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봉건제 (문단 편집) == 평가 == 서구에서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된 중세까기 풍조로 인해서, 수백년 간 '''봉건제가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나쁜 것''' 정도로 평가되었다. 사실 이 '봉건제에 대한 평가' 라는 것 자체가 상당히 애매하다. 사실 위의 유사 봉건제도 문단이나 동아시아의 봉건제도 항목에서도 나오지만, 여러 문화권의 지방분권적 경향을 죄다 봉건제도라고 퉁쳐 말하는 일도 흔하기 때문이다. 서양의 봉건제로 한정해서 '평가'를 내리려해도, 국가는 커녕 지방마다도 다른 것이 봉건제였다. '제도가 아닌 사회적 상황'이라는 표현은 괜한 것이 아니다. 특히 영국의 경우 중앙집권적 봉건제라는 해괴한 체제가 성립되었기 때문에 봉건제가 무조건 지방분권적이라는 관점도 틀렸다. 특히 [[근대]]의 [[프랑스 혁명]] 때 혁명 정부는 '봉건주의의 철폐'를 선언했으나, [[루이 16세]] 시절에는 이미 중세에 성행한 봉건주의 계약 따위는 있지도 않았고, 장원은 해체된지 오래였으며 농노들은 이미 다 법적으로 자유민이 된지 오래였다. 작위를 가졌다고 영지를 수여받지도 않았고[* 다만, 왕실 구성원의 경우 진짜로 영지를 일부 수여받기도 했다. 그냥 국유지를 하사하는 걸 영지라는 이름으로 즌 것이다. ], 땅이란 계약서에 서명해서 돈으로 사고파는 것이었다. 기사는 없었고, 평민들도 총병과 보병으로서 군복무를 했다. 그런 상황에서 "뭐가 봉건제냐고? 농민들과 평민들을 괴롭히는게 바로 봉건제야."라는 순환논법으로 별 의미도 없이 봉건제 철폐를 선언한 것. 다만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 시대의 귀족들은 사문화된 봉건적 특권을 내세우며 농민들을 수탈했으며 말이 좋아 자유민이지 실제로 어느 누구의 영향없이 땅을 가진 농민은 극소수였으며 그나마 자영농도 자기 땅인데도 봉건적 관습 때문에 귀족들에게 꼬박꼬박 지대를 납부해야 했다. 그리고 혁명시기에는 농민들 사이에서는 쫓겨난 귀족들이 자신들을 학살할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혔고 이 외에 높은 빵값, 징세청부업자의 농간 등까지 합쳐 모두 봉건제 탓으로 돌려서 봉건제 자체는 아니지만 봉건제의 잔재때문에 농민들이 고생한건 맞고 혁명정부 입장에서도 민심을 가라앉히기 위해 말뿐이나마 봉건제를 폐지한다는 선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근대 유럽의 지식인들은 중세 유럽의 모든 것을 나쁘게 평가하려 들었지만[* 기존 체제를 무너뜨리던 혁명의 시대였던 만큼 봉건제를 까내릴 수 밖에 없기도 했다.], 막상 현대에 와서는 중세 봉건제가 차라리 더 나은 부분도 있었다는 점이 재조명되기도 한다. 의외로 중세 농노의 삶이 19세기 [[영국]]등 [[산업혁명]]기 유럽의 도시 노동 빈민보다 오히려 더 적은 노동시간, 더 많은 휴식, 더 많은 사회적 보호 장치를 누렸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하는 등 중세의 여러 단면들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게 되었다. 노동자가 쓸모가 없어지면 자르고 새로 고용하면 됐던 산업혁명 시기와는 달리, 중세의 농노는 외부에서 충원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악독하게 혹사 시킬 수도 없었다. 오히려 빈 땅도 있고 행정력도 약해 농노가 도망칠 것을 우려해야 할 수준이다. 거기다가 "행정력이 약하다"라는건 다른 의미도 가진다. 국가의 개입을 걱정할 필요 없이 영주만 치우면 그만이기에 농노들이 폭동을 일으켜 뻘짓하는 영주를 쫒아내버리는 사례도 꽤나 흔했다. 이를테면 독일 지역에는 디트마르셴(Dithmarschen)이나 프리지아의 프리지아 자유국(Fryske frijheid)와 같은 ~~[[농민 데니스|아나코 생디칼리슴 코뮌]]~~ '''자유농민 공화정'''[* 원어인 Bauernrepublik는 [[국가]]라는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농민들이 어떠한 지배자 없이 스스로 운영한다는 뜻으로 쓰인다.]이 들어서기도 했다. 후일 근대 공화정으로 이어지는 [[자유도시]]들도 중세 봉건제가 절정에 달한 시대에 생겨나고 발전했다. 도시법, 상법 등도 봉건제 시대가 남긴 유산이다. 당시 유럽의 산업 구조와 생산력, 전반적인 기술력으로는 이 이상의 체제를 만들기 쉽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아메리카를 식민지화를 하기 전의 여러 '봉건제의 사회 구조'와 동시대 '중앙 집권적 관료 기구를 갖춘 군주제 국가'를 비교해볼 때, 봉건제는 내부적으로 광범위한 부조리, 잦은 전쟁과 약탈, 폐쇄적인 [[신분제]] 등의 특징을 갖추고 있었기에, 과연 봉건제가 그 당시에 있어서 최선이었냐라는 의견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저 부분도 중앙 집권 국가들도 보였던 모습인 만큼 저걸 도식적인 이분법으로 봉건제만의 문제였다고 할순 없다. [[경제학]]에서 끊임없는 논쟁을 야기하는 "시장이냐, 국가냐"의 논쟁처럼, 이는 정치의 문제로 바라보는게 바람직하다 보여진다. [[마르크 블로크]]는 주저 《봉건사회》에서 [[저항권]]의 주요한 기원이 서양 봉건제도에 있음을 갈파한 바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