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부관연락선 (문단 편집) == 운항 선박[* P.35『부관연락선과 부산』, 논형, 2007.] == 이 외에도 부관 항로에 일시적으로 투입되었던 선박은 많으나 임시선이 아닌 정기선으로 장기취항한 선박만 목록에 넣었다. 또 운항 기간은 부관 항로만의 운항기간으로 부관항로에서 퇴역한 이후에 일본군에 징발되거나, 다른 항로에 투입되거나 한 선박도 많다. 예를 들면 게이후쿠마루(경복환)는 [[토야마루 침몰사고]] 이후 세이칸 항로의 연락선으로 투입되었고, 현역에서 물러난 뒤에는 하코다테에서 선상 호텔로 사용되다가 해체되었다. || 선명 || 운항기간 || 총 톤수 || 길이(m) || 정원(명) || 적재량(t) || 속도(Knot) || 비고 || ||이키마루(壹岐丸)|| 1905.9 ~ 1931.5 || 1,680 || 79.4 || 337 || 300 || 15 ||최초 취항 선박 || ||쓰시마마루(對馬丸)|| 1905.11 ~ 1925.12 || 1,679 || 82.5 || 337 || 300 || 15 ||1925년 12월 17일 좌초 사고로 침몰(사상자는 없음) || ||고마마루(高麗丸)|| 1913.1 ~ 1932.10 || 3,029 || 102 || 603 || 930 || 16 || || ||시라기마루(新羅丸)|| 1913.4 ~ 1945.5 || 3,024 || 98.9 || 603 || 930 || 16 ||1945년 5월 25일 관문해협상에서 기뢰에 피침, 침몰. || ||게이후쿠마루(景福丸) || 1922.5 ~ 1945.6 || 3,620 || 114.3 || 949 || 430 || 20 || || ||도쿠주마루(徳壽丸) || 1922.11 ~ 1945.6 || 3,620 || 114.3 || 945 || 430 || 20 || || ||쇼케이마루(昌慶丸) || 1923.3 ~ 1945.6 || 3,620 || 114.3 || 945 || 430 || 20 ||창경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나 [[창경호 침몰 사고]]와는 무관하다. || ||콘고마루(金剛丸)|| 1931.11 ~ 1945.5 || 7,082 || 134.1 || 1,746 || 3,170 || 23.2 ||1945년 5월 27일 [[하카타]] 항에서 기뢰에 피침, 침몰(사망자 1명, 부상자 4명) || ||코안마루(興安丸) || 1937.1 ~ 1945.6 || 7,082 || 134.1 || 1,746 || 3,170 || 23.2 ||1945년 4월 1일 기뢰에 피침, 항행불능 || ||이키마루(壹岐丸)|| 1940.11 ~ 1945.6 || 3,519 || 103.8 || - || 4,617 || 17.2 ||화물선. 앞의 이키마루와는 다른 배. 1945년 4월 5일 기뢰에 피침, 항행불능 || ||쓰시마마루(對馬丸)|| 1941.4 ~ 1945.6 || 3,516 || 103.8 || - || 4,617 || 17.2 ||화물선. 앞의 쓰시마마루와는 다른 배. 1945년 8월 13일 청진항에서 소련 전투기/폭격기의 공습으로 격침, 침몰. || ||텐잔마루(天山丸) || 1942.9 ~ 1945.6 || 7,907 || 143.4 || 2,048 || 2,223 || 23.3 ||1945년 7월 28일 미군기의 로켓 공격으로 항행불능. 침수되기 시작하여 침몰. 이후 건져져 창경호로 개조 되었다가 1953년 1월 9일 [[창경호 침몰 사고|다시 침몰]]. 창경호의 기원은 확실하지 않지만, 당시 연락선으로 쓰일 만한 배를 개조할 능력이 없었으니 이 배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6.25 전쟁 중인데다 일본 배를 그냥 쓴다는 것이 쪽팔렸던지 당시에는 이 배의 기원에 대해 제대로 된 보도가 없었다. 하지만 물자가 부족하던 시절이라, 엔진은 건져져 한일호라는 배에 쓰였다가 1967년 해군 충남함과 충돌해 침몰 ~~리얼 재수 옴붙은 배~~. || ||콘론마루(崑崙丸) || 1943.4 ~ 1943.10 || 7,908 || 143.4 || 2,050 || 2,223 || 23.4 ||1943년 10월 5일 미 해군 [[가토급 잠수함]] 28번함 SS-238 와후의 어뢰 공격으로 격침, 승무원과 승객 중 중의원 2명을 포함한 585명이 사망했다. 와후는 이후 일본 상선 2척을 더 격침시킨 뒤 [[홋카이도]]의 소야 해협을 통해 태평양으로 빠져나가려 했으나 일본군의 감시망에 걸려 폭뢰공격으로 격침당했다. || 배 이름을 보면 묘한 특징이 있는데 아직 정식으로 일제의 지배가 시작된 것이 아닌 1900년대에는 [[이키]], [[쓰시마 섬]] 같은 일본과 한반도 사이의 섬들이 붙는다. 그러다가 일제의 한반도 식민통치가 본격화된 1910~1930년 사이에 취항한 선박에는 한반도 내의 왕조 이름([[신라]], [[고려]]), 궁궐 이름([[경복궁]], [[덕수궁]], [[창경궁]]), 산 이름([[금강산]])으로 붙여지고, [[만주사변]]이후 [[중일전쟁]]기에 접어드는 1930년대 이후에는 만주, 중국의 지명인 싱안(다싱안링산맥), 톈산([[톈산 산맥]]), 쿤룬([[쿤룬 산맥]])으로 옮겨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일본 → 대한제국 → 만주 → 중국으로 점차 확장되는 일제의 침략 의도가 배 이름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