Mettrie)의 저서 《[[인간기계론]]》(L'homme machine)을 떠올린 것으로 보인다.]들의 유토피아》, (전대호 역, 뿌리와이파리, 2007, 서울), pp.216~217 반대론자들은 우선적으로 인간복제에 대한 반감이 합리화된 효율과 능률 추구에 의했다는 것보다는 보다 도덕과 윤리에 의존하는 자세에 가깝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여기서 그들은 "그런데 그게 뭐?"라고 반문한다. 인간복제의 문제는 논리 대 논리의 싸움이 아니며, 인간이 어떤 존재이고 생명이 어떤 존재인지, 과학과 기술은 또한 현대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과학자는 어떤 사람들인지, 윤리란 무엇인지 심각하게 검토할 것을 요구한다. 반대론자들은 종교적 교리를 근거로 개인이 인간복제에 반대하는 것은 관용할 수 있지만, 반대론의 핵심적인 근거가 주로 (특히 전근대적이고 무지몽매하다고 여겨지는) 종교에 의존한다는 찬성론자들의 공격에는 단호하게 반대한다. 오히려 반대론자들은 자신들의 관용으로부터 궁극적으로 '''양심의 자유'''를 도출한다. 이들의 시선에서 찬성론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억지로 관철시키려 하는 위험한 집단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을 뿐이다. 오늘날 인간복제 논쟁이 가장 활발하게 벌어지는 지역은 [[유럽]], 그 중에서도 [[독일]] 및 [[북유럽]] 지역이다. 그러나 인간복제 찬성론자들은 반대론자들을 공격하기 위해 뜻밖에도 19세기 이전의 전근대적 [[신학]]을 끌고 나타난다. 교회에 대한 증오나 신앙에 대한 경멸 자체는 관용된다 할지라도, 반대론자들은 도대체 그것이 왜 찬성론을 강화하는 근거가 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21세기 들어 거의 종교적 관념에서 벗어나 있는 유럽 사회의 반대론자들에게, 이와 같은 이상한 논변은 마치 이 주제에 대해 깊이 이해할 의지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위한 낡아빠지고 시대착오적인 종교비판처럼 보인다. 사유의 허점을 억지로 메우기 위해 청중들에게 던지는 그럴싸한 슬로건이라는 것이며, 시기로 보나 장소로 보나 영 뜬금없는 [[반종교주의]]일 따름이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자신이 독일에서 인간복제 떡밥을 꺼냈을 때 지성인들은 주로 도덕적 규범과 자연법의 관점에서 우려한 반면, [[미국]]의 동료들은 유전공학이 과연 어디까지 발전할 것인가에 대해 아무런 의문도 우려도 표명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들이 우려했던 유일한 문제는 [[자유지상주의|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과학만능주의|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대한 불굴의 확신]]으로 정당화되었다는 것이다. 반대론자들은 이를 토대로 과학과 기술에 대한 그들의 세계관과 인간관, 생명관이 '''과연 절대적인 것인지''' 묻는다. 반대론자들의 판단에 따르면, 이것은 절대적일 수도 없고 오히려 위험한 도그마일 따름이다. 반대론자들은 미국식 실용주의가 숙고와 반성적 성찰 없이 남용되는 현실을 개탄한다. 물론 실용주의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이 진정 꺼리는 것은 그것을 타인에게 억지로 주입시키려는 종교적 열정, 그것이 무조건 옳다는 맹목적 신앙, 타인의 양심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도리어 전근대적 미몽으로 치부하며 계몽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태도이다. 분명, 과학과 기술은 좋다. 그러나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과학과 기술은 인류를 이끌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인류의 구세주가 아니며, 인류를 얌전히 [[이상향]]으로 데려다줄 선지자는 더더욱 아니다. 찬성론자들은 이에 대해 의문을 갖는 개인의 양심을 비웃고 무시하며 [[선민사상|섣부른 계몽의식]]을 함부로 내세운다. 반대론자들이 보기에 찬성론자들은 그저 기술을 통한 자연지배에 힘입은 무한한 진보에 대해 이상하리만치 신앙심을 갖고 있으며, 신중한 검토를 초장부터 포기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영리한 인간을 노래하면서 자기찬양을 한다. 그들은 [[벨 에포크|이례적일 정도로 낙관적이며 인간의 가능성만을 꿈꾼다]]. 반대론자들에게 이것은 마치 유토피아를 약속하는 어느 컬트 집단의 교주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여기서 키슬러는 다시 덧붙인다. "신앙에 대한 경멸의 기반에는 전혀 계몽되지 않은 또 다른 신앙이 웅크리고 있다." 예를 들어, 찬성론자들은 인간복제가 단지 자녀의 유전병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고, 당사자와 그들의 부모가 함께 겪게 될 고통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에게 있어 인간복제는 [[모성애|자녀를 위한 부모의 마음]]이며, 부모가 자녀에게 나타날지도 모르는 어려움을 없애 주고자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이 보기에는, 똑같은 논리로 "부모가 자녀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기 위해서 자녀에게 자본을 보태서 출발선상의 유리함을 안겨주는 행위'' 역시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모성애 지극하고 지불 능력도 있고 지불 용의도 있는 부모가 자녀의 우수한 유전적 특성을 원한다면, 도대체 누가 그 사람들의 "정당한 권리" 를 침해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문제는 차별로 주어지는 보상이다. 무엇이 인간이고 무엇이 생명인가? 반대론자들은 우리 사회가 아직 이에 대해 충분한 논의를 하지 못했으며 서로의 의견에 제대로 반박할 기회도 없었다고 본다. 그러나 적어도 이들은 플레처의 기준, 즉 사고력과 기억력과 자각능력에는 반대한다. 반대론자들은 플레처를 포함한 찬성론자들이 '''생명의 기준을 너무 좁게 잡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를 근거로 "사고력, 기억력, 자각능력, 따져보니 전부 없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따질 대상이 아니야. 우리는 그것들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어. 문제가 된다면 처분할 수 있고." 라고 말하는 것을 경계한다. 만일 그 기준들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예를 들어 중증의 장애인[* 구체적으로, 심각한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앓는 환자들의 뇌리는 공허하며, 삭막하고, 길어 봐야 몇십 초 내지 몇 분 정도의 자각능력을 갖는다.]이나 [[식물인간]], 기타 사회적 약자들을 강자의 이해타산에 맞추어 결정하는 것이 된다. 당장 저 위의 찬성자들도 국가단위의 복제인간 양성이 벌어질 때 일어날 인권침해나, 인간을 뜯어고치면 낙오될 이들이 겪을 나락에 대해선 부정한다. 그들이 싫어한다는 '''[[무관심|운명적 패배론과 순응]]'''을 [[모순|옹호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상태가 의도적으로 생겼다면, 혹은 사고나 기억의 일부, 나아가 뇌 전체의 정보가 따로 복사되어 조종당한다 하더라도 존재론적으로는 서로 생판 남이니 신경쓰지 않고 파생된 권리로만 따질 것인가?] 여기서 보다 더 나아가, 반대론자들은 훨씬 현실적인 공격을 시도한다. 찬성론자들은 [[국가]]와 그 [[의회]]와 그 [[의원(정치인)|의원]]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아마도 과학에 무지하다고 느껴지는) 대중들에 의해 그네들의 연구가 방해받는 것을 못마땅해한다. 그들은 자신이야말로 생명과학의 쟁점들에 있어 "진정한 전문가"이며 비전문적인 국가가 무지에 선동당해 인류 지성의 발전과 축적을 가로막는 현실에 분노한다. 반대론자들은 찬성론자들이 '''[[민주주의|뭔가 중요한 것]]'''을 잊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궁극적인 결정은 전문가와 교수와 윤리 위원회와 생명공학 산업이 내리는 것이 아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의회와 정치가들이 궁극적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국가에서 과학자들의 연구를 규제하려고 하는 것도 부당한 탄압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국가권력의 행사'''이다. 소위 진정한 전문가라는 과학자 집단과 그들의 윤리 위원회에게 생명과학의 모든 난제들과 사회적 이슈들을 위임하자는 주장은, 그 대상은 설령 다를지언정 [[정치학]]에서 말하는 '''[[엘리트주의]], 그것도 아주 질 낮은 편협한 엘리트주의와 정확히 상통한다.''' 그리고 찬성측에서 스스로 현실에서 분리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며 그들이 밝혀낸 과학적 사실만을 읊는다 해도, 실현될 기술이 불러올 파장과 그 이유 및 기술을 둘러싼 환경을 억지로 신경 쓰지 않아 이미 남에게 영향을 받은 셈이라 몹시 질이 나쁘다. 반대론자들에 따르면, 찬성론자들은 중도에서 우려 섞인 눈빛으로 숙고하고 있는 대중들을 '''무지몽매하며 쉽게 선동당해서 과학과 이성의 무궁한 발전을 가로막는 위험인자로 여기고 불안해한다. 이들의 세계에는 도덕을 낭송하는 입법자들과 연구의 자유만이 있을 뿐이며, 전자를 경멸하고 후자를 찬양한다. 그 양극단 사이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목소리들은 없다. 그러면서도, 찬성론자들은 대중들이 복제를 옹호하는 듯 보이면 곧바로 추켜세운다.''' 일례로 찬성론자들은 종종 비교 사례로서 영국의 복제에 호의적인 여론을 예로 들곤 한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복제를 반대하면 비이성적인 대중(mass)이자 야만스러운 짐승이고, 복제를 찬성하면 현명한 공중(public)이자 지성체다운 사람이다.''' 반대론자들에게 이것은 너무 [[흑백논리|이분법적이고 편협한 사고]]로 보인다는 것. 반대론자들은 또한 많은 인간복제 찬성론적인 과학자들이 실제 인간복제 산업에 이미 '''[[편향#s-2.4.5|이해관계가 연루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이런 상황에서야 제대로 된 허심탄회하고 이성적이며 건설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제 단지 자신들의 활동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며 그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인간복제에 대한 결론을 먼저 내리고" 그 이후에 그에 대한 근거를 찾으려 할지도 모른다. 설령 그들의 판단이 입사에 우선하였다 하더라도 그들의 자유로웠던 사고는 일정 부분 시장 이윤의 논리에 의해 제한받을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