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부랴트인 (문단 편집) == 역사 == || [[파일:Selenginskie_buryaty.jpg|width=90%]] || 이들은 [[원조비사]]에서 부리야드라는 이름의 [[우량카이족]] 중 하나로써 역사에 처음 언급되었으며, 1207년 [[칭기즈 칸]]의 명을 받든 [[주치(몽골 제국)|주치]]가 북쪽으로 진군하여 삼림민들을 복속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북원]]이 들어서면서 부랴트족들은 [[외몽골|할하 몽골족]]에 복속되어 조공을 바쳤으나 [[오이라트]] 편에 붙에 몽골에 대항하기도 했다.[* 반대로 자신들보다 상대적으로 세력이 약한 [[예니세이강]]의 [[어웡키족]]과 [[사모예드족]], [[예니세이어족|예니세이족]]에게 조공을 받기도 했다.] [[17세기]] [[러시아 제국]]의 [[카자크]]들이 트랜스바이칼 지역에 도달하자마자 러시아에 야삭을 바칠 것을 강요하였다. 그러나 줄곧 할하 부족에게 조공을 바쳐온 부랴트족은 이러한 제안을 거부하였고 카자크들은 이들을 무릎꿇리기 위해 자주 [[약탈]]을 일삼았다. 이에 반발한 부랴트인들은 30년씩이나 카자크들에게 완강히 저항하였으나 끝내 제압당해 완전히 러시아에 편입된 이후 여타 [[시베리아 원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모피를 공물로 바치고 식량까지 강탈당하는 신세가 됐으며, [[바이칼호]] 서쪽 인근 지역과 올혼 섬에 거주하던 부랴트인들은 러시아화가 빠르게 진행된 탓에 [[유목]]을 포기하고 [[농업]]으로 전환했다고 한다. 그러나 기마술에 능한 몽골계 민족인만큼 옛부터 전투력이 뛰어났던 탓에 1850년대부터 생성된 아무르 카자크 부대에는 많은 부랴트 출신들이 존재했으며, [[러시아 내전]] 당시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와 [[그리고리 세묘노프]] 휘하 백군으로서 볼셰비키의 적군과 싸우기도 했다.[* 특히 운게른슈테른베르크 휘하 부랴트족 부대는 타민족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또한 오늘날 카자크와 마찬가지로 [[직업군인]] 비율이 높은데 용맹함을 중시하는 부랴트인의 성향도 있지만 별다른 산업 기반이 전무한 [[시베리아]] 출신의 빽없는 소수민족이 출세할 수 있는 쉬운 길이 군대에 입대하는 것이란 점도 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