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볼트액션 (문단 편집) == 탄생과 황금기, 쇠퇴 == 볼트액션은 최초의 현대식 후장식 소총인 [[드라이제]] 니들건과 함께 등장했다. 최초로 등장한 이 소총은 당시 어느 소총보다도 빠른 속도로 탄환을 퍼 부을 수 있었다. 볼트 액션은 폐쇄성이 우수하고 조작이 총의 상부에서만 일어났기 때문에 엎드린 자세로 사격을 할 수 있어 보병 전투에서 훨씬 유리했다.[* 드라이제가 발명되기 이전의 머스켓 총들은 복잡한 장전 구조와 조작 과정 등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서거나 앉은 채로 사격해야 했다.] 드라이제로 촉발된 볼트액션은 간단한 구조와 우수한 조작성 때문에 빠른속도로 유럽 전역에 퍼졌다.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형태의 볼트 액션 소총들이 나왔다. 프랑스에서는 [[샤스포 소총]]을 제작했고 뒤이어 최초로 금속탄피를 사용한 [[그라 소총]]을 제작하여 사용했다. 다만 초창기에는 지금처럼 온동네에서 쓰인 것은 아니었다. 우선 드라이제 소총 자체가 종이 탄피를 쓰던 물건이지라 여러 결함이 많았고 당시는 소총 개발사의 과도기라 정말 다양한 방식들이 개발되었었다. [[헨리 소총]] 등 [[레버액션]]의 경우 연사력이 좋았으나 당시 기술의 한계로 강한 폭압을 받아낼 수 없어 제식 소총으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오늘 날로 치면 [[기관단총]] 정도의 포지션이다. 기관단총도 요즘에는 실내전 상황이 특히 많은 경찰부대에서 간간히 쓰일 정도로 제한적 포지션인데, 당시에는 야전에서 장거리 교전이 대부분이라 사거리와 위력이 중요시 되었다. 후에 참호전에서 참호 점령시 교전거리가 짧아지는 양상이 보였으나 그때는 진짜 기관단총과 산탄총이 전장을 휩쓸었다.] 허나 이외에도 쟁쟁한 경쟁자가 둘 있었다. 하나는 유사한 시기에 발명되어 나온 [[마티니-헨리 소총]]을 필두로 한 레버식 폴링 블록 구조로 빠른 조작으로 인하여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고 다른 하나는 [[레밍턴 롤링블럭]] 소총으로 롤링 블럭이라는 구조는 단순하고 견고한 내구성이 특징으로 유럽을 제외한 '''미 해병대'''[* [[신미양요]]때 미군이 들고 온 그 총이다. 그때 [[조선군]]은 [[조총]]을 썼고 당연히 졌다. 그러나 당시 미 해병대가 롤링블럭을 썼을 가능성은 매우 낮은데, 너무 최신무기라 출발시기에는 발매도 안한 이 무기를 배를타고 조선으로 온 해병대가 이걸 들고왔기 힘들다.]와 '''[[대한제국]]군'''을 포함한 여러 군대에서 제식으로 사용하였다. 즉 이때까지는 볼트액션은 과도기의 여러 장전 방식 중 쓸만한 구조 하나에 불과했다. [[트랩도어]]와 비교되긴 하는데, 트랩도어식은 1860년대 이후에 미국에서 등장한 방식으로 남북전쟁기에 쓰이고 남은 강선 [[머스킷]]들을 조금이라도 시대에 맞게 개량하기 위한 과도기적 시도였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오스트리아와 스위스에서 비슷한 의도로 사용된걸 제외하면 거의 주목받지 못했으며, 기존 강선 머스킷을 손쉽게 탄피식 소총으로 바꿔준다는 점을 제외하면 별 장점이 없었다. 이미 1840년대에 프로이센은 볼트액션식 드라이제 소총을 사용했고, 프랑스는 1860년대 샤스포의 개발에 성공한데다, 영국에서는 비슷한 형태의 스나이더-엔필드 소총을 사용하고 있었으며, 오스트리아와 스위스에서나 보오전쟁 이후 기존 강선 머스킷들을 트랩도어화 하였다. 따라서 이미 강선 머스킷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지 않거나 예산이 충분하다면 미국식 트랩도어의 도입을 고민할 이유가 딱히 없다. 군에서 사용한 것 외에도, 안정적이고 저렴한 구조로 인하여 이 시기에는 대부분의 소총들이 볼트액션으로 만들어졌다. 일반 수렵용 소총은 물론 산탄총도 볼트액션으로 제작하여 많은 사냥꾼들이 사용하곤 했다. 하지만 이는 여타 롤링블록, 폴링블록도 마찬가지로 볼트액션만의 뚜렷한 강점은 없었기에 다른 방식과 공존하는 시기를 보낸다. 허나 '''[[탄창|한 부품]]의 발명'''으로 판도는 완전히 바뀌고 만다. 이 시기는 [[레버액션]]과 그 후예인 [[펌프액션]], [[리볼버]], 추가로 [[더블배럴]]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단발로 탄약을 장전해야 했기에, 사용이 번거로웠다. 많은 총기 기술자들은 이를 연발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내장식 탄창은 1852년 [[레버액션]]이 개발되며 이미 만들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이를 소총에 적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시기 사용된 [[관형탄창]]은 단점이 많았기에 본격적으로 채택되진 않는다. 튜브의 총알이 바닥나는 순간 단발식 소총보다 연사력에서 나을 것도 없는 주제에[* 튜브에 장전하는 것보다, 약실에 직접 총알을 넣는 단발식이 더 빠르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수직으로 장전하는 내부탄창이 나올때까지 초기 내부탄창도 마찬가지였다.] 가격과 복잡함만 올라 가게 됐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19세기 후반 개발된 끝이 뾰족한 '스핏저' 탄두가 기존이 라운드형 탄두에 비해 관통력, 명중률, 사거리 면에서 모두 우월하여 여러 국가에서 제식 총알로 채택되는데 관형탄창은 장전된 총알 앞이 뾰족할 경우 '''앞 총알의 뇌관을 자극해 내부 폭발'''이 일어날 위험이 컸다. 이런 이유 등으로 당시 여러 나라의 군대들은 탄창에 별로 관심이 없었으며, 단발성능만 충분하면 상관없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1800년대 후반까지 거의 도입되지 않는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MosinNagant.jpg|width=100%]]}}} || || [[모신나강]]의 내부 단면도 3D || 하지만 이후 '''상부에서 장전하는 내부탄창을 볼트액션에 적용하면서 게임은 끝난다.''' 단발식과 내부탄창식의 장전속도가 비슷해 졌으며, 1890년대 엔블록과 스트리퍼 [[탄 클립]]이 개발되면서[* 이를 두고 영문 위키는 [[탄 클립]] 혁명이라고까지 칭하고 있다. 지금이야 여러 매체를 통해 탄 클립과 박스형 스프링 [[탄창]]이 당연하게 여겨질지 몰라도 당시로써는 혁명이었다. 뉴턴의 운동 법칙도 이미 다 쓰이고 있고 배웠으니까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치.] '''박스 탄창'''을 사용할 수 있는 볼트 액션의 재장전 속도는 획기적으로 짧아졌고, 덕분에 다른 작동 방식의 단발/연발식 소총을 빠르게 대신하여 채용되게 된다. 탄창식 연발 구조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노리쇠가 후퇴/전진을 할 필요가 있었기에, 볼트 액션을 제외한 롤링블럭이나 폴링블럭같은 구조에는 '''절대 적용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레버액션은 레버의 회전으로 인한 급탄이 이루어지므로, 노리쇠의 후퇴거리가 짧아져 길이가 긴 탄을 사용하기 힘들었으며 구조적으로 약해서 대구경탄을 사용할 수 없었으며,[* 이후 브라우닝이 두 문제를 모두 개선하긴 했으나, 제조의 난이도와 가격, 그리고 레버의 작동으로 인한 사격 자세의 제한 등의 다양한 문제로 자연스럽게 도태되게 된다.] 레버액션보다 구조적으로 더 단순해진 [[펌프액션]]은 레버액션과 동시기에 특허가 나왔지만 1882년에야 제대로된 상품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내부탄창이나 군용 라이플 탄환 적용을 고려하기엔 아직 언감생심이었다.[* 이후 브라우닝이 소총탄에 맞게 설계한 레밍턴 모델 14를 개발한다.] 즉 '''상부 장전 탄창이 발명된 직후 볼트액션은 군용 제식소총으로는 롤링블록, 폴링블록, 레버액션 등 당시 현존하던 모든 총기구조에 대해 압도적인 우위'''[* 단, 산탄총 시장에선 큰 영향을 주지 못했는데, 탄환이 두껍다보니 분리식 탄창이 등장한 지금도 관형탄창이 장탄량에서 대부분 유리하다.]탄환를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각국에서는 앞다퉈 형태만 조금씩 다른 [[스프링필드 M1903]], [[리-엔필드]], [[모신나강]] 같은 내부탄창식 볼트액션 소총들을 제식으로 채택한다. 신형의 연발 볼트 액션은 기존 방식보다 재장전속도가 획기적으로 빨랐기 때문에 당시 볼트 액션 소총을 도입했던 열강들은 이 신형 소총만 있으면 보병이 총알을 분무기처럼 뿌리면서 적진을 제압해서 전쟁에서 빠르고 큰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 허나 탄창 달린 볼트액션의 황금기는 처음으로 제대로 활약하리라 기대를 받았던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자마자 깨지고 만다. 문제는 '''[[게임이론|상대방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데다가,]]''' 막상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볼트 액션 소총을 쏘면서 돌격하는 병사들 앞에는 [[철조망]]으로 도배된 [[참호]] 안에 '''[[기관총#s-4.1|수랭식 기관총]]'''을 장전하고 적군이 씨익하고 웃는 상황이었으니… 그 뒤는 그냥 추풍낙엽이나 다름없는 꼴. 결국 얼마 못가 제식 소총은 20세기 중엽 등장한 [[M1 개런드]]를 필두로 한 반자동소총에 밀리게되나 자동화기의 비싼가격과 개발 난이도, 그리고 연약한 내구성 때문에 2차대전 이후까지도 가난한 국가에선 제식으로 사용되게 된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예시가 [[6.25 전쟁]]이다. 국군과 UN군은 저격소총으로 스프링필드 M1903을 지급한 것을 제외하면 미군이 공여해준 반자동소총인 [[M1 개런드]]로 주력 소총으로 깔아놨는데 북한군과 중공군은 정예부대에 기관단총인 [[PPSh-41]]을 지급한 것을 제외하면 여전히 주력 소총으로 소련군이 공여해준 모신나강을 사용하고 있었다.] 1차대전 중 대부분의 국가들은 연발 볼트액션을 이용했지만, 거꾸로 이 때문에 당시 볼트액션 소총들의 단점들이 드러나게 된다. 당시 소총들의 긴 길이는 비좁은 참호에서 사용을 불편하게 만들었으며,[* 이것은 볼트액션만의 문제가 아니긴 하지만, 보병화기가 짧아지게된 계기이기도 하기에 수록.] 번거로운 조작으로 인하여 병사들의 체력 소모를 야기했다. 또한 근접전 상황에서 조작실수로 인하여 당시 신병들은 차탄을 장전하지 못한 채로 전사 하기도 했다.[* 영화 [[덩케르크]] 초반부에 이런 문제가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독일군의 기습으로 인해서 놀란 주인공이 그 부드럽다는 리엔필드조차도 제대로 장전 손잡이를 당기지 못해 한참을 뻘짓한 뒤에서야 장전을 성공한다. 단순해 보이지만 다급한 상황에서는 노리쇠 손잡이를 제대로 올리고 당기지 못하는 것 ] 신병들 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숙련병들도 쏟아지는 총알과 포탄때문에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다 보면 자신이 사격 후 장전을 했는지 여부조차를 까먹기 일쑤라서 코앞에 있는 적에게 방아쇠를 당겼는데 총알이 안나가는 일이 흔했다고. 때문에 1차대전 종전 후 각 국들은 반자동화기의 채용에 혈안이 되었으며, 일부 국가는 개발에 성공하여 2차대전 중 잘 써먹게 된다. 단적인 예로 정글로 인해 근접전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던 [[태평양 전쟁]]초반 괜히 [[미합중국 해병대|미 해병대]]가 [[미합중국 육군|미 육군]] 시체를 뒤지거나 육군의 보급품을 훔치는 식으로 [[M1 개런드]][* 당시 미해병대는 돈이 없어서 M1 개런드를 도입하지 못했다. 때문에 전쟁 초반에 스프링필드 볼트 액션 소총을 사용해야만 했다. 태평양 전쟁을 배경으로한 드라마 [[더 퍼시픽]]에서도 언급된다. 스프링필드에서 M1이나 카빈과 같은 자동화기로 교체된 시기는 과달카날과 펠렐리우 섬 전투 이후 즉 1943년부터다.]를 챙긴 게 아니었다. 더 자세한 비교는 [[M1 개런드]] 문서 참조. 그래도 일단 대규모로 해당 방식의 소총을 도입한 데다가 기존의 강력한 [[탄환]]으로 보병이 쉽게 휴대 및 난사할 수 있는 [[자동소총]]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탓에 [[제2차 세계 대전]]에서도 대부분의 보병의 제식 총기로 쓰이긴 했지만 그 시절부터 슬슬 [[M1 개런드]]뿐만 아니라 [[SVT-40]] 같은 [[반자동소총]]이 개발되어서 실전에서 사용되었으며, 1차 대전 말기부터 나온 [[기관단총]] 같은 새로운 총기 개념도 생겨났다.[* 간혹 1차 대전 때는 무기가 기관총과 소총만 있었고 전장에선 닥치고 돌격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1차 대전 말기에는 기관단총은 [[참호전]]에서 돌격용으로 매우 유용하게 쓰였다. 대표적인 것이 독일의 베르크만 [[MP18]].] 따라서 신형의 반자동 화기에 대해 절대적인 연사력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기에 2차대전 이후 새로운 화기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보병의 제식화기로는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을 제외하면 사장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