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부여풍 (문단 편집) == 생애 == [[의자왕]]의 5남으로 알려졌다. [[무왕(백제)|무왕]]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으나, 현재는 의자왕의 다섯 번째 아들이란 것이 정설이다. 의자왕 아들설은 [[속일본기]]에 '부여풍장과 부여선광은 의자왕의 아들'이라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며, 무왕 아들설의 근거는 [[일본서기]]에서 '왕자 부여풍'을 일본에 보낸 게 '[[조메이 덴노]] 3년'이라고 돼 있는데, 조메이 덴노 3년이 서기로는 631년이고 백제 무왕 32년이기 때문에, 부여풍이 무왕 시기에 왕자였으면 무왕의 아들이란 것이다. 다만 무왕 아들이란 설이 맞는다면 속일본기 기록이 틀렸거나 혹은 삼촌과 조카가 이름이 같다는 무리한 가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보통 의자왕의 아들로 본다. 《[[일본서기]]》에 부여풍의 다른 이름으로 추정되는 '규해(糺解)'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부여규해가 또 다른 백제 왕자라는 설도 있지만 동일 인물이 맞다면 그 이름이 초명(初名)이거나, 자(字), 호(號)로 추정된다. 《일본서기》와 《삼국사기》에서 교차검증으로 왜국으로 보내진 인질로 서술되었다. 다만 이는 《일본서기》 특유의 윤색이나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다. 거의 동시대 사람인 김춘추도《일본서기》에서 인질이라고 서술되는데, 642년 고구려로 외교사절로 파견되었고, 647년에 왜국으로 갔으며, 1년도 채 안 돼서 다시 648년 당나라로 건너갔다. 당시 김춘추가 신라 내에서 차지한 입지를 보면, 인질로 파견될 인물도 아니고, 인질이 되었다면 1년도 채 안 돼서 빠져나와 당나라로 파견될 리도 없다.[* 고구려와 당나라에서 수행한 그의 행적들을 보면 다분히 외교사절의 성격이 강하지, 절대 인질로 파견될 인물도 아니거니와, 동북아시아 당대 최강자였던 고구려와 당나라에서도 인질 취급을 안 받았는데 왜국에서 인질 취급을 받을 리가 없다.][* 다만 후대의 각색에 의해 [[연개소문]]에게 억류되었다는 소리가 있지만, 정사는 아니고, 연개소문과 보장왕은 융숭히 대접했으나, 신라와 연합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무리한 조건을 내세워 돌려보냈다.][* 친백제파 일색인 왜국 조정에서 일부러 신라의 사신인 김춘추를 하대했을 거라는 견해도 있는데, 친신라파를 자처하는 [[소가]] 집안이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무렵이었고, 또 7세기 초반이면 이미 왜국은 외교 다각화를 꾀하며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기도 했다. 물론 쇼토쿠 태자의 망상이 가득 담긴 편지를 보고 수양제는 분노했고, 또 받은 답신은 도중에 백제인에게 빼앗겼다고 《일본서기》가 전하지만..] 부여풍은 김춘추와 비슷한 시기인 [[조메이 덴노]] 3년 즉, 631년에 인질로 파견되었다고 적혔지만, 후에 백제가 멸망하고 왜왕이 백제로 송환하며 준 왜군 5천 명과 수하에 왜국 장군들을 거느리고 재건 운동에 투신한 상황을 짐작하면, 인질이라는 표현은 윤색이나 과장일 가능성이 크다.[* 참고로 《일본서기》에서 인질이라고 서술하는 백제 왕자는 백제 역사상 부여풍과 그의 동생의 경우 밖에 없다. 삼국사기에서 인질이라고 말하는 [[전지왕]]이나 부여곤지도 인질이라는 소리는 없다.] 형으로는 의자왕의 장남 [[부여융]], 차남 [[부여태]], 3남 [[부여효]], 4남 부여연이 있었으며, 동생으로는 《일본서기》에만 전해지는 부여충승(忠勝)과 부여새성(塞城)이 있었다.[* 다만 부여새성(塞城)은 부여풍의 동생으로 전해지지만 《일본서기》의 다른 기록에서는 부여풍의 숙부, 즉 의자왕의 동생이자 [[무왕(백제)|무왕]]의 아들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동명이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부여새성(塞城)은 후에 부여풍과 함께 백제로 귀국하여 백제부흥운동에 투신했다.] 660년 백제 멸망(사비성 함락) 당시에는 왜국에 머물고 있었으며, 장남도 아니었으니 시대가 평안했다면 왕이 될 일은 없었겠지만 백제의 급속한 붕괴 이후 의자왕과 태자 [[부여효]], [[부여융]] 등을 비롯해 의자왕의 왕자들이 [[당나라]]로 끌려간 뒤 국왕이 없어진 백제의 옛 대신들이 왜국에 요청해, 왜 왕실의 협조를 받아 귀국, 백제부흥운동에 나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