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부산광역시/스포츠 (문단 편집) === [[KBL]] : [[부산 KCC 이지스]] (2023~) === *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역사|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1997~2001 * 연고 공백기: 2001~2003, 2021~2023 * '''[[수원 kt 소닉붐/역사|부산 코리아텐더 맥스텐-부산 KTF 매직윙스-부산 kt 소닉붐]]''': 2003~2021 * '''[[부산 KCC 이지스]]''': 2023~현재 || {{{#!wiki style="margin: -5px 0; display: inline-table" || {{{#!wiki style="margin: -5px 0" [[파일:부산 KCC 이지스 엠블럼.svg|height=80]]}}}||{{{#!wiki style="margin: -5px 0" '''{{{#0f236a {{{+1 부산 KCC 이지스}}}}}}'''[br]{{{#0e5590 BUSAN KCC EGIS}}}}}}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부산 사직체육관 항공캠.jpg|width=100%]]}}} || || '''[[사직실내체육관|{{{#fff 사직실내체육관}}}]]''' || 2023년 8월부터 KBL 최고의 인기팀이자 KBL 최고의 명문구단인 [[KCC 이지스]]가 부산을 연고로 하고 있다. 다만 KCC가 부산에 오기 전까지는 지역에 농구단을 유치하고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두 번이나 구단 프런트가 다른 도시로의 [[연고지 이전]]을 감행한 바 있다. 최초의 부산 연고 남자 프로 농구단은 [[농구대잔치]] 시절 최강의 명문팀으로 군림했던 기아자동차 농구단의 후신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역사|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였다. 농구대잔치 시절의 멤버가 그대로 프로 선수로 전환되면서 [[허재]], [[강동희]], [[김유택]], [[김영만(농구)|김영만]] 등 [[중앙대학교 농구부]] 출신 슈퍼스타들이 건재했다. 프로농구 원년 리그인 1997년 정규시즌과 [[1997 KBL 챔피언결정전]]을 모두 우승하며 부산시민의 자긍심을 드높였다. 이 당시 [[사직실내체육관]]에는 많은 농구팬들이 운집하면서 야구와 축구 외에 농구 열기도 부산이 뜨겁다는 것을 증명했다. 부산 기아는 1997, 1997-98, 1998-99 등 3시즌 연속으로 [[KBL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며 실업 시절의 위세가 여전함을 증명했으나 팀 멤버가 전체적으로 고령화되고 주축이자 슈퍼스타였던 [[허재]]가 구단과의 불화 끝에 타 팀으로 이적한 영향으로 부산의 농구 열기도 사그라들었다. 여기에 덩달아 당시 낙제점 수준으로 낙후했던 사직체육관의 시설은 부산의 농구 열기를 그대로 망가뜨렸다. 어느 수준으로 체육관 시설이 나빴냐면 코트 플로어 바닥이 유난히 미끄러워서 선수들이 다치는 경우가 허다했고 1980년대 초에 설치한 전광판은 관리를 제대로 안 한 모양인지 점수를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졌으며 난방 조차 제대로 돌리지 않아서 팬과 선수들 모두 경기 내내 불편을 겪어야 했다. 이처럼 사직체육관의 시설은 심각하게 낙후됐지만 정작 이 체육관을 관리해줘야 할 부산시는 제때 시설 보수를 해주지도 않고 수도권 체육관 수준의 사용료를 뜯어가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 사이 자금난을 겪던 기아 엔터프라이즈의 모기업 [[기아|기아자동차]]는 [[현대자동차]]에 인수되고 2001년 7월 [[KIA 타이거즈|광주 연고의 야구단]]을 인수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1개의 계열사당 1개의 스포츠팀만 운영한다는 원칙에 따라 농구단의 운영권을 같은 그룹 계열사인 [[현대모비스]]로 넘겼다. 이 과정에서도 연고지도 [[울산광역시]]로 옮겼다. 울산으로 연고지를 옮긴 대표적 이유는 부산시의 거듭된 홀대에 지쳤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기아자동차는 부산과 크게 인연이 없었던 것과 달리[* 물론 기아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1950년대에 잠깐 부산에서 공장을 운영한 기록이 있어서 아예 인연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6.25 전쟁]] 당시 피난을 가서 차린 임시 사업장에 불과했고 전쟁이 끝난 뒤 [[경기도]] [[시흥군]](現 [[경기도]] [[광명시]])으로 공장을 옮겼다.] 울산은 현대모비스의 공장과 직원 기숙사가 있는 '현대의 도시'이고 새 홈구장으로 낙점한 [[울산동천체육관]]은 2001년 초에 문을 연 새 체육관이었기에 사직체육관에서 겪었던 불편을 반복할 리가 없었다. 결국 기아-모비스의 울산행으로 2001년 여름부터 2003년 여름까지 부산에서는 [[KBL]] 프로농구 경기가 열리지 않았다. 이런 시련 속에서도 부산에서 한국 농구의 역사가 쓰이기도 했는데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이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20년 만의 금메달을 땄다. 당시 모든 경기가 [[부산금정체육관|금정체육관]]과 사직체육관에서 열렸다. 자세한 내용은 [[2002 부산 아시안 게임/농구|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농구]] 참고. 두 번째 부산 연고 남자 프로 농구단은 [[광주광역시]], [[전라북도]] [[군산시]], [[전라남도]] [[여수시]] 등 호남 지역을 유랑하다가 2003년 10월 부산에 온 [[수원 kt 소닉붐|코리아텐더 맥스텐]]이다. 인터넷 쇼핑몰 운영업체로 어렵게 농구단을 꾸리고 있던 코리아텐더는 건실한 대기업으로 농구단을 넘기고자 빅마켓인 부산으로 연고지를 옮겼고[* 코리아텐더가 여수에서 부산으로 연고지를 옮기는 과정은 수많은 스포츠 팀들의 [[연고지 이전]] 과정 중에서 잡음 없이 기존 연고지 팬들이 환송해준 사례로 남아있다. 당시 코리아텐더 구단 경영진은 "농구 밖에 모르는 선수들의 생존을 위해 여수를 떠납니다. 가난했던 집안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여수에서 자란 딸을 부산의 부잣집으로 시집 보낸다고 생각해주십시오. 그래야 친정집이 있는 여수의 하늘이라도 바라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며 호소했고 여수시민들도 "아쉽기는 하지만 이왕에 부산에서 대기업의 후원을 받으며 안정적으로 농구할 수 있길 바란다"며 코리아텐더 농구단을 보내줬다.] 2003년 거대 통신기업인 [[KT]]의 자회사 [[KTF]]가 코리아텐더 농구단을 인수해 부산 KTF 매직윙스로 새롭게 탈바꿈한다. KTF 당시 홈구장은 금정체육관이었는데 체육관 위치가 부산시내에서 다소 떨어져 있고 전신팀인 나산 플라망스 시절부터 인기와는 거리가 있던 팀이라 흥행에는 큰 성과를 못냈다. 그리고 부산시가 기아의 연고지 이전 이후 조금이나마 정신을 차린 것인지 사직체육관의 시설을 대대적으로 개보수했고 KTF 농구단을 금정에서 사직으로 모셔왔다. 이 시점부터 KTF는 지역 내 타 스포츠 팀의 관심까지 흡수하게 된다. [[8888577|롯데 자이언츠의 성적 부진]]과 부산 아이콘스의 연고 이전 시도 속에 관중이 크게 줄어들게 된 틈을 타서 KTF가 선전하면서 부산 농구팬들과 부산시민들의 희망으로 등극하게 된다. 더불어 KTF 선수단도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사직체육관 홈 인근 지역인 사직동 일대에 살면서 지역 팬들과 함께 호흡하기도 했다. KTF는 2003-2004 시즌 [[추일승]] 감독이 부임한 후 [[현주엽]]에서 [[신기성]]과 [[송영진(농구)|송영진]]으로 바뀌는 와중에도 불구하고 3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과 함께 부산 농구의 흥행 가능성을 열렀다. 이후 2006-2007 시즌에는 시즌 전 꼴찌 후보에도 손꼽혔지만 1997년 창단 이후 처음으로 [[KBL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기도 했으며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를 보여준 끝에 [[졌지만 잘 싸웠다]]. 다만 이후 2007~2009년까지는 선수들의 군입대 문제와 [[양희승]]의 부상, 외국인 선수 제도의 변경으로 인해 8위-꼴찌로 침체기를 보내게 된다. 2009년 모기업 KTF가 KT와 합병하면서 팀명도 부산 kt 소닉붐으로 바뀌었고 감독 역시 원주 동부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전창진]] 감독이 부임했다. 이후 [[송영진(농구)|송영진]] 선수의 건재와 [[조성민(농구)|조성민]] 선수의 급성장과 함께 신흥 강팀으로 도약하면서 관중이 증가세를 보이기도 했다. 2010-2011 시즌에는 창단 첫 KBL 정규리그 우승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시즌 막판에 전력의 핵심인 [[제스퍼 존슨]]과 [[김도수]]가 연이어 부상당하며 4위 원주 동부에게 스윕을 허용하면서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실패했다.] 2011-2012 시즌까지 3년 연속 4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포함해서 부산 농구의 제2의 전성기였다. 2013-2014 시즌에도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승부조작 사건으로 인해 계속되는 [[KBL]] 인기 하락과 들쑥날쑥한 성적 그리고 2014-2015 시즌이 끝난 뒤 [[전창진]] 감독과 결별 이후 [[조동현(농구)|조동현]] 감독 시기 전창진 감독이 벌였던 트레이드와 신인 지명의 실패로 인해 후발 주자들을 발굴해내지 못하며 이는 부산 kt의 성적 부진으로 이어졌고 퇴임하게 된 [[전창진]]의 승부조작 의혹까지 겹치면서 관중수 증가세가 꺾였다. 이후 2016-17 시즌에는 조성민이, 2017-18 시즌에는 이재도가 트레이드로 팀을 떠나며 각각 9위와 08-09 시즌 이후 9년만에 리그 꼴찌까지 떨어지는 비극을 맞게 된다. 특히 2017-18 시즌은 '''백인천이 부임한 2002년의 롯데+신인육성 실패와 무능한 코치진으로 인해 멸망한 2019년의 롯데가 혼합된 과정으로 추락했고, 이 당시의 성적은 10승 44패로 KBL 단일 시즌 역사상 4번째로 낮은 승률을 기록했다.'''[* KBL 원년부터 2022년까지 2할 아래의 승률로 시즌을 마쳤던 팀은 1998-99 시즌 동양(3승 42패, 0.067), 2005-06 시즌 전자랜드(8승 46패, 0.148), 2021-22 시즌 삼성(9승 45패, 0.167) 그리고 2017-18 시즌 kt 넷 뿐이다.] 하지만, 2018-2019 시즌부터 부임한 [[서동철]] 감독 2016-2017 시즌 중 트레이드로 재복귀한 [[김영환(농구)|김영환]]을 중심으로 2017 드래프트 1순위의 신인 [[허훈(농구)|허훈]]과 부산 중앙고 출신 [[양홍석]]의 입단 이후 붐업 농구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들의 첫 시작이었던 2018-19 시즌에는 올스타 브레이크 이전 공동 2위를 기록하며 [[양홍석]]과 [[허훈(농구)|허훈]]그리고 외국인 [[마커스 랜드리]]가 올스타 투표 각각 1, 2, 3 위에 선정되며 올스타전 무대를 밟았고,[* 반면 이 해 롯데는 전반기에 꼴찌까지 떨어지면서 팬심이 싸늘하게 식어버리며 올스타 베스트 9에 단 한명의 선수도 선발되지 못하는 바람에 그나마 민병헌과 전준우, 진명호, 나종덕만 염경엽 감독의 추천으로 올스타전에 나갈수 있었다.] 후반기에 DTD로 인해 최종 순위 6위로 밀렸지만,[* 사실 이 6위도 마지막 6경기에서 1승 5패를 당한 것이 컸고 이 중 1경기만 잡았어도 6강 PO 홈 어드밴티지인 4위는 KT의 몫이었을 것이다.] 5년만에 [[봄농구]] 무대로 돌아오는데 성공했다. 또한 2019-20 시즌에는 코로나로 인해서 [[바이런 멀린스]]와 [[앨런 더햄]]이 팀을 떠나며 시즌이 중단되면서 6위로 마무리했지만 허훈이 시즌 도중 9개 연속 3점슛 성공, KBL 역사상 4번째 20-20 기록을 세우는 등의 하드캐리로 [[박상오]] 이후 KTF-kt 출신으로는 9년만에 MVP를 수상하는 등. 리그 내 1티어 가드로 올라섰다. 이와는 별개로 2016-2017 시즌 암흑기 시절 사상 처음으로 [[KBL 올스타전/2016-17 시즌|2016-2017 KBL 올스타 게임]]이 [[사직체육관]]에서 개최되었다. 당시 관중은 1만명을 넘기며 농구를 좋아하는 부산시민들과 농구팬들은 재미를 마음껏 즐겼다. 추가로 2019-20 시즌 홈 개막전에서 오랜만에 4000여명의 관중이 입장했고, 2019-20 시즌 [[농구영신]] 경기에서는 7800여명의 관중이 입장하면서 부산 농구의 열풍의 부흥 가능성을 보였다. 하지만, 너무나 슬프게도 2019-20 농구영신 경기는 뜨거웠던 부산 농구 열기의 마지막 불꽃이 되고 말았다. 2020-21 시즌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때문에 무관중 상태 내지는 제한 입장 상태로 경기를 치러야 했고 2021년 kt가 부산을 떠나겠다는 폭탄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2021년 6월 9일 kt 프런트는 KBL에 연고지를 부산에서 [[경기도]] [[수원시]]로 옮기겠다는 신청서를 냈고 KBL이 이를 승인하면서 부산에서의 남자 프로농구단 역사는 2021년 봄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 사실 kt 소닉붐의 연고지 이전설은 이미 201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언급됐다. 2016-2017 시즌 중 kt는 야구단의 명예 구단주이기도 한 [[염태영]] 시장이 있는 [[경기도]] [[수원시]]로부터 연고이전 제안을 받았으나 당시는 부산 농구팬들의 반발을 고려해 철회했다. 하지만, 4년 뒤 [[연고지 이전/대한민국|부산을 떠나지 않겠다던 입장은 바뀌게 된다.]] kt가 부산을 떠난 이유로는 부산시의 행정 무관심과 kt 프런트의 부산 연고 밀착 의지 실종이 환장의 조화를 이룬 탓으로 해석된다. 우선 kt가 부산을 떠나고자 하는 의지가 생각보다 컸다. kt는 기업 본사가 경기 성남이며 스포츠단 자체는 수원이었다. 자체 클럽하우스 겸 연습체육관인 [[kt빅토리움]]을 부산이 아닌 북수원 kt전화국 근처에 지었다. 이 과정을 돌이켜보면 애초부터 kt 경영진이 농구단에 대한 지역 연고 밀착 의지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2009년 kt 소닉붐 구단주가 된 [[이석채]] 사장은 [[전창진]] 감독과 만난 자리에서 "농구단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전 감독은 "연습체육관과 클럽하우스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석채 사장은 kt 경영진과 농구단 사무국에 클럽하우스 부지를 알아보라고 지시했는데 kt 측이 마련한 부지는 연고지 부산에서 수백 km 떨어진 kt 북수원지사 옆 공터였다. 분명히 부산에도 kt 전화국 유휴부지가 있었으나 이를 무시하고 수원에 클럽하우스를 지은 것은 부산에 영구적으로 남아있을 의향이 없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형제 야구단인 [[kt wiz]]가 창단하면서 부산 연고 농구단의 사무국이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에 있는 기괴한 형태를 취했다. 다만 처음부터 수원으로 연고지 이전을 할 생각으로 수원에 클럽하우스를 만들었다고 보는 것도 부적절한 추측이다. 애초에 그 당시나 그 이후에도 연고지와 클럽하우스가 일치하지 않는 팀은 많았다. 단순히 일치하지 않는것만 보고 애초부터 연고지 이전을 계획한거라고 하기에는 비약적인 추측이다. kt가 부산에 눌러앉을 의향이 없었다면 부산시가 나서서라도 이를 말리고 연고 농구단을 위한 지원책을 제시해야 했지만 여전히 부산시는 그저 팔짱만 끼고 남의 일처럼 방관했다. 특히 대대적 보수 이후 20년이 가까워진 사직체육관의 낡은 시설을 제대로 고쳐주지 않았고 kt 농구단에게는 여전히 사용료를 비싸게 받으면서 과거 기아 농구단에게 했던 만행을 또 저지르고 있었다. 언론지상을 통해 kt 농구단의 연고지 이전 루머가 널리 퍼지자 위기감을 느낀 부산시가 kt 측과 만나 농구단에 대한 지원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부산시의 지원책은 [[부산 아이파크 클럽하우스]]가 있는 [[강서체육공원]]이나 [[기장체육관]]을 클럽하우스로 제공하겠다는 수준에 머물렀다. 강서체육공원이나 기장체육관 모두 부산시내, 특히 사직체육관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의 시설이기에 부산시의 제안이 kt에게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kt 측은 2023년부터 시행되는 KBL의 연고지 정착 규정 준수를 위해 사직체육관 바로 옆인 사직수영장 내 생활체육관을 훈련체육관으로 쓸 수 있게 해주면 부산에 남는 방안을 고려하겠다며 사직수영장 사용을 요청했으나 이 요청은 부산시가 생활체육시설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불편을 사유로 들면서[* kt 입장에서는 이 사유가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봤다. 프로농구 선수들이 연고지역 주민들과 체육시설을 같이 쓰는 일이 타 지역에 이미 있었고 연고지 정착의 성공사례로 남았기 때문이다. [[강원도]] [[원주시]]를 연고로 하던 [[원주 DB 프로미/역사|나래-삼보-TG삼보-동부]] 농구단은 [[원주치악체육관]]을 홈구장으로 쓰던 시절 체육관 내 웨이트장을 훈련장으로 활용했는데 선수들이 운동할 때 치악체육관 인근에 사는 원주시민들도 선수들의 옆에서 같이 운동했다. 시민들은 농구선수들의 웨이트장 출입에 불편을 호소하지 않았고 오히려 "유명한 농구선수들이 우리 동네에서 같이 운동한다"며 농구단에 대한 애정을 더 피력했다. 그 덕분에 원주는 KBL에서 손꼽히는 농구 도시가 될 수 있었다.] 거절했다. 그러자 kt는 "사직체육관 사용료가 전국 체육관 중에 제일 비싸다던데 그러면서 시설은 제대로 고쳐주지도 않고 왜 우리가 해달라는 것은 하나도 해주지 않는 것이냐"라며 부산시를 향해 대놓고 불만을 터뜨린 뒤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그리고 수원으로의 연고지 이전을 확정했다. kt 소닉붐의 수원행으로 부산 농구 팬들은 큰 상처를 입었고 창원 LG와의 [[낙동강 더비(농구)|낙동강 더비]]도 끝나게 되었으며 현대모비스 피버스와의 부산-울산 더비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사직체육관은 그동안 금정체육관을 홈으로 쓰던 부산-경남의 첫 여자프로농구팀인 [[WKBL]] [[부산 BNK 썸]]의 새 홈으로 바뀌게 된다. 지역 안팎에서 "부산시의 방관이 kt의 수원행에 한몫을 했다"는 점이 지적된 이후 부산시가 나서서 남자 프로농구단 유치를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기도 했다. 특히 [[고양 캐롯 점퍼스]]가 [[고양 데이원 점퍼스 부실 경영 및 리그 제명 사건|부실 경영의 책임을 물어 강제 해체되자]] KBL과 함께 캐롯(모기업 데이원스포츠)의 선수단을 인수할 기업을 물색하기도 했다. 부산시는 농구단이 들어올 경우 자금 지원까지 해주겠다는 카드를 내밀었으나 데이원 선수단 인수 의사를 밝힌 [[대명소노그룹]]이 기존 데이원의 연고지인 [[경기도]] [[고양시]]를 떠나지 않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일산신도시]]와 [[운정신도시]] 등 고양, 파주지역에 거주 중인 선수들이 타 지역 이주에 대해 난색을 표하면서 고양 연고 유지를 강력하게 요청했다고 한다.] 부산시의 남자 프로농구단 유치는 무산되었다. 하지만 [[전라북도]] [[전주시]]에 있던 KCC 이지스가 기존의 홈구장이던 [[전북대학교]] 내 [[전주실내체육관]]의 철거와 이후 [[전주종합체육관]] 신축 지연 문제로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 연고지 이전을 알아보게 됐고 소노를 놓친 부산은 이를 놓치지 않으며 적극적으로 구애했다. 결국 2023년 8월 30일 KCC가 연고지를 부산으로 이전하기로 하여 2년 만에 남자농구단을 다시 유치하게 되었다. KCC의 부산 이전으로 창원 LG와의 신 낙동강 더비만 아니라 모기업의 현대가 라이벌인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와의 부산-울산 더비도 다시 부활하게 됐다. 추가로 대구 연고의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와의 영남 더비도 새로 탄생하게 되었다. 아울러 부산을 떠났던 수원 kt가 원정팀 자격으로 부산 사직에 오게 되면서 연고이전 더비인 부산 더비가 형성됐다. 덧붙어서 KCC 허웅과 kt 허훈의 형제대결을 사상 두번째로 부산 사직에서 펼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