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봉산군 (문단 편집) == 역사 == [[위만조선]]기에 복속되었던 소국 진번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기원전 108년 한 제국이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후 이 곳에 [[진번군]]을 설치했으나 기원전 82년 폐지된 후 낙랑군의 부속기관인 남부도위가 설치되었으며 서기 204년 [[대방군]]이 설치되면서 군치가 이곳에 위치했던 걸로 보인다. 1911~12년 조사 당시 이곳의 당시 문정면 태봉리에서 대방태수 장무이(張撫夷)의 묘가 확인되었고 따라서 4km 남쪽 지탑리에 위치한 '당토성'이 대방군치의 읍성이었던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삼국시대]] 때 [[고구려]]가 차지하고 휴암군(鵂嵒郡)을 설치했다. [[신라]]에 복속한 후 신라 [[경덕왕]] 때 서암군(栖嵒郡)으로 고쳤다. 일단 [[삼국사기]] 지리지의 기록상으로는 [[신라]] [[9주 5소경]] 중 [[한주]]에 속했는데, 신라 후기에 한주와 구분되는 특수 행정구역 [[패강진]]을 신라 서북면에 설치했다는 설을 긍정한다면 이 곳도 위치상 패강진 관할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때는 봉주(鳳州)였다. 이후 고려시대의 ~주 지명을 조선시대에 고치면서 봉산군이 되었다. [[8.15 광복]] 이전부터 존재했던 [[군(행정구역)/대한민국|군]]이다. 1945년 8.15 광복 이후 소련군정 치하에서 1947년 군청 소재지인 사리원읍이 [[사리원시]]로 승격 분리되었다. [[대한민국]]의 [[이북 5도]] 체계에 의하면 봉산군청 소재지는 여전히 사리원이다. 통일 후 남한식으로 개편된다면 역사성이나 행정구역 특성상 [[사리원시]]와 [[도농통합]]할 가능성도 높다. [[북한]] [[행정구역]]상으로는 [[은파군]]의 분리로 사리원시를 삼면으로 둘러싸는 것으로 되어 있으며, 현 봉산군은 광복 당시의 토성면·구연면·산수면·동선면·영천면·만천면·사인면·문정면(일부) 일대에 해당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