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부도 (문단 편집) === 상세 === 전통사회에서는 여성을 위한 교육기관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최초의 여학교는 1886년 [[미국인]]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이 설립한 [[이화학당]]이다.], 주로 가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비형식적인 교육에 의존하였다. 따라서 대부분의 여성에게는 지식교육은 제외되고 [[집안일|가사]]기술과 [[유교]]정신에 기초한 덕육이 강조되었다. “[[아들]]은 가르치되, [[딸]]은 가르치지 않는다(但男而不敎女).”라는 일반적인 인식이 [[조선시대]]까지의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인식에 따라 18세기의 [[실학]]파 학자인 [[성호 이익]](李瀷)도 “독서와 강의는 [[남자]]의 일이니, [[여자]]는 이를 힘쓰면 폐해가 많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학문보다는 집안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남편을 [[내조]]하며 자식을 돌보고 가사에 힘쓰는 것이 여성의 모든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였다. [[한글]]이 반포되고 글을 해득하는 여성이 늘어가자, 이러한 덕목과 규범을 널리 익히도록 하기 위하여 왕조에서도 [[중국]]의 여계(女誡), 여[[논어]](女論語), [[내훈]](內訓) 등을 우리말로 옮기거나 간추려서 발간, 보급하게 되었다. [[소혜왕후]](昭惠王后)[* [[인수대비]]]가 간행한 [[내훈]]의 서문에는 “대체로 사람은 나면서부터 천지의 영기(靈氣)를 받고 5가지 덕(五常之德)을 품고 있으며, 몸을 닦고 닦지 아니하는 곳에 [[난초]]와 [[쑥]][艾]의 구별이 있다. ……치란흥망(治亂興亡)은 그 지아비들의 밝고 어둠에만 매인 것이 아니라, 부인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에 있는 것이다. ……날마다 성인(聖人)에게 기약하여 밝은 거울이 되도록 조심하라.”고 다짐하고, 그 내용으로 언행(言行)·효친(孝親)·혼례(婚禮)·부부(夫婦)·모의(母儀)·돈목(敦睦)·염검(廉儉)의 7가지 도리를 무려 40여 종의 경전류에서 인용, 여성으로서의 생활규범을 설명하였다. 이러한 여성교훈서에서는 여성교육의 목표를 [[현모양처|현처양모]]에 두고 여유사행(女有四行), 즉 여자가 지녀야 될 4가지 행실에 어김이 없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소혜왕후의 ≪[[내훈]]≫은 이러한 여유사행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부덕(婦德)이란 재질이나 총명보다 맑고 조용하며 절개를 지키고, 행동을 바르게 처신하며 부끄러움을 알아 움직임과 멈춤에 법도가 있는 것이며, 부언(婦言)은 구변이 좋아서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말과 남이 싫어하는 말을 입밖에 내지 않음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는 것이라 하였다.|| ||부용(婦容)은 "얼굴 꾸밈보다 먼지와 때를 씻고 의복이나 치장을 청결히 하며 수시로 목욕을 하여 몸을 더럽히지 않는 것이며, 부공(婦功)은 재주보다 길쌈에 전념하며 쓸데없는 놀이를 즐기지 말고 주식(酒食)을 깨끗하게 만들어 손님 받듦을 잘하는 데 있다"라고 하였다.|| [[유교]]적인 도덕정신에서 출발한 소망스러운 여성상은 이러한 유교적 부덕의 고취에 있었다. 이에 [[송시열]](宋時烈)의 우암선생계녀서(尤庵先生戒女書), 이덕무(李德懋)의 사소절(士小節), [[안동 김씨]]의 훈계녀서 등을 통하여 조선시대의 여성교육에서 공통적으로 강조된 교육내용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 여성에게 정숙할 것과 정조를 생명보다 귀중하게 여길 줄 아는 정렬(貞烈)을 기대하였다. 심지어 이러한 정숙과 정렬을 국가의 원기(元氣)라고까지 생각하였기 때문에 여성들의 정조와 수절을 더욱 중히 여겼다. [[임진왜란]] 때 전국의 효자·충신·열녀의 포상에 있어서 효자 67명, 충신 11명, 열녀 356명이 집계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여성의 정조관을 얼마나 중요시했던가를 알 수 있다. * 며느리로서 효친하고, 아내로서 경순(敬順)하며, 시가 친척과 화목할 것을 들었다. 여성의 미덕으로 순종을 중요시하였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사회는 풍속과 교화의 근본을 여성의 유순함에 두고 이를 실행하도록 했을 뿐 아니라, 이에 따른 각종 법제적 규정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여성이라면 당연히 출가 이전부터 부모를 극진히 섬기고 형제와 우애하며, 출가하여서도 부모를 모시던 대로 시부모에게 효도하고, 아울러 남편에게 예와 경순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을 당연시하였다. * 조상의 [[제사]]를 존중하고 지극한 정성으로 모셔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는 가계 영속(永續)의 기본으로 삼아야 하는 하나의 신앙적 과정으로서, 최대의 성의와 외경(畏敬)으로 임해야 함을 여성의 임무로 보았다. * [[길쌈]]·[[바느질]]·[[누에]]치기 등의 가사기술은 여성이면 누구든지 익히고 갖추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린시절부터 이러한 기능을 어머니나 친척으로부터 배웠으며, 또한 여자가 가정의 경제를 관리하였기 때문에 근검절약의 생활태도는 여성에게 필수적인 구비조건이었다. * [[태교]]와 [[육아]]를 들 수 있다. 한 가문의 후계자를 생산하고 양육하는 가장 막중한 책임에 대하여 여성 교훈서에는 고사를 들어 태중양육(胎中養育)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태아와 유아에 대한 모친의 보육이 인간형성을 크게 좌우함을 일깨웠다. * 자라는 자녀들을 올바로 교육하느냐 못 하느냐에 가문의 흥망이 달려 있다고 보아, 여성은 곧 현모로서 몸과 마음가짐을 바로하여 자녀교육에 헌신해야 한다고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