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부관참시 (문단 편집) == 부관참시를 당한 인물들 == '''[[도굴]] 사례는 정치적 이유가 아니므로 기재하지 말 것.''' * 권전 * [[가이우스 그라쿠스]] - 자결한 그의 시신은 머리가 베어져 효수된다. * ~~[[기자(상)|기자]]~~ - 기자가 조선에 와 [[기자조선]]을 세웠다는 기자 동래설에 따라 평양 기림리(현재의 평양 중구역) 일대에 기자릉(箕子陵)이 조성되었고 이것이 [[김동인]]의 《[[배따라기(소설)|배따라기]]》에도 묘사되어 있으나, 1959년 '''"봉건 지배계급이 벌인 사대주의의 산물이며 조선 민족에 대한 모욕"'''이라는 [[김일성]]의 지시로 묘가 파해쳐지고 일대에는 공원이 조성되었다. 기자의 실존성은 현대 한국사학계에서 부정되고 있지만, 실존했던 인물이었다면 완벽한 부관참시. * [[김만금]][* [[북한]]의 농업상이었으며 일찍이 [[일본]]으로 [[유학]]가서 [[메이지대학]]을 졸업하고 [[소련]]에도 유학을 다녀왔다. 1945년 로동당 평안남도 안주읍 위원장을 시작으로 북한 정권에 발을 들여놓았으며 1953년 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직부장으로 활동하였다. [[한국전쟁]] 때 [[평양]]이 한미 연합군에 의해 점령되기 전에 만경대에 있던 [[김일성]] 선친들의 유해들을 옮기기 위해 직접 자원했다. 그는 김일성의 허가를 받아 해군 1개 대대를 이끌고 안전한 곳으로 옮겼으며 휴전 후 다시 만수대로 옮겼다. 1959년 최고인민위원회 제2․3․5기 대의원, 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농업위원회 위원장, 부수상, 로동당 중앙위원회 농업부장, 중앙인민위원회 위원 등 요직을 역임했고 1973년 9월 정무원 부총리 및 농업위원회 위원장직에서 해임되었다가 복귀했다. 1984년 사망하고 평양 대성산 혁명열사릉에 안장되었다.] - 사망한 뒤 1990년대에 '용성 사건[*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 특수기지에서 훈련을 받은 최고사령부 타격대 요원들이 평양 용성에 거주하며 때를 기다리다 잡혔다는 사건이다. 대표적인 날조극으로 이 때 숙청된 대상도 대부분 고령의 당 간부들이었는데 이미 죽었거나 나이가 들어 집에서 쉬고 있는 노인들을 끌어내어 공개처형했다. 이 때 비료를 개인 목적으로 빼돌렸다는 혐의로 처형된 중앙당 비서 [[서관히]] 이외에 2만 명이 대량 숙청된 [[심화조 사건]]도 있다.]의 주범이라는 이유로 [[김정일]]의 명령에 의해 무덤이 파헤쳐졌다. 이때 '''김만금의 유골을 끌어내서 공개재판을 해서 논죄하고 유골에 [[기관총]]으로 사격을 가해 가루를 내버렸다.''' 그리고 김만금의 가족들은 [[정치범수용소]]로 보내졌는데 억울하다고 한탄하던 가족들은 즉결처형되었다. 김만금은 몇년 후인 2000년도가 넘어서야 서관히와 함께 [[복권]]되었고 가족들은 풀려났다. * [[김부식]] - 해당 문서로. * [[김제남]] - 1613년에 사사당한 후 다시 부관참시되었다. * [[김종직]] - [[무오사화]] 문서로. * [[김처선]]의 부모 - 김처선의 충언을 받아들이지 못한 [[연산군]]은 김처선을 죽이고 그 가문도 멸족시킨 걸로 모자라 김처선의 부모의 무덤까지 없애버렸다. * [[김헌창]] * 남효온 *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 총살형 당시 집행관들의 증오심으로 인해 사살 후 몇 시간 뒤 또 다시 총격을 가했다고 한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 -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쇼군]]에 취임하자마자 곧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무덤 자체를 폭파시켜 없앴다. 그리고 그걸로도 모자라 [[도요토미 히데요리|아들]]과 [[요도도노|애첩]] 및 손자 도요토미 쿠니마츠는 물론 [[고니시 유키나가|충성스런]] [[이시다 미츠나리|가신]]들도 보내주었다. * [[러시아]] [[흑돌고래 교도소]] 수감자들 - [[흑돌고래 교도소]] 수감자들이 사망하면 교도소 내에 공동묘지가 있어서 죄수가 사망하면 이곳에 묻히게 된다. 즉 흑돌고래 교도소에서 죽어서도 영원히 복역하게 된다. 왜냐면 이미 사회에서는 해당 범죄자와의 모든 인연을 끊어버리는지라 사망해도 시신을 인수해 갈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가사 상태로 만들어 사망을 위장해서 외부 일당들이 유족을 가장하고 해당 범죄자를 '시신 인수'라는 명목하에 가져가서 탈옥이 성공하는 것을 막는 효과도 있다. * [[루이 15세]]의 자녀들 * [[린썬]] -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들에 의해 묘지가 폭파당했고 시체는 소각되었다. 다행히 마오쩌둥 사후 복권되어 묘지를 다시 만들었다. * [[만력제]] - 명 역사상 최악의 암군으로, 명 13릉 중 유일하게 지하 무덤을 발굴하는 도중 [[문화대혁명]]이 일어나서 홍위병들에 의해 시체가 불태워졌다. 그리고 비가 내려 잿가루도 어디론가 사라졌으니 나라를 말아먹은 것에 대한 천벌을 받았다는 말이 나올 만 하다. 다만 평가는 평가고 이 때문에 만력제의 체격이나 건강 상태 등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었던 증거가 영원히 사라졌다. * 바르톨로메노 페레티 - [[프리드리히 1세(신성 로마 제국)|바르바로사]]에게 부관참시 당했다. * [[박남기]] - [[박근혜 정부]] 시기 탈북한 고위급 탈북자가 [[2021년]] [[월간조선]]에 전한 바에 따르면 박남기는 총살형된 후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북한 최고위층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남포시]]의 제철소 용광로에 시신이 던져졌다고 한다. [[https://www.google.com/amp/s/www.chosun.com/politics/north_korea/2021/07/18/G4GUVJMP7NC7ZBH4TGNMGHAV2U/%3foutputType=amp|#]] * [[박춘금]] * [[블라디미르 1세]] - [[몽골 제국]]의 침공으로 무덤이 파괴되었다. 블라디미르 1세가 동슬라브 역사상 최고의 명군들 중 1명으로 평가받는지라 현재까지도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이 몽골 제국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원인이 되었다. * 사사정 * [[상앙]] - 자신이 개발한 [[거열형]]으로 부관참시를 당했다. * [[송병준]] - 후손이 [[선산]]을 매각할 때 묘를 이전하지 않아서, 선산의 소재지인 '''[[용인시]]에서 무연고 분묘로 간주하고 행정처분해버렸다.'''[* 무연고 분묘와 무연고 사망자, 신원미상 변사자의 경우 보통 관할 지자체에서 토지의 소유주나 경찰, 검찰 등 관련자로부터 이전받아 일괄적으로 화장(또는 무연고 묘지에 매장)처리 하며, 일정기간을 보존한 후 다시 일괄적으로 산골처리 한다.] * 심회 - [[심온]]의 아들. [[폐비 윤씨]] 사사에 반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연산군]]에 의해 부관참시되었다. * 아미나 - [[무함마드]]의 어머니.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아미나가 지옥에 있다는 전승록 때문에 그녀의 무덤을 파괴해버렸다. 이 때문에 온건한 성향의 무슬림들이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 [[아이신기오로 도르곤]] * 아흐마드 알리파이 - [[시아파]] 성인.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가 그의 무덤을 불도저로 밀어 없애버렸다. * [[악비]] - 역시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들에게 무덤이 파헤쳐져 유골이 불에 타 가루가 되었다. * [[악바르 대제]] - [[아우랑제브]] 시기 군사원정을 이유로 계속된 수탈에 폭발한 힌두교도들이 폭동을 일으켜 무덤을 약탈하고 유해를 불태워버렸다. * [[앙리 4세]] - 프랑스의 [[명군]]으로 왕실 묘지 역할을 하던 [[생 드니 대성당]]에 안장되어 있었으나 [[프랑스 혁명]] 당시 분노한 군중들에 의해 역대 왕실 인사들의 묘역이 파괴될 때 시신이 함께 능욕을 당했고 시신의 머리는 잘려나가 민간에 넘겨졌으며 이후 200여년 동안 떠돌던 머리는 '''2010년'''에야 신원이 밝혀져 생 드니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 [[양소(수나라)|양소]] * [[양후청]] - 명색이 [[서안 사건]]으로 공산당의 목숨을 이어준 사람인데도 가차없이 홍위병들에게 부관참시 당했다. * '''[[올리버 크롬웰]] - 이 분야의 끝판왕.''' 부관참시 후 머리만 [[프랑스]] 전국 유람을 다니면서 [[효수]]와 [[조리돌림]]을 당했다. * [[왕징웨이]] - 사망 전부터 이미 매국노로 찍혀있었기 때문에 무덤을 콘크리트로 만들어달라 유언했지만, 종전 후 [[장제스]]가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켜버렸다. * 왕차이위 - 장제스의 어머니. [[문화대혁명]] 중에 당연히 [[홍위병]]들이 개떼처럼 몰려와서 무덤을 박살내고 시신을 소각했다. * [[요나]] - 2014년 7월에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에 의해 무덤이 폭파당했다.[[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date=20140725&rankingSectionId=104&rankingType=popular_day&rankingSeq=1&oid=014&aid=0003212745|기사]] * [[윌리엄 1세]] - 그의 무덤은 16세기 종교전쟁 때와 18세기 [[프랑스 혁명]] 때 약탈되어 지금은 관 속에 넓적다리뼈 하나만 남아있다. * [[유관순]] - 이장을 앞두고 아무 통보도 없이 무덤이 파헤쳐지면서 그녀의 유해가 분실되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조선인들이 그녀의 유해를 받들어 독립운동의 구심점으로 삼을 가능성을 두려워한 일제에 의해 무덤이 훼손되고 유골이 파괴되었다는 설이 있다. * [[유성원]] - [[사육신]]의 일원이지만 다른 이들과 달리 체포되기 전에 먼저 자살했는데, 다른 사육신들이 사형당할 때 그의 시신도 함께 부관참시를 당했다. * [[유영경]] * [[유자광]] - 야사에는 자기가 세상을 떠난 뒤 부관참시당할 것을 예지해 가짜 무덤을 만들어 피했다고 전해지나 실제로는 중종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 [[유정(명나라)|유정]] - [[중일전쟁]] 때 [[일본군]]에 의해 사당과 묘지가 폭파되었다. * [[응오딘지엠]] - 베트남이 통일되자 이미 사망한 남베트남의 장관, 군인 등과 함께 무덤이 파헤쳤고 시체는 소각당함. * [[이두황]] - [[조선군 훈련대|훈련대]] 제1대대장으로서 [[을미사변]]에 가담하고 친일내각 하에서 전라북도 관찰사를 역임하며 [[남한 대토벌 작전]]에도 관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친일의 길을 걸은 매국노며 이후 1951년 [[전라북도경찰청|전북경찰국]] 서남지구 [[의무경찰|전투경찰]]대 제2연대장으로 빨치산 토벌차 활악중이었던 [[차일혁]] 경무관이 장지에 출동해 무덤을 파헤치고 유골항아리를 깨부숴버렸다.[* 일본식으로 장례를 치뤄서 항아리에 납골해놓은 상태였다고 한다.] * [[이세적]](이적) * [[이오시프 스탈린]] - 본래 [[블라디미르 레닌]] 옆에 방부처리되어 안치되었으나, 생전에 자신과 내내 다퉜던 [[니키타 흐루쇼프]]가 집권하면서 그의 명령에 의해 강제로 [[화장(장례)|화장]]되었다. * '''[[이완용]]''' - 같은 [[친일반민족행위자|친일파]]들 사이에서도 외면당했을 정도의 악질 [[매국노]]. 관뚜껑을 덮은 명정은 그의 일가라고 오해받던[* [[본관]]이 같은 [[우봉 이씨]]지만, 이완용과는 촌수가 멀다.] 사학자 [[이병도]][* 손자가 [[이장무]] 전 [[서울대학교]] [[총장]], 이건무 전 문화재청장이다.]가 태웠고, 이완용의 시신은 후손들이 [[화장(장례)|화장]]했다는 [[야사(역사)|야사]]가 있는데, 사실이라면 이 문서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의 무덤은 [[테러]]도 많이 당했다. * [[임사홍(조선)|임사홍]] * [[임숭재]] - 반정군에 의해 무덤파서 목을 베어 도성거리에 효수해버렸다. * [[자로]] * [[장각]] - [[황보숭]]에게 당했다. * [[정여립]] * [[정여창(1450)|정여창]] * [[정인지]] * [[정창손]] * [[조조]] - 연암 박지원의 저서 [[열하일기]] "구외이문(口外異聞)"에서 나오는 얘기로 건륭제가 조조의 무덤을 발견해서 시신을 참하여 한소열의 영전에 올렸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여기에 속하겠지만 이는 당대에 떠돌던 야사일 것이다. [[조조 무덤]] 문서로. * [[조헌]] 등 [[금산 전투|제2차 금산성 전투]]에서 전사한 조선 의병 - 이들이 묻힌 칠백의총은 일제강점기 말이었던 1940년에 일본인들에 의해 철거되었다. 이후 1952년에 칠백의총이 복원되었다. * [[존 위클리프]] * [[좌종당]] -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에 의해 무덤이 파괴되고 유해도 부관참시되었다. * [[주전충]] * [[지미 새빌]] - 생전에 저지른 성범죄가 밝혀진 후 무덤이 철거되고 시신도 화장되어 유가족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곳에 뿌려졌다. * [[진패선]] * [[초평왕|초나라(楚) 평왕]] - 억울하게 참살당한 아버지와 형의 원한을 갚기 위해서 [[오자서]]가 무덤을 파헤쳤다. 그리고 채찍 수백대를 때려서 시체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개발살]]을 냈다. 어찌 보면 자업자득. [[굴묘편시]](掘墓鞭尸)라고 한다. 다만 당대에도 이것은 부당한 행위로 받아들여졌기에 이에 대한 주변의 분노로 오자서는 적을 많이 만들었고 결국 그가 오왕 부차에 의해 처형당할 때 외면받는 결과로 이어졌다. * [[카다르 야노시]] - [[너지 임레]] 처형에 관여한 것 때문에 그를 증오하는 헝가리인들이 적지 않으며, 그로 인해 그의 무덤이 파괴되고 유해마저 도난당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 [[캉유웨이]] -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들이 그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거리에 끌고 다녔고 두개골을 조반유리 전시회에 전시해놓았다. 나중에 산둥성 정부가 그의 유골을 찾으려 했으나 찾지 못했다. * [[쿵링이]] -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들에 의해 부관참시를 당했다. 공자의 후손이자 연성공이었던 쿵링이의 묘소가 털린 일은 그 아들인 쿵더청으로 하여금 공산당에 대한 극도의 반감을 자아내서 쿵더청은 국부천대 이후 단 한번도 본토를 방문하지 않았다.[* 공자의 후손이자 마지막 연성공이었다보니 중국 공산당에서도 본토에 남아있던 그의 가족들을 보내 만나게 해서 환심을 사려고 했지만 쿵더청은 만나긴 했지만 대만과 일본에서만 만났고 그나마도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 [[토마스 베켓]] - 본래 성인으로 캔터베리 성당에 모셔지던 교인이었으나, 헨리 8세가 교회랑 연을 끊으면서 겸사겸사 교회 재산도 털어갈 목적으로 '''360년 전'''에 죽은 그를 역모 혐의로 기소하고는, 30일 이내로 법정에 출두하란 명령을 내렸다. 당연히 그는 출석하지 않았고, 이후 헨리 8세는 궐석재판에서 그에게 유죄를 선고한 뒤, 캔터베리 성당에 보관 중이던 유해를 불태우고, 조문객들이 바친 헌금을 깡그리 털어갔다... * [[포르모소]] * 포송령 - [[요재지이]] 작가. 역시 홍위병들에게 무덤에서 꺼내어져 유골이 불에 탔다. * [[프랑수아 뒤발리에]] * [[한명회]] * [[한치형]] * [[해릉양왕]] - 본래 [[금나라]]의 왕이 묻히는 묘지에 묻혔으나, 생전에 저지른 악행이 워낙 어마어마해서 황제는커녕 왕 취급도 받아서 안 된다는 신하들의 간언 때문에[* 이 때문에 원나라에서 편찬한 금사에는 해를양왕도 아닌 새릉'''서인'''이라고 기록되었다.] 결국 중도 대흥부로부터 멀리 떨어진 모래밭에 다시 묻히고 새로운 무덤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게 되었다. * [[해서(명나라)|해서]] - 문화대혁명의 서막을 연 [[해서파관 사건]]의 주인공. 역시 홍위병들에게 시신이 훼손됐다. * --[[현덕왕후]]-- - 세조의 장남 덕종 꿈에서 나타나서 죽게 되자 화가 난 세조는 무덤파서 관을 꺼내 유해는 망치로 부수고 소각해서 강에 버렸다는 내용이 야사에 있다. 다만, 정사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 [[홍수전]] - [[태평천국의 난]]의 지도자. [[증국번]]과 [[이홍장]]이 이끄는 청나라 관군과 서양인 용병으로 구성된 상승군의 연합 공세로 멸망한 뒤 그의 무덤은 파헤쳐지고 시신의 목이 잘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