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부산광역시/정치 (문단 편집) === 야도(野都) === 부산광역시는 위에 나온 대로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는 야당([[野]][[黨]])의 지지율 및 의석 수가 더 높았다. 그래서 당시 별명이 야당(민주당) 도시라는 의미의 야도(野都)였다. 관권선거가 횡행하던 1971년 7회 대선 때도 호남 출신 김대중이 무려 43.6%를 얻는 박빙 지역이었고, 엄혹한 군부정권기인 1967년, 1971년, 1973년, 1978년, 1985년에 치러진 총선에서도 민주당계가 우위를 차지했다. 특히 1985년 선거의 경우 이 여파로 전두환 정권에 비협조적이던 부산 연고 기업 [[국제그룹]]이 정권 탄압에 해체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1987년 13대 대선에선 부산이 정치적 기반이던 김영삼 후보가 50% 이상 득표하며 노태우를 상대로 20% 이상 차이로 격파했고, 1988년 13대 총선에서도 [[통일민주당]]이 부산에서 [[금정구(선거구)|한 지역구]][* [[김세연(정치인)|김세연]]의 아버지 [[김진재]]가 당선되었다.]를 제외한 전 지역을 싹쓸이하였다. 이 때 당선된 사람이 유명한 [[노무현]] [[전 대통령]]. 통일민주당 당적으로 부산 동구에서 당선된 노무현은 [[제5공화국 청문회|5공 청문회]] 때 일약 스타로 도약했다.[* 만약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이 분당되지 않았다면 PK와 전라도는 민주당계 정당이 지금까지 우위를 지속했을 확률이 높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