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봉한학설 (문단 편집) == 발단 == 처음 주장한 것은 [[북한]]의 김봉한 박사로, 북한의 논문답게(...) 실험 방법에 대해 ~~[[생체실험]]~~[[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로 일관한 논문을 국제사회에 발표함으로서 논란이 시작되었다.[* 덕분에 진위 논란이 더 가열된 측면이 있다. 실험 방법을 정확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불확실한 실험을 해야 했던 것. 논문에 게재된 사진을 보면 진짜 같긴 한데 꽤 오랫동안 아무도 재현 실험에 성공하지 못했다. 당시 봉한관을 염색하기 위해 사용한 것은 의외로 구하기 쉬운 메틸렌블루로 추정. 실제로 이후 일본과 한국에서 이를 사용해 염색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순환계통(혈관+림프관)과 신경조직 외의 제3의 미세관이 전신(앞서 말한 혈관과 림프관의 내강을 포함해서)에 있다는 주장은 상당한 센세이션이었고, [[서양]] 과학계를 엿먹였다(...)는 것에 고무된 북한은 대대적으로 김봉한 박사의 연구를 지원하게 되었다. 그러나 김봉한 박사의 연구가 진행되며 봉한학설은 점점 더 기존 과학과 충돌하게 되었고, 때마침 정치적인 숙청이 이루어지면서 줄을 잘못 선(...) 김봉한 박사도 숙청[* 이때쯤 '사실 김봉한 박사는 살아서 한국에서 복귀한다'는 대체역사물이 발표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봉한관 연구가 숙청당하는 죄인 등을 이용한 [[마루타|인간생체실험]](...)을 통해 이루어졌고, 북한이 이것이 세계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연구 자체를 덮고 연구진을 숙청했다는 견해도 있다.]된 것으로 추정된다. 김봉한은 월북 혹은 납북자 출신이었고, 남한에 있을 때 [[한국민주당]]에 입당한 적 있으며, 뒤를 봐주던 사람이 [[박금철]]이었다. 뭐라도 책잡히면 곧바로 숙청당할 가능성이 큰 처지였던 것. 이렇게 김봉한이 실종된 후 봉한학설은 절반쯤 묻힌 상태로 몇십 년간 잠자게 된다. 그러다 20세기 말, [[일본]]에서 이 논문을 발견하고 실험한 결과 정말 '이상한 관이 있다'라는 것을 발견하고 발표하여, 봉한학설을 연구하던 그룹에는 난리가 났다. 한의학의 [[과학]]적 근거를 미친 듯이 찾던 20세기 말이었으므로 당연한 듯하지만 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