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부(행정구역) (문단 편집) ==== 유수 ==== 종2품 유수(留守)는 한성부처럼 [[팔도]] [[관찰사]]의 관할을 받지 않는 명목상 경관직, 즉 중앙관으로, 유수가 파견된 부는 한성부처럼 도 관할 밖의 중앙 직할이었다. 조선에서는 정식 명칭은 아니었지만 유수 파견 부를 오늘날 편의상 다른 역사 용어에서 따와서 유수부라고도 한다. 조선에서의 품계는 종2품으로 다른 관찰사나 지방 부윤과 같았지만 실제로는 대개 차기 [[대신#大臣]] 후보군이었던 관찰사와 달리 대개 이미 대신을 역임한 관료가 보임되었고, 형식적으로 유수 2인을 두어 1인은 관찰사가 겸임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실제 행정 면에서는 관찰사 관할에서 벗어나 있었다. 때문에 조선 전기 전국 광역행정구역의 지방관을 일컬을 때는 '각 도 관찰사와 개성 유수'라 하였다. 이는 원래 유수는 [[당나라]]의 [[뤄양시|동도(낙양)]], [[송나라]]의 [[카이펑시|동경(개봉-이 때는 응천부 도읍 시절)]]처럼 [[수도(도시)#복수의 수도|제2수도]]를 관장하는 관직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유수가 설치된 것은 [[개성시/역사|개성부]]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유수가 특별히 군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고 단순히 옛 수도로서 건국 초 사실상 부수도의 역할을 수행했던 위상을 고려한 것이었다. 원래 조선 건국 초에 수도 기능이 남아있어 한성과 왕복하며 사용하던 개성을 유후사(留後司)라 하고 유후와 부유후를 두던 것을, 세종 대에 앞의 당나라와 송나라 사례를 들어 개성의 유후사를 부로, 유후를 유수로 고친 것이 시초였다.[* 개성에 대한 조선왕조의 특별대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경국대전]]에 명시되었다. 개성부 유수는 형식적으로 2인으로 1인은 경기 관찰사가 겸했으나, 경기 [[감영]]이 한성부 근처 [[돈의문]] 밖에 있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1인이었다. 사실상 경기 관찰사가 개성 유수에 묻어서 경관직 대우를 받는 모양새로, 덕분에 감영이 한성부 근처에 있으면서도 외관직이 되는 사태를 피할 수 있었다. 이후 설치된 모든 유수 파견 부도 마찬가지로 관찰사가 형식적으로 유수를 겸했다. 다른 행정구역의 경우 아래에서 보듯이 관찰사 겸직인 지역에서는 서윤이 실무를 관장했는데 개성부는 경기 관찰사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 놓고도 원래 유수를 둔 것만 봐도 취급이 남다르다. 또한 개성 유수는 [[육조]]의 참판, [[판서]]와 [[팔도]]의 [[관찰사]]를 역임한 이후에 가는 자리로 위상 자체가 관찰사보다 확실히 높았다. [[정묘호란]] 전까지는 개성부가 유일한 유수부였으나, 양란 이후 조선 후기에 수도 방어 군사 요충지로 비상시 수도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시설이 요구되면서 [[강화도|강화부]](1627년), [[광주시/역사|광주부]](1683년 설치, 1690년 폐지, 1795년 재설치), [[수원시/역사|수원부]](1793년), [[춘천시/역사|춘천부]](1888년)에 차례로 유수가 파견되었다. 원래 강화도호부, 광주목은 [[임진왜란]] 전후로 부윤급 부로 승격되었었는데, 강화부는 정묘호란 때 인조가 강화로 피신했다가 환도한 뒤 1627년 이후 [[강화행궁]]이 조성되면서, 광주부는 [[병자호란]] 때 [[인조]]가 피신한 [[남한산성]] 및 [[남한산성 행궁]]이 위치한 곳으로 [[수어청]]을 기반으로 [[숙종(조선)|숙종]] 때 잠깐 유수가 파견되었다가 [[정조(조선)|정조]] 때 최종적으로 승격되면서 유수부가 되었다. 수원도호부는 [[수원화성]] 및 [[화성행궁]] 축조로, 춘천도호부는 [[임오군란]]으로 인해 수원부, 춘천부로 승격되어 유수가 파견되었다. 조선 후기에 지정된 유수부들은 각종 이변으로 수도 기능이 마비되었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 설치되었기 때문에 주요 군사 시설과 함께 수도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각종 자료 보존 시설, [[행궁]]과 같은 행정 시설을 갖추었다. 따라서 비상 시의 예비 수도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유수부는 그 위상으로 치면 상위 행정구역을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현대 한국의 [[광역시]]와 비슷하지만, 지방 거점 도시라는 점에서는 아래의 부윤급 부들이 현 광역시에 더 부합한다. 또 [[사령부]] 소재지라는 측면도 있다. 따라서 현대와의 직접 비교는 다소 어려우나 일단 수도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계획 도시라는 점, 지역 규모와는 무관하게 선정되었다는 점에서 [[특별자치시]]와 그나마 가깝다고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