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부(행정구역) (문단 편집) === 조선 이전 === [[발해]]에서 전국을 [[5경 15부 62주]]로 설정했다. 가령 수도가 있는 [[상경용천부]]가 그렇다. 한반도에서는 [[통일신라]]에서는 도시 규모를 세세하게 따지지 않고[* 각 주 중심지와 [[소경]]이 있었지만 이들은 대도시라서 분류했다기보단 구 고구려와 구 백제를 포용해 안고 가야 하는 통일신라가 시행한 지역안배의 성격이 크다. 구 삼국 영역마다 주는 3군데씩 소경은 2군데씩(구 신라 영역은 수도 경주 포함) 배정했기 때문] 고을들을 군과 현으로 편제했다. 신라는 수도 [[서라벌]]을 중심으로 중앙정부의 일원적 행정력이 강하고 지방세력을 발달하지 못하게 관리했기 때문에 행정구역도 주(한 지방 권역)-군(큰 동네)-현(작은 동네)으로 간결하게 구성했었다. 그에 비해 고려는 건국부터 호족 연합체로 시작했고 초기 고려는 다양한 지방세력이 다양한 급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일단 후삼국을 재통일해 신라의 행정구역 체계를 계승했지만 좀 더 다양한 행정구역 구분을 만들고자 했다. [[고려]]에서 부는 고려 초기 [[왕건]]이 큰 도시를 중심으로 행정구역 단위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995년 수도 [[개경]]을 개성부라 하였고, 여기에 개성부 지사를 두었으며 1308년 개성 성내만 관할하는 부윤과 성외를 관할하는 개성 현령으로 나누는 등 개편이 있었다. 전국 주요 지방도시에는 부보다 더 위 단위로 대도호부, [[도호부#고려]]가 설치되었다. 한편 고려에는 최상위 행정구역으로 [[경(행정구역)#고려|경]]이 존재했는데, 수도인 개경을 비롯, [[서경(고려)|서경]](평양), [[동경(고려)|동경]](경주)의 3경 체제를 유지하다가 이후 [[남경(고려)|남경]](한양)이 추가되어 4경이 되었다. 아래에 나오지만 이 4경이 고려 말에 부로 전환되어 조선시대의 부로 이어진다. 흔히 고려 전기에 3경이 개경, 서경, 동경이었다가 고려 후기에 개경, 서경, 남경으로 바뀌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원래 3경에다가 남경이 추가되어 4경이 된 것이다. 동경의 경우, 11세기초와 13세기초에 경주로 바뀐 적이 두 번 있지만 그 기간은 모두 합쳐서 30여 년에 불과했고 다시 동경으로 환원되어 1308년까지 유지되었다. 4경 중 가장 나중에 설치된 남경(한양) 역시 한때 한양으로 강등되었다가 다시 남경으로 환원되어 1308년까지 유지되었다. 하지만 [[원 간섭기]]인 1308년 수도 개경을 제외한 3경이 폐지되고 일괄적으로 부로 바뀌었다. 그리하여 동경은 계림부, 남경은 한양부, 서경은 평양부로 개칭되었다. 이것이 조선시대에 그대로 계승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